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방'이라는 곳에 출입할 수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 "음악 감상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 전용 음악 감상실도 있었고, 팝음악 감상실도 있었는데
당시 내가 단짝 미정이와 가끔 가던 곳은 "본"이라는 팝음악 감상실이었다.
삼백원이었던가, 사백원이었던가...
암튼 당시 다방의 커피값과 비슷하던 입장료를 내면 음료수도 한 잔 씩 서비스해 주었었다.
허름한 건물의 좁은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 역시 허름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둠침침한 실내에, 앞쪽엔 디제이 박스가 있었고 모든 좌석은 그 디제이 박스를 향하고 있었다.
테이블도 없고, 의자 디자인도 제각각으로 어디서 중고품 한 두가지씩을 모아온 듯 했다.
그나마 좀 편안한 소파는 가운데가 푹 꺼져있기까지 했었다.
그 푹 꺼진 소파에 나란히 앉으면 자연히 두 사람의 몸이 가운데로 몰리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각자 헤드폰을 하나씩 쓰고 앉아 있으면
마치 해방구에 들어온 듯한 특별한 기분에 잠기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출입하는 여학생은 별로 많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분위기가 선입견처럼 불량스럽지는 않았던 것이
그래도 나름 음악 좀 듣는다고 자부하던 친구들이 출입하는 곳이어서였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좀 소란스럽다 싶으면 바로 나와 주의를 주던 주인장.
거기서, 나름 전문 DJ라는 자부심을 가졌음직한 그들이 간혹 설명을 곁들여가며 들려주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DJ가 이 음악을 알까 싶은 치기어린 마음에 흔히 들을 수 없던 음악을 신청한 적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우리의 한 때를 함께 했던 그 장소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가 아니면 그 이후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없어지고 말았다. 아마 누적된 경영난이 아니었을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 다방만큼이나 손님이 많을 리가 없었고
그나마 한두명 입장객이 들어오면 몇시간씩 앉아있다 가는데
임대료에 DJ월급에... 그렇게 몇년이나 유지해 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였으니...
그 이후 갈곳이 마땅치 않아진 우린 한동안 거리를 방황했었을 거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도 가보긴 했었다.
제법 잘 갖추어진 실내였고 분위도 좀 밝은 편이었던 기억이다.
의자는 푹신한 소파가 아닌 반듯하고 딱딱한 등받이 의자였고...
그런데 그러한 분위기가 낯설어서인지, 아니면 익숙지 않은 클래식 음악이 낯설어서인지
금방 나오게 되었고 두 번 발걸음하진 않았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엔 물론 음악다방에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기에
(하지만 대학 1학년 초에는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는 다방 주인의 요구와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쫒겨난 아주 기분 드러운 기억도 있다)
음악 감상실에 대한 기억도 점점 잊혀지게 되었지만
어젯밤 삼십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보다가 눈에 들어온 한 줄
"사랑스러운 장소 '본'이 없어진 이후로..."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억은 어느새 그 시절로...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어제 일처런 또렷이 다 기억이 나는 것일까!
그 일기를 쓰던 그날의 기분까지도...
어쩌면 나는 스무살 고개로 넘어오던 해의 나를 너무 가엾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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