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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파락호 김용환

by lucill-oz 201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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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락호破落戶의 비밀*•*• 
 
파락호에 대해 들어 보신적 있나요? 
 
파락호는 조선시대 때 재산과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입니다. 
파락호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노름판을 돌면서 가장 큰 손으로 유명세를 떨친 김용환,  
그는 안동사람으로 학봉鶴峰 김성일 金誠一의 13대종손입니다 
김용환은 밤새워 노름을 하다가 돈을 따면 그냥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고, 돈을 잃게 되면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새벽 몽둥이야!" 
 
그때 몽둥이를 든 그의 아랫사람들이 현장을 덮쳐 판돈을 챙기면 , 김용환은 그 돈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논과 밭18만평(현싯가200억원)을 팔아 노름판에 탕진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祠堂까지 팔려고 하였습니다. 
김용환은 급기야 무남독녀 외동딸이 시집을 가서 시댁에서 농을 사오라고 받은 돈마저 노름돈으로 탕진하고 대신 집에 있던 헌 농짝을 보내줍니다. 
평생을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았던 딸 김후웅은 아버지에게 올리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중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시댁에서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 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붙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꼬.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김용환은 해방 다음해인 1946년 4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난 후 여러 증언을 통해 노름돈으로 탕진 한 줄 알았던 집안 재산이 만주 독립군 군자금으로 들어간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김용환은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얻는 대신에 몰래 독립군 군자금을 지원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노름꾼이 되어서라도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 
 
김용환이 어렸을 적, 할아버지 김흥락이 사촌 의병대장 김회락을 숨겨줬다가 왜경들에게 발각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흉악한 왜경들 앞에서 종가 마당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 김용환은 그 이후부터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합니다. 식구들이 고초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 일은 은밀히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김용환이 숨을 거두기 직전,그의 오랜 지기知己가 이제는 말할때도 되지 않았냐고 권유했지만, 그는 
'선비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네, 아무 말도 말게나'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용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합니다. 
그가 파락호라는 누명을 얻으면서까지 지키려했던 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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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 의롭고 숭고한 정신과 희생 . 
그 소중한 정신과 실천을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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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 : 독립운동가 김용환선생 유해 84년만에 조국땅으로 
http://me2.do/FzO2PIGt 
 
여현汝見 김용환金龍煥 
1887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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