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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품격 - 한국 문화재 재단 찻집

by lucill-oz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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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랫만에 옛 직장 동료인 후배 은정이를 만났다.

둘이서만 오붓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나이 들고 나서 말이다.

결혼 전, 청춘시절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 우리는 모두 그 때의 모습으로 서로를 꽤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결혼 후, 혹은 독자적인 자립을 한 어른이 된 후의 모습들은 모두 조금씩, 혹은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캠퍼스 커플이 아닌 컴퍼니 커플인 그 부부는 가끔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따로따로) 종종 만나긴 했어도

은정이와 이렇게 깊은 얘기를 오랫동안 나눈 것은 생각해 보니 처음인 것 같다.

젊은 시절엔 거칠 것 없이 유쾌하고 활달하기만 한 모습으로 기억되는데 

세월을 겪으며 어른이 되다 보면 그 길에서 누구나 조금씩 철이 들고 어른이 되듯이 그녀도 많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혹시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꼰대스러워 보이진 않았나 살짝 걱정도 되고..ㅎㅎ

두 차례나, 낮에 만나 저녁 나절까지 끊임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왜 자주 만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선정릉역 앞에 한국 문화재 재단 건물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과 민속극장 풍류, 전시관도 있는 곳이다.

이 건물 1층에 찻집이 있다.

마침 선정릉 역앞에서 만난 우리는 이 곳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내가 굳이 카페나 커피숍이라 부르지 않고  찻집이라 부르는 이유는 분위기와 메뉴 때문이다.

여기선 커피도 팔지만 커피는 직접 기계로 주문하는 방식이라 주메뉴는 아니다.

이곳은 분위기에 걸맞게 전통차가 주 메뉴다. 다과도 함께 곁들여 내준다.

우리는 장미차와 벚꽃차를 주문했다.

 

자개 잔받침의 얼음음료 위에 정체성을 알려주는 말린 장미꽃과 벛꽃 한 송이가 떨궈져 있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맛도 좋았다. 물론 멋도 좋았다.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손님 대접은 이렇게 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었다.

다 마신 후에도 저 꽃잎들을 두고 나오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이런 예쁜 찻상을 앞에 두고는 얼굴 붉힐 얘기는 하지 못하겠구나.

아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도 좀 점잖게 하려고 애쓰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후루룩 마시는 음료가 아닌, 천천히 음미하며, 상대의 눈빛도 그윽하게 바라보며 

내 시간과 품을 넉넉히 내어 줄 마음이 생기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랄까...

장미차
벚꽃차

 

물론 우리는 차를 다 마시고 나와 선릉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봄볕을 쐬면서 이야기했고

근처 골목의 허름해 보이는 커피집에서도 또 한잔을 마시며 해가 지도록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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