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음악감독에게 듣는 10가지 키워드
두 남자와 한 대의 피아노가 텅 빈 무대를 가득 채웠다. 34년 전, 끔찍했던 살인의 비밀이 ‘나’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기억을 더듬어가는 그의 회상을 밝혀주는 존재는 바로 피아노다. 아슬아슬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나’와 ‘그’의 갈등의 실타래는 때로는 강렬하게 또 연약하게 이어지는 선율에 고스란히 실렸다. 피아노 선율 곳곳에 숨겨진 비밀을 김현정 음악감독을 통해 듣는다. ‘뮤지컬 레알사전’의 세 번째 주인공 ‘쓰릴 미’, 그 매력을 10가지 키워드로 속속들이 파헤친다. ‘레오폴드와 로엡’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에선 2007년 3월 초연 된 이후, 올해로 7번째 시즌을 맞았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스릴러, 인간의 본능을 꿰뚫는 심리 묘사, 아름다운 두 남자. 이 작품이 관객을 유혹하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지만, only ‘쓰릴 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역시 단 한 대의 피아노로 이끌어 나가는 음악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서정적인 슬픔을 나타내는 ‘Way Too Far’부터 두 남자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담아 기분 좋은 이중창을 선보이는 ‘Nothing Like A Fire’, 뭔가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살인자의 심리를 그린 ‘My Glasses’까지 성격도 느낌도 각각 다른 넘버들이 매력을 안고 있다. 2007년 초연 당시, 김무열-이율 배우의 보컬 코치로 처음 뮤지컬계에 발을 들인 그는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전공인 클래식의 색을 입힌 음악으로 작품의 매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2009년과 2010년 그리고 올해까지 항상 함께하는 배우들을 성장시킨다는 의지로 든든한 지원자를 자처해 온 그에게 ‘쓰릴 미’란 바로 ‘뮤지컬의 입문이자 전부’다. 미국 초연 이후 10년, 수많은 프로덕션의 손을 거친 작품이지만 원작자가 강조한 포인트만은 고수해야만 한다. 극의 몰입을 최대화하고 관객의 감정선을 끝까지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가 작곡한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끌고 가는 음악의 힘은 처음 본 관객들도 절대 박수를 칠 수 없는 아우라를 자아내며 객석의 몰입도를 최상으로 끌어 올린다. 완벽하게 갖춰진 이 뮤지컬의 음악에 피아노 이외의 악기는 떠올릴 수도 없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 매 공연마다 피아노의 생 연주만으로 이끌어가는 음악은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극장을 가득 채운다. 우리나라 관객의 특성상 빠르게 몰아치는 부분은 더욱 조여주고, 느린 부분은 더욱 느리게 템포를 나눠 배치했다. 2009년 돌기노프가 처음 내한 했을 당시, 본 공연을 관람한 그는 “작품의 드라마틱함이 더욱 느껴져서 좋다”라고 평했다고. 원작자의 호평을 얻어 김 감독 또한 다행스러웠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고전의 미를 선보이며 우리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였기에 더욱 공연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가방이 떨어질 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의 임팩트, 극 중 ‘그’가 동생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벽을 “쾅”하고 치는 모습은 앞 열의 관객들을 흠칫 놀라게 할 정도다. 무대 정중앙을 사각의 틀로 깔끔하게 비워낸 연출은 바로 ‘나’가 34년 전을 되돌아보는 ‘생각의 틀’을 상징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는 사실 ‘나’의 기억일 뿐임을 조명으로 오버랩 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시각화 시켰다. “레이”라는 ‘그’의 한마디 후에 다시 이어지는 노래는 애절한 극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침묵의 묘미를 선사한다. 마치 동양화 속 여백의 미처럼 짧은 순간의 정적이지만 그 순간이 많은 것을 채워주며 색다른 느낌을 선보였다. 두 명의 배우와 피아노만으로 이뤄진 작품이니 만큼 두 주인공의 심리와 그 선율은 꼭 한 몸처럼 붙어있는 게 특징. 그 외의 악기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부와 음악부의 상호작용이 작품의 완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이는 34년 전의 ‘나’와 ‘그’가 불장난을 치는 ‘Nothing Like A Fire’ 넘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그동안 기름을 붓는 모션으로만 표현됐던 장면에 “쿵”하는 피아노의 선율을 추가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실은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피아노를 세게 치다보니 악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하지만 피아노의 강한 임팩트와 여운은 뜨거운 불길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냈고, 오히려 연출의 의도를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한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김 감독이 피아노 전공자인 후배와 함께 극장을 찾았을 때 일어난 일화로, 하필이면 그날 피아노의 소리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공연을 보는 내내, ‘피아노 소리 왜 저래?’란 생각을 버릴 수 없어 얼굴이 붉어졌을 때 쯤 후배가 던진 한 마디가 그의 뇌리에 꽂혔다. “피아노의 탁성이 옛스러워 더 분위기가 나네요.” 자신의 고집이 꼭 옳은 것은 아니란 깨달음을 얻은 계기였다. 매 공연마다 무대에 올라 100분간의 실연을 선보여야하는 그는 배우와 함께 감정을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역할이다. 피아노의 뱀프(수 없는 심플한 리듬 패턴을 위주로 구성된 부분 및 그 연주를 가리킴)를 적절하게 배치해야만 한다고. 극을 이끄는 음악코치로 배우들의 감성을 리드해 줄 수 있는 역량은 ‘쓰릴 미’의 피아니스트에게 요구되는 필수요소다. 두 연주자 모두 ‘쓰릴 미’ 유경험자로 안정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두 사람의 피아노 색채도 조금씩 달라 마니아 관객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고. 전체적인 흐름을 여유로이 파악하는 신재영과 맑으면서도 강한 음색을 자랑하는 곽혜근의 연주 색깔을 느끼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색다른 포인트다. ‘쓰릴 미’ 넘버의 특징도 그렇다. 극과 함께 흐르는 노래는 절묘하게 두 남자의 감정을 전한다. 34년 전의 감정, 그리고 진실을 기승전결을 통해 이야기하는데 그 스토리텔링을 노래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전반적인 흐름을 관객에게 전할 수 없다고. 100을 기준으로 가사 전달력이 60, 그 나머지를 40으로 본다는 게 김 감독의 전언이다. 영어와 한국어의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차이에 원곡에선 강조가 되는 정박이지만 우리말로 노래할 땐 조사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김 감독은 배우에게 텍스트를 우선시할 것을 지시할 정도로 ‘쓰릴 미’ 넘버의 포인트는 전달이다.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있으며 쇠약해진 현재의 ‘나’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의 말만 따랐던 과거의 ‘나’의 시선을 오간다. 54살이 된 ‘나’가 20살의 자신을 회상하며 “너무 멀리 왔어”라고 되뇌는 회한. ‘왔’, ‘어’란 두 음절 사이에 위치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에 숨겨진 비밀이다.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후회를 표현하는 짧은 디테일,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 형님 페어라고도 불리는 정상윤-송원근 페어는 30대의 남자배우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진중함과 노련미를 선보인다. 디테일한 손동작 하나마저 놓치지 않고 노력하고 몰입하고, 텍스트 안에서 숨은 라인을 찾는데 탁월한 배우다. 어떤 템포에서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순발력 또한 발군이라고 한다. 2인극이란 큰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그는 작은 노트 하나 놓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준다고. 김 감독이 만나온 배우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보이스 또한 그의 매력이다. 특히 2011년 이후 다시 한번 ‘나’ 역을 맡은 전성우의 성장은 놀랍다고 한다. 연출이나 음악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 빠르게 캐치하는 흡입력으로 항상 업그레이드 된 극을 선보인다고 한다. 1990년생인 그는 통통튀고 재기발랄한 매력으로 특유의 감수성을 발휘중이다. 김 감독은 아직은 어리지만 자신 안의 여러 모습을 300%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배우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마니아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배우들이 모두 공연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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