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람후기/뮤지컬

바람직한 청소년 - 20150221

by lucill-oz 2015. 2. 22.
728x90




관심은 갔으나 망설이고 있다가 솔양의 적극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재, 실사감(현재의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 음악, 재미, 


클라이막스에서 강하게 던져주는 감동까지!


물론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다. 목소리까지 좋아!


박현신 역의 문성일의 입에 착 달라붙는 맛깔스러운 욕설과 

어디나 꼭 있을 것 같은 종철, 기태의 재밌고 실감나는 캐릭터.

아, 그러나 우산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구도균의 폭풍우! ㅋㅋㅋ

전형적인 모범생에다가 우등생인,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정이레 역의 주진하.

우리 솔양의 예쁨을 엄청 받고 있는! ㅎㅎㅎ

지훈 역의 강민욱은 '레베카'에서 단역이지만 인상적인 연기와 목소리로 기억에 남았던 배우인데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여전히 좋은 목소리.

전체적으로 캐릭터와 배우들의 씽크로율이 매우 높아보이는 흐믓한 느낌이었다. 

 



훔친 오토바이로 도로를 폭주하다가 엄청난 교통사고를 유발하지만 정작 본인은 멍쩡한 현신.

리고 전국 석차 0.3% 이내의 엄청난 성적으로 서울대를 예약해 놓은, 학교를 빛내줄 아이였던 이레.

이레는 단짝 친구인 지훈과 키스하는 사진이 몰래 찍히며 

하루아침에 동성애자로 찍혀 전교생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아이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지훈의 아버지는 아들을 강제 퇴학시키고


이레와 현신은 학교 '반성실'에서 열흘을 함께 보내게 된다.


살아온 방식이 다른 두 친구. 현신는 말과 주먹으로 해결하려 하고, 


이레는 머리를 써서 현신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반성문을 대신 써테니 범인 잡는 일을 도와달라고. 콜!


반성실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들 대신에 현신은 친구들을 시켜 범인을 추적한다.


그러는 사이에 현신의 여친은 주먹 2인자 종철의 여친이 되고, 


이레의 빈 자리를 역시나 성적 2인자 기태가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잡은 범인은 학교 최고의 왕따 봉수.


봉수는 아이들의 폭력을 피해 학교 옥상의 구석진 곳에서 아이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혼자 숨어있다가

교사들의 불륜을 목격하기도 하고, 이레와 지훈이의 알콩달콩한 모습도 지켜보게 된다.

나는 널 괴롭힌 적이 없는데 왜 하필 나였느냐고 울부짖는 이레.

봉구는 나는 이렇게 혼자고 힘든데, 내 편은 아무도 없는데 너희들만 행복해보여서 그랬다고 말한다.

깡패새끼도 선생새끼도 게이새끼도 다 행복한데 왜 나만 불행해야 하느냐고.

그런 모습의 봉구에게 현신이가 많이 아팠느냐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서로의 아픈 모습을 진정으로 바라보게 된 아이들...


반성실에서의 열흘이 지나가는 동안 이레는 지훈의 전화를 받지 못한다.

이레는 자신들의 사진이 게시판을 도배하던 날, 

당황한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지훈의 손을 뿌리친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다. 


내가 그애의 손을 잡아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그애를 부정하는 행동을 하다니...

이레는 무사히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위선적인 반성문을 작성할 수 있는 뛰어난 소설을 써 냈지만

그래서 학생주임으로부터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 반성문으로 끝까지 징계위원회를 통과하기를 거부해버리고 만다.



이야기는 철저히 아이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이 아이들이 안타깝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시각, 부모의 시각, 교사의 시각,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아이들은 그저 문제아들일 뿐이고 부끄러운 존재들일 것이다.

바람직한 청소년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어른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주는 것 아닐까. 


"바람직하다"는 것은 

주로 통제를 하려는 계층에서 그들에게 통제당해야 하는 이들에게 제시하는 고도의 가이드라인이다.

그 선을 넘으면 별로 너에게 좋지 않을거야, 그러니 알아서 행동 해! 라고 말하는 무언의 압력 말이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도 그 바람직이라는 말에 상당히 갇혀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강요했었다기보다도 온통 이 사회가 그랬었고 특히 가정이 그랬을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남과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참으로 피곤한 존재들일 테니까 말이다.

바람직한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고, 그 바람직한 울타리를 잘 지켰던 것 같다.

물론 그 바람직하다는 것의 가치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 어떤 사람 개인에게 불행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을 보면서 문득문득 나의 그시절도 떠올랐다. 삼십년전의 그 시절.

그 때나 지금이나 교실의 풍경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의 여유가 없어진 만큼 앙상하게 남은 불안정한 감정들만 삐뚤게 발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야 물론 여학교니까 현신이같은 애들은 없었겠지만 학교마다 다 있는 칠공주니 오공주니 하는 애들도 있었고,

나처럼 삼년 내내 꾸준히 자율학습을 땡땡이치던 애들도 있었다.

극중 고재범이처럼 집안 형제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들이어서 

같은 대접을 받으려면 꼭 서울대를 가야한다는 강박감이 있으나 실제로는 노력만큼 그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정말로 안타까운 친구도 있었다. 

시험을 치룰 때마다 그 결과로 우열반을 나누어 수업방식 뿐만 아니라 애정마저 차별하던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적성에 맞추어 대학과 학과를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성과를 자랑하기에 우선하여 원서를 써 주려던 선생님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왕따문화는 없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 나에게도 이레와 지훈이처럼 아주 각별히 친하던 친구가 있었다.

우린 고교 삼년 동안을 붙어다닌 것도 모자라 대학까지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진학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앞뒤자리에 앉았던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의 다른 면에 끌렸었고,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청소 후 다른 애들이 다 기피하는, 쓰레기통을 소각장에 가져가서 비우고 오는 일을 맡아놓고 했었는데 

교실에서 멀리 떨어진 소각장에 가는 길을 마치 오붓이 나들이를 가는 양, 

데이트를 즐기는 기분으로 즐거이 다녀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애와 나누었던 교감은 정말이지 영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우린 엄청난 텔레파시를 공유했으며, 다른 친구들은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어도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한두 마디의 말로도 많은 말을 전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의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우리는 늘 같이 있었고 함께 대화하고 노래했다. 

학교 뒷산의 철망 울타리를 넘어, 그야말로 들로 산으로 학교 주변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몇시간씩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매우 추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아주 활달한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언제나 벽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인식시켰고 

나는 그애가 나에게만은 그 마음을 열도록 해 주고 싶었었다.

그런 우리를 보는 불편한 시선들도 있었는데

그건 이레와 지훈이처럼 동성애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질투심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 아이를 내가 독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동성애라는 것 자체도 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나도 우리의 사이를 남들보다 많이 "깊은 우정"이라고 생각했지 

우리의 우정이 동성애라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아, 물론 우린 서로 손을 잡은 적은 있었겠지만 뽀뽀를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서 남자 동기들이 그런 얘기를 했었다. 너희 둘, 서로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다고^^

그런데 서른이 훨씬 넘은 어느 날, 둘 다 술이 약한 우리가 친구가 하던 카페에서 칵테일을 한 잔 한 후 

그 친구가 근처 레코드점에서 내게 CD를 한 장 사주며 이렇게 써 주었었다. 넌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그 때는 이녀석 취했구만 하고 웃어 넘겼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게도 그 친구는 첫사랑이었구나 싶다.

우린 둘 다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그 친구를 만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 됐다. 한 2년 쯤?

어린 시절에 유난히도 굴곡이 많았던 그녀가 이제는 많이 안정이 되어 잘 지내고 있으니 

난 진심으로 좋은 마음이다.

아마도, 극중의 이레와 지훈이도 건강하게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다면 

그들 앞에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애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씬, 옥상에서 왕따 봉수의 절규에 현신이가 많이 아팠느냐며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다. 눈물이 핑! 우리 솔양은 이미 눈물이 주루룩!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의 진심어린 사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현신이가 그것을 아는 현명한 친구라는 것이 또한 좋았던 점이다.


열아홉살, 고3이라는 시기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경계선에서

입시라는 외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시기다.

행복도, 웃음도, 하고 싶은 것도, 사랑도 다 미루고 오직 하나에만 쏟아야 하는...  

그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는 많은 친구들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고 싶다.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그것이 비록 상처뿐인 것들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비록 못난이 진주가 되더라도 

모두 보석같은 재산이 될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728x90

'관람후기 > 뮤지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 - 20150322  (0) 2015.03.24
through the door - 20150314  (0) 2015.03.15
사춘기 - 20150207  (0) 2015.02.08
마리앙투아네트 - 20150114  (0) 2015.01.15
2014 쓰릴미 - 20141213 (김도빈, 정동화)  (0) 2014.12.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