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나는 몇년 전, 이웃으로 만났다.
내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을 때, 그녀는 둘째를 낳은 지 사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예쁘고, 정도 많고, 여느 사내놈들 못지 않은 대범함과 정의로움도 있고,
패션 감각도 뛰어나고, 사리분별 확실하고, 아이들도 정말 똑소리나게 잘 키우고,
음식솜씨도 좋고, 책임감도 강하고, 할 말은 다 하지만 할 도리도 다 하는,
건장한 두 남동생들에게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던,
여자의 눈으로 봐도 정말 괜찮은, 멋진 여자였다.
당시 직장엘 나가고 있던 나는 방과 후에 아이를 제 시간에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래 위층에 살던 우리는 그녀의 제의로 아이들을 같이 놀게 하고
그녀는 내 아이를 흔쾌히 돌봐 주기도 했다.
그렇게 가까와진 우리는 한 집에 사는 가족처럼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먹고, 놀고,
그렇게 정들어 갔다.
나보다 일곱살이 아래인 그녀는
역시 자기보다 그만큼 아래인 남편과 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던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후 그 충격이 매우 컷었단다.
당시 곁을 지켜주던 , 동생으로만 생각했었던 그 남자에 의지하면서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생활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굳센 의지로 잘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차이에 못지않은 사고의 격차로 그녀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몇년 전 그녀는 남편의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의 부상으로 오랜기간 수입이 없던 그녀의 가정은
같이 살 때부터 누적된 부채가 꽤 많은 상태였다.
거기에 무리해서 시작한 사업으로 더 힘들어진 그녀는
일손을 돕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일하고, 집에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그녀의 얼굴과 몸은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가고 있다.
힘들어도 가족이 한 마음이면 견딜 수있는 것이지만
정말 힘든 것은, 삶의 본질은 느끼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과 동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녀는 날마다 혼자서 전쟁을 치른다.
혼자의 마음하나도 주체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 와중에 여기저기 신경쓰며, 하루를 견뎌내야하는 그녀를 보고 오는 날은
그녀 생각이 맘에서 떠나질 않는다. 날마다 피폐해져 가고 있는 그녀가...
나는 그녀에게 참고 견디라고,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는 말 못하겠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힘든 순간에 의지하라고 배우자가 있는 것인데
오히려 그로 인해 내 마음이 황페해져 간다면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없다면
함께 가는 것은 오히려 옳지 못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한 편의, 처절하리만큼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지 못하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는 언제나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그럴 것이다.
그녀 앞에 놓인, 반드시 지나야 할 그녀만의 고난의 시간들을 무사히 건너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현재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안쓰럽다.
많은 여인들이 경제적 독립이라는 명제 앞에 약해져서
어쩔 수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 사회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열린 사회임에는 틀림없다.
나역시 아직도 그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틀을 깰 수 있을 만큼의
절실함에서 나오는 적극적 도전이다.
찾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최 우선순위에 두고 움직일 것인가...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나는 여인들의 적극적인 삶을 응원한다.
적극적이란, 꼭 경제적 참여, 사회참여만을 얘기하진 않는다.
물론 그것들은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적극 추천한다.
사회적 틀 안에서 내 존재를 확인받을 때 느껴지는 내 존재감은 내가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므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
남편과 아이들에게서만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 것을 권한다.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항상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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