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애증이 얽힌 작업이다.
한 때는 마음속의 모든 생각들을 글로 쏟아내는 일에 열중한 적도 있었고
또 계속해서 그러고 싶었었다.
헌데 세상이란 또 맘대로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
나는 생각지도 않게 글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야 했다. 소질도 없는 그림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가방속에 넣어둔 애장품처럼 언제든 필요하면 꺼내서 잘 쓸 수 있으리라고.
그런데 점점 쓸 일이 없어지니 꺼낼 일도 없어지고,
오히려 다른 물건들을 더 아끼며 사랑해야만 하는 날들이 많아지자
나의 애장품은 점점 잊혀져 가고
가끔, 그런게 있었는데...하는 아련한 그리움만이...
너무나 오래 손을 놓고 있었더니 이제는 뭔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혼란스럽다.
글을 쓰는 작업이란 곧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인데
짧은 글을 쓸 때조차도 머릿속에서는 회오리바람이 분다.
폭풍을 뚫고 구해내야 할 사고들을 끌어모아 무사히 나와야 하는데
늘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놓았던 것들을 추스리려 한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다면 풀어서 한번 정리하고 흘려버릴 것이고
불덩이가 있다면 냉정히 사고하여 하나의 결정체를 구할 것이다.
마음속을 흘러다니는 한줄기 바람도, 한포기 풀도, 땅을 적시는 빗물도
그때마다 맞이하고 느끼고 남겨서 기억할 것이다.
수려한 문체는 내용을 전달할 수단일 뿐인데
내게는 내용을 채울 삶의 체험이 부족하므로
우선은 많이 살자고 생각했던 것이 스무살 이전의 내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 후론 뭘 제대로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사는 일에 너무 열중하여, 느끼고 사고하는 일에 대해 소홀하였던 날들이었다.
보람있게 사는 것이란
그 마음이 흡족해지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이 만족스러워지는 일을 하는데는 노력도 필요하다.
즐기는 것도, 시작하는 노력이 있어야 누릴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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