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문예출판사)
고전이란, 누구나 그 제목과 저자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지만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법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정도라서
큰맘 먹고 사놓고 읽지 않았거나 혹은 읽다 말았거나 한 책이 적지 않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고전, 혹은 명작의 완역본을 통독해보고자 목표를 세웠으나 의지대로 끝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일단 한 번 완독을 하는데 의의를 두고 도전을 하다보니 그 한번을 읽을 때 진도가 빠르지 않은 편이다.
특히 주석이 많은 책들은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이 책은 세 번 만에 완독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잡았을 때는 1막까지 읽었고
두 번째 잡았을 때는 오랫만에 다시 잡은 터라 앞부분이 생각나지 않아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 2막 중간쯤까지 보았다.
그리고 최근에 한 일년만에 다시 잡고 앞부분을 빠른 속도로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끝을 낼 수 있었다.
정말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소설이 아닌 희곡형식에 길게 늘어지는 만연체의 문장, 이러저러한 시대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한
괴테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씌여졌을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그렇게 재미있거나 아, 정말 대단하구나 싶지는 않았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보다는 해석의 의미가 더 널리 알려진 작품.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는 파우스트.
그래서 그를 그렇게 못나고 어리석고 나약한 캐릭터로 잡았다?
파우스트는 정말 남자로서는 매력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학문을 하느라 연애를 못했거나 너무 금욕적이어서 여자를 멀리했거나 했던게 아니라
남자로서의 욕구는 있으나 매력은 없어서 아,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구나 했던게 아닐까 싶은 캐릭터.
그렇게 모든 학문과 우주의 섭리까지 통달하여 더이상 이를 곳이 없다고 자만하던 남자가,
그래서 더 이상은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여 자살을 하겠다던 남자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그렇듯 쉽게 넘어가서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나약한 존재라는 의미?)
그렇게 어린 여자아이(마르가레테-애칭 그레첸)를 꼬셔서 인생을 망쳐놓고 그 가정은 파탄내고
정작 자신은 메피스토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고 마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그녀는 구원되었다' 라는 신의 목소리! (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
인간이, 살기 위해서 태어나는 거지 구원되려고 태어나는건가?
인간에게 신은 살아서 필요한 거지 죽어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도망친 후 메피스토의 손에 이끄려 악마들의 축제(발푸르기스의 밤)에선 정신을 홀리고
아름다운 여인(헬레네)이 마치 인생의 구원이라도 된 양 하는 그 모습은...
(만일 괴테가 여자였으면 이런 설정이 나왔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이것은 파우스트가 남자 인간을 대표한다는 의미? ^^)
에잇, 그가 마지막에 구원을 얘기한다는 것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욕망에 이끌려 이러저러하게 살아 보니 별거 없더라, 좀 더 의미있게 살아라 하는.
나에게 있어 파우스트라는 책은 두껍고 읽기 어려운 고전에 지나지 않았다. ㅎㅎ
인간 내면의 악마적인 면모를 뭉쳐놓은 메피스토펠레스.
캐릭터로만 놓고 보자면 메피스토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악마가 더 매력적이라는 뜻.
음침하고, 능력있고, (악한 방향으로)설득도 잘 하고^^
그는 파우스트를 조정하고 비웃고 질책한다.
양심을 배반하도록 꼬셔놓고 끝에 가서는 자기 부정도 잘 하고.
내가 시켰어? 니가 선택한 거잖아! 니 책임이지!
(원래 드라마에서도 악역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지, 미움과 사랑을 동세에 받는!)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싸움에서 결국은 언제나 선이 승리한다는 뭐 그런 결론인데...
시대적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텍스트로 읽는 파우스트는 진짜 재미없다.
문어체스러운 번역의 문제인가? 연극으로 보면 좀 나은가?
뭐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려놓고, 그렇게 겸손해지면 되는 일이 아닌가.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디 깨닫는 일이 어려운가,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인생,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고
살다 보면 식자가 아니라도 깨닫는 것이고
다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