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는 않았으나 조광화전의 두 작품을 연속해서 보게 되었다.
느낌이 닮은 듯 다른, 혹은 다른 듯 닮은?
개인적으로는 남자충동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역시나 남자충동과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문 연주자의 라이브 음악배경. 이번엔 아코디온이다.
정겹기도 하고, 끈적거리기도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이국적이기도 하고, 집시의 쓸쓸함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아코디온과 함께, 마치 무용극을 보는 듯한 배우들의 유려한 몸놀림.
그 가운데 심새인이라는 익숙한 이름의 무용가가 있었다.
익숙한 마루 바닥.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남자충동 때와 같은 무대 디자이너다.
'미친키스'라는 제목이 임펙트는 있으나 정확한 묘사는 아니라는...
뭔가 다른 표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야기는 장정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고독을 그린다.
고독이란, 절대적 외로움이 아니다. 상대적 외로움이다. 대상이 있는 외로움이다.
그 대상을 찾지 못해서, 온전히 갖지 못해서 느끼는 외로움이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느끼고자 육체를 탐닉하나, 그것은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나를 사랑해 줄 대상이 없으니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장정의 대사는 그래서 공허하다.
독특한 시작.
침대에 걸터앉은 남녀들은 서로에게 기대려 하나 그들은 모두 서로를 외면하며 하나씩 일어나 퇴장한다.
장정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 신희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장정에게 신희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바람같다.
그녀를 느낄 때는 오직 침대 위에서 뿐이다.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한 그녀. 그럴수록 더욱 찌질해지는 장정.
그에게는 여동생이 있다.
장정은 어떻게 해서든 동생에게 번듯한 직업과 앞날을 만들어주고 싶으나
그 애는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장정의 직업은 남의 뒤를 캐는 일이다.
첫 고객인 영애에게 도청 기기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여동생 은정의 휴대폰에 심어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은정이 성매매를 하려는 것을 알게 된다. 오 마이 갓!
영애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심부름꾼인 장정이다.
그녀는 내면의 외로움을 그렇게 달래보려 한다.
신희는 중년의 교수 인호에게 흔들린다.
장정과는 다른,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어른스러운, 그의 말에는 묘한 이끌림이 있다.
인호와 영애는 열정이 식은 지 오랜 부부다.
젊어 한때는 열정적으로 서로를 탐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각자의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인호는 자신 안에서 사라진 열정이 그립고,
영애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그 열정의 대상이 아닌 것이 서글프다.
발에 집착하는 영애의 상징같은 화려한 구두와 히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인호는 자신의 내면에 열정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인호를 상대로 돈을 벌어 명품 쇼핑에 열을 올리던 장정의 동생 은정.
말로만 나를 자극해 보라는 인호의 요구에 마지못해, 어색하게 시작한 연기에 점점 스스로 몰입이 되더니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외로움을 토해내고... 그 모습에 인호는 비로소 은정을 품에 안는다.
너도 외로웠구나... 나처럼...
장정은 신희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울며불며 매달려도 보고 꼬장도 부려보고... 온갖 찌질을 다 부린다.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진다. 신희 역시 그런 장정의 모습에 화가 나지만 쉬이 마음을 떨쳐내질 못한다.
장정은 은정이 사다 준 명품 뱀가죽 자켓을 입고
신희의 스카프를 두르고
오열한다.
그토록 원하던 여자에게 버림받고
그토록 지키려던 여동생은 몸을 팔고...
장정의 비난에 스스로의 모습을 깨달으며 절망하는 은정.
동생에게 그렇게 한바탕 퍼붓고 난 장정은
은정이 걱정되는 듯 신희에게 도움을 청하며 신희를 은정이 있는 호텔방으로 보낸다.
그리고 동시에 인호를 전화로 유인해 역시 은정이 있는 호텔방으로 불려들인다.
사실 인호와 은정은 둘이 함께 떠나려 했던 모양인데...
목을 맨 은정을 안고 있는 인호를 발견하는 신희...
뒤늦게 나타난 장정이 나타나 은정을 안아 마룻바닥에 눕힌다.
처음 시작 장면 그대로...
아, 이 찌질한 인간을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한 명씩 나타나 인사를 하는데 그 움직임이 멋스럽다고나 할까?
배우들의 표정은 여기서부터는 박수가 나와야 하는데... 하는 표정인데
정작 관객들은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서 주저주저했다.^^
이건 전적으로 저 드라마틱한 춤을 추는 히스와 미미의 연주 때문인 걸로!!
이번 캐스트를 보고 나니, 어쩌면 연기스타일이 짐작을 할 수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차라리 정반대의 캐스팅으로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하고^^
미장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생각해 본 무대였다.
드라마가 분명한 연극인데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색다른 느낌이었다.
음악이나 무용, 움직임 등이 연극 공연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장르로 느껴진 무대였다.
그리고 믿고 볼 수 있는 든든한 배우들.
정성스럽게 잘 차려진 특별식 같은 무대였다.
'관람후기 >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 최후의 농담 - 20170427 (0) | 2017.04.28 |
---|---|
맨 끝줄 소년 - 20170425 (0) | 2017.04.26 |
왕위주장자들 - 20170413 (0) | 2017.04.18 |
베헤모스 - 20170401 (0) | 2017.04.06 |
프라이드 - 20170322 (0) | 2017.03.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