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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잃어버린 얼굴 1895

“명성황후, 영웅 아닌 한 여성의 삶에 초점”

by lucill-oz 201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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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잃어버린…’ 작가 장성희씨
최고 권력자로 ‘책임’ 묻는 동시에 여성적 시각서 내면 들여다봐
해원을 위한 한바탕 굿으로 승화

외세의 침탈에 유린되던 조선 말, 명성황후는 ‘최고 권력자’였다. 동시에 일본 낭인의 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조선의 마지막 국모’이기도 했다. 격동기를 치열하게 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명성황후의 삶은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복원되고 있다. 대체로 조국을 구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 여인, 일제의 야만 앞에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희생자로 그려진다.

명성황후를 다룬 새로운 작품이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서울예술단이 22∼29일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 올리는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다.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이 작품의 시선은 기존의 것과는 다르다.

“저는 한 번도 (명성황후를) 영웅으로 본 적이 없어요. 명성황후의 영혼이 무대를 볼 수 있다면 최소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고 정말 저 세상으로 갔으면 싶습니다.”


극본을 쓴 장성희(사진) 작가의 관점이다. 그러나 당대 권력자로서 명성황후에게 파탄의 책임을 묻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악으로 치부되는) 명성황후란 인물을 여성적 시각에서 다뤄보고 싶었어요. 여성이란 이유로 심하게 왜곡되고, 마녀사냥하듯 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것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도 담았습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로서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명성황후의 내면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명성황후’이면서 ‘민비’이고,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해서, 장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인 명성황후에 대한 천착이다. 장 작가는 이를 통해 ‘해원(解寃)’을 시도해보려 한다. 민중과 권력자 간의 화해, 얽히고설킨 역사의 매듭을 풀기 위한 구상이다. 이번 공연은 해원을 위한 한바탕 굿이 되는 셈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입장에서 그 여자(명성황후)의 삶을 볼 때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 이렇구나’ 하는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명성황후는 너무 권력의 측면에서 다뤄졌는데, 저는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휘’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캐릭터로 이해된다. 피난 온 명성황후를 몰라보고 험담을 늘어놓다 맞아 죽은 어머니를 둔 휘는 복수의 때를 엿본다. 죽은 지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명성황후의 혼령이 생전에 남긴 흔적과 기억을 되짚어 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명성황후는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널리 알린 배우 차지연이 맡았다.

장 작가는 연극계에서는 이미 탄탄한 입지를 굳힌 실력파다. ‘꿈속의 꿈’으로 서울연극제 대상을 받았고, ‘달빛 속으로 가다’는 새로운 예술의 해 희곡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무극은 처음인 ‘신인’이다. 음악을 몰라도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 줄 작가를 찾던 서울예술단과 의기투합한 것이 도전의 계기가 됐다. 연극계의 중진이 다른 장르에서 ‘신인 작가’가 되면서 이것저것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기도 해요. 연극에서는 작가가 n분의 1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죠. 무대의 토대를 만드는 거니까요. 그런데 뮤지컬은 작가, 연출자, 작곡가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프로페셔널’의 세상 같애요. 그래서 ‘나는 진짜 n분의 1밖에 안 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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