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람후기/연극

나는 살인자입니다. - 20190424

by lucill-oz 2019. 5. 21.
728x90

 

 

이봉련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고민 안하고 예매한 작품이다.

"날 보러 와요" 이후 나 혼자만의 팬이 되어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잠깐씩 보이면 혼자 반가워하고 감탄하고...

그러다가 공연 추천메일을 받고 바로 예매!

 

처음 가 본 백성희장민호 극장. 차없이 가야할 동네인데 도저히 차 없이 갈 엄두가 안난다.

아주 일찍 출발하여 꼭 극장 안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다!!!

아, 그리고 이 극장의 저녁공연 시간은 8시가 아닌 7시30분이다!!!

내가 이것 때문에 표 하나를 날린 적이 있다.ㅠㅠㅠ

 

근래 많은 시도를 보이고 있는 오래된 공장(혹은 창고) 건물을 컨테이너 구조와 결합하여 리모델링했다.

건너편의 <소극장 판>과 마당을 공유하는 재미있는 배치와 강렬한 RED가 인상적이다.

 

 

 

 

 

 

 

<봇코짱>

 

bar의 주인이 여종업원을 대신할 실사감 높은 로봇을 만들었다. 이름은 봇코짱. 

월급을 줄 필요도 없고 속 썩일 일도 없다.

게다가 봇코짱이 손님들에게 얻어 마신 술이 몸안에 모이면 발목의 관을 열어 손님들에게 재활용 된다.

길고 복잡한 언어는 구사할 수 없지만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하다.

상대의 말을 그저 동의하거나 혹은 단순한 의문형으로 바꾸어 말 할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짧은 대화가 남자 손님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어느날, 봇코짱에게 빠져버린 청년이 찾아와 고백하지만...

괴로운 마음에 "죽어 버릴까?" 하니 "죽어 버리세요" ㅋㅋㅋ

"죽여줄까?" 라는 말에 흔쾌히 "죽여줘요"라고 대답하는 봇코짱.

결국 청년은 독을 탄 술을 봇코짱에게 먹이고 사라지고

주인은 봇코짱의 몸에서 술을 빼내어 손님들에게 한 턱 쏜다.

하나, 둘  홀 안의 사람들은 쓰러지고...  말 걸어주는 이가 없어 심심한 봇코짱만이 홀로 아침을 맞는다. 

 

나는 살인자입니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가짜에게 몸도 마음도 뺏겨버린 진짜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했던 어리석고 빈 가슴의 진짜들.

잠시나마, 가짜가 진짜들의 고독에 위안이 되어 주었을까?

 

 

 

 

<아는 사람>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던 청년이 출장중 엉겁결에 공금에 손을 대고 만다.

자수를 하고 용서를 구한 후 열심히 일하여 갚아야 하건만

청년은 그 돈을 통째로 챙겨 아무도 모르게 숨어버린다.

일하지 않고도 몇 년 간은 꽤 괜찮게 살 수 있을 만한 돈이었다. 

한동안 모두에게 잊혀지려고 애쓰던 청년은 극도의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알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모른다고 한다.

친구도, 친척도, 심지어 내게 돈을 빌려준 사람도, 급기야는 내가 돈을 횡령한 회사에서조차 나를 모른단다.

심지어 내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모두 지워져 있었다. 

당황스러움, 그보다 더 극심한 외로움.

 

"누구 저를 아는 사람 없나요?"

 

자신을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간절히 외치는 청년의 모습은 웬지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있다.

그러자 그것을 광고에 이용하려는 자들이 나타나고, 그는 광고에, 방송출연까지 하게 된다.

누가 방송을 보고 날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늘어가지만, 그가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그를 알지만 그는 그들을 모르는 아이러니.

 

나는 살인자입니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내가 아는 세상은 진짜일까?

내가 아는 사람들을 나는 진짜 아는 걸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진짜 나를 아는 걸까?

 

 

 

 

 

<이봐, 나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큰 구멍이 나타났다.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겠고,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구멍. 

"이봐, 나와~~~~"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다.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보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브로커가 나타나 주민들이 원하는 건물을 지어주고 구멍을 차지하고

<구멍메우기회사>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처리해 준다.

이 끝없는 구멍은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심지어 원자로 쓰레기까지 흔적없이 처리해 준다.

구멍은 유형 무형의 세상의 쓰레기들을, 거기 담긴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까지도 다 받아 주었다.

 

어느날, 높은 건물 공사장 꼭대기에 앉아 쉬던 작업자가 "이봐, 나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돌멩이도 하나 그의 옆을 지나갔다.

 

곧 그들이 구멍에 버렸던 모든 쓰레기들이 그들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쓰레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행했던 모든 언행이, 다음 순간에는 부메랑처럼 되돌아 올 것이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이봐,나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배우들이 각자 마치 아카펠라 사운드를 닮은 듯한 바람소리를 낸다.

돌아가며 한 마디씩 던지며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영상과, 사운드와, 뒤통수를 때리는 결말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거울>

 

13일의 금요일. 

아내는 출근을 하고, 일상의 따분함을 견딜 수 없던 남편은 밤을 기다린다. 

13일의 금요일 밤에 악마를 잡을 수 있다는 주술적인 편지를 보며 그대로 해 본다. 

앗, 진짜 악마가 나타났다. 뿔도 있고 꼬리도 있는데 카리스마는 없다.

남자는 힘없고 나약해 보이는 악마를 괴롭히고 싶어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 역시 악마를 괴롭히는 일에 가담한다. 재미있다.

그들은 악마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마치 애완동물을 괴롭히는 못된 주인들처럼 행동한다.

악마에게 모든 스트레스를 풀어버린 그들은 밖에 나가서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밖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악마에게 점점 더 가학적이 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주 본 거울 사이로 악마가 달아나 버렸다.

부부는 이제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남편의 손에는 망치가, 아내의 손에는 가위가...

 

 

관련 이미지

 

 

13일의 금요일 밤, 그들은 서로의 악마가 되었다.

악마는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

악마는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가장 잔인한 모습을 만들어 주고는 사라졌다.

아이러니.

 

 

 

 

<우주의 남자들>

 

우주선 안의 두 남자.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몇 십년 만에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다.

남자들의 일터가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되었으니까

그 멀어진 거리만큼 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걸릴 것이다.

아니, 출근했다가 퇴근이 아닌 퇴직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들이 탄 우주선이 운석과 충돌하여 그들은 영영 우주를 떠돌게 된다.

암담한 우주선 안에서... 유서를 써 본다. 

수취인 불명의 유서를 써서 지구를 향하여 보내 본다. 잘 도착하기를 바라며.

우주선은 마비되기 시작하고, 두 남자 역시 영원히 우주에서 잠든다.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살인자입니다 이봐,나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진짜 별이 지나가듯 자연스러운 별 퍼포먼스와 엔딩 BGM이 인상적이다.

깊은 무대 덕분에 가능했던 연출이었을 듯.

 

 

 

 

 

<장치 한 대>

폐허만 남은 옛 도시의 중앙광장에 원통형의 물체가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국립 연구소의 예산을 무단으로 사용한 연구소장. 공무원에게 추궁당하고 있다.

너무 급해서 예산신청도 없이 무단으로 집행했다는 의문의 장치.

그러나 사재까지 털어서 만들고 있다는 그 기계가 정작 무엇에 필요한 장치인지는 말할 수가 없단다.   

다만 완성이 되면 반드시 모두에게 알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속 지원을 받는다. 

 

드디어 장치가 완성되었다. 장치의 용도를 묻는 사람들에게 연구소장이 말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장치라고. 

장치는 광장에 전시되었다. 

사람들이 그 장치의 버튼을 눌렀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장치에 붙어있는 팔이 나와서 버튼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뿐이었다.

연구소장은 졸지에 사기꾼이 되었다. 그는 파면당하고, 잘 지내다가 죽었다. 

장치는 이런저런 분란과 논쟁을 낳으며 광장에 존재했다.

그러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장치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무서운 장치, 누르면 안되는 버튼이 눌러졌다.

그리고 모든 세상의 생물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광장의 그 장치만이 홀로 서 있을 뿐.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장치 내부에서는 인류멸망을 애도하는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이봐,나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것은 연극인가 무용인가. 인상적인 움직임.

 

 

여섯 개의 짧고 강렬한 에피소드.

소재도 형식도 내용도 전반적으로 아주 시니컬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