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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대통령 글쓰기 수준에 눈앞이 캄캄했다"
< 대통령의 글쓰기 > 펴낸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노 대통령의 글 쓰는 스타일은 연설하기 직전까지 고친다. 그러나 유서는 어디다 써놓고 고치지를 못하니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 한 내가 눈이 좀 높거든."
2003년 3월, 강원국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만난 노무현 대통령의 첫마디다. 이후 두 시간 동안 노 대통령의 '글쓰기 특강'은 이어진다.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최대 적이네."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 전 비서관은 이날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수준이 높은 분을 어떻게 모시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고한다. '글쓰기 특강'은 임기 5년 내내 이어졌다. 연설비서관실에서 대통령 앞으로 올려 보낸 연설문이 한 번에 통과된 적은 없었다. 노 대통령은 매번 코멘트를 덧붙여 글을 돌려보냈다. 강 비서관에게 노 대통령은 까다롭고 엄한 '글쓰기 선생'이었던 셈이다. 강 전 비서관은 이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글쓰기 비법'을 책으로 담아냈다. 지난 2월 출간한 < 대통령의 글쓰기 > 가 그 결과물이다.
"빛은 안 나는 자리다.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없고, 골방에 혼자 앉아서 계속 연설문을 쓰고 고치는 일이라 사실 청와대에 있다는 의미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화하는 시간은 많으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대통령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다. 대통령은 말과 글로 통치행위를 해야 하는데, 하루에 두세 개 연설문의 초안을 직접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보람은 큰 자리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대통령 생각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어투, 자주 쓰는 표현, 단어, 이런 것들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책상에 항상 붙여놓고 같은 의미이면 대통령이 자주 쓰는 단어로 썼다. 거기에 더해 평소 말하는 억양에 맞출 수 있게 연설문을 작성했다. 연설비서관실에서 연설문을 쓰면 항상 부산 출신 행정관이 소리내서 읽었다. 대통령 흉내를 내며 읽었는데, 듣다가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고치곤 했다. 그래야 대통령이 읽을 때 입에 딱 붙는 연설이 되는 거니까. 이를 매일 하다 보니까 일상생활에서도 대통령 말투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글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책을 쓰기 훨씬 전의 일인데 < 헌법의 풍경 > 을 쓴 김두식 교수와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김두식 교수가 글을 잘 쓰니까 청와대에 있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었던 연설문 지시사항이나 코멘트들을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김 교수가 거기에 글쓰기의 정수가 다 담겨 있다고 하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나 말하기로 평생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정치인 치고 노무현 대통령만큼 글쓰기를 고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과 글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말 때문에 가장 공격을 받은 대통령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한편으로 억울해 하신 부분도 있다. 백 가지 말이 있는데 그 중 한두 가지 쓰레기 같은 말만 담아내는 언론은 쓰레기통이 아니냐고도 했고, (국민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우체부가 배달을 잘 안 해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말에 관해서는 대통령 연습을 하지 못했다'며 반성한 부분도 있다. 본인이 살아온 과정이 우아하게 말하고 일하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학을 안 나오고, 살아온 환경이 주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류 언어를 익숙하게 쓰는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더 마음이 아프더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각인해서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말인데, 대통령의 말이 어디 따로 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놓고 거기에 안 들어온다고 공격을 하니까. 그래서 대통령이 주류언어 속으로 들어가보려고 노력도 했다."
어떻게 노력을 했나.
"청와대에서는 일종의 글 검토회의라고 할 수 있는 '독회'를 한다. 노 대통령은 독회할 때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는 단어를 말하다가도 '이런 말을 대통령이 쓰면 안 되지. 이 말은 빼고'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예를 들어 연설문 중 '나는 지금 양극화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말이 좀 격조가 없지 않느냐, 다른 말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을 가지고 고민을 했다. 노력은 계속 하셨지만, 불쑥불쑥 본인의 스타일이 나온다고, 이건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마지막 남긴 유서에서도 말과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유서에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쓰여 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그 생각이 든 순간에 돌아가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만 됐어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 유서도 머릿속에서 계속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셨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글 쓰는 스타일을 보면 연설하기 직전까지 고친다. 연설 당일 아침에도 고치고. 그러나 유서는 어디다 써놓고 고치지를 못하니 아마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다른 대통령들의 연설문은 어떻게 보나.
"권위주의 정권은 말·글보다는 행동·결과로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서는 지도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국민들이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이 사람 믿어주세요' 하면서 말이 좀 많아졌다. 그래도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도 권위주의적 면모가 강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년 시절에는 굉장히 연설을 잘했는데, 대통령 때는 연설문이 오히려 건조한 편이었다. 그래도 정치감각은 대단했던 게 연설문을 올려 보내면 딱 한 줄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다음날 그 부분이 신문 제목으로 뽑혀 나왔다더라. 기자들에게 이 부분이 대통령이 쓴 부분이라고 알려준 적도 없는데."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도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려는 대통령은 국민과 과정을 공유하려는 자세가 연설문에 스며 있다. 결과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온 과정을 설명하는 식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은 결과를 설명해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알게 모르게 '내가 가는 길이 맞고 따라오기만 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이 효율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과를 설명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국민들은 불통의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확히 말로는 그 느낌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절대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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