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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노무현

참여정부 5년, 빛과 그림자

by lucill-oz 200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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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5년, 빛과 그림자
[노컷뉴스] 2008년 02월 20일(수) 오후 05:25   가| 이메일| 프린트

▶ 진행 : 신율 (명지대 교수/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무소속 유시민 의원 /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 이하 방송 내용 )
유시민 '이명박, 참여정부가 이뤄 놓은 현실에서 출발해야'
⊙ 신율/진행>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의 스타일이나 성격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 유시민 의원> 그건 주관적인 인상비평이지 아직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당시 집권세력의 비주류에 속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됐고, 이명박 당선인도 정치적으로 한나라당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하는 분이라는 점은 닮았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가 되는 분은 나름대로 뚜렷한 소신은 한칼씩 가지고 있다. 그런 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역사를 대하는 태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은 인간관계가 수줍다. 반면 이명박 당선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고성국 박사> 두 분 다 비주류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행태상 유사한 점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어법 같은 게 유사하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나름의 관점과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데 비해 이명박 당선자는 이해관계라는 틀 속에서 움직이는 측면이 다르다.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신념과 의지로 모인 사람 간에 깊은 인간관계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매우 수줍음을 탄다. 반면 이명박 당선자는 누구든 이해관계의 틀 속에서 같이 할 수도 있고 따로 갈 수도 있다.

⊙ 유시민 의원> 동의한다. 두 분 다 예전 대통령에 비해 직설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건 두 분의 개성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난 민주화 20년 동안 더 이상 국가 지도자에게 위선적인 언어나 이중적인 행태를 받아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변화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

⊙ 고성국 박사>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당선자나 정치를 신화의 영역에서 생활로 끌어들이고 세속화시킨 분들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상당히 발전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 신율/진행> 2002년 대선 직후 2003년 초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히 높았는데?
⊙ 유시민 의원> 이명박 당선인께 공개적으로 청하고 싶다. 모든 정권은 취임하는 날 끝난 정권이 만들어놓은 정치, 사회, 문화적인 환경에서 출발한다. 그것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남겨준 바탕 위에서 첫걸음을 땠다. 많은 부분이 그 전 정권에서 연장되어온 것들의 규제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도 김영삼 정부가 막판에 만들어놨던 IMF라는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 속에서 많은 제약을 받으며 나갔던 정권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주관적인 의지나 지향이 아무리 그전의 권력 담당자들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런 의지와 지향만으로는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좀 더 면밀하게 참여정부 막바지에 와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 바탕 위에서 한걸음씩 전진하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임한다면 인수위가 지난 두 달 동안 한 것보다는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고성국 '이명박과 한나라당, 선거 관성 버리지 않아 국민통합 저해'
⊙ 고성국 박사> 선거에서 이긴 사람은 그날로 선거를 잊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두 달 전에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모든 걸 다 했다. 더구나 10년 동안 그렇게 노력해왔기 때문에 그 관성이 오래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12월 22일부터는 선거는 완전히 잊고 국가 경영자로서의 입장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점 때문에 아젠다를 국민 통합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논쟁적으로 제시하게 됐다. 논쟁적으로 제시하게 되면 찬성자도 있는 반면 반대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지율 차이로 나타난다. 특히 이명박 당선자나 한나라당의 다수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데 일부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선거 때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으나, 그런 식이라면 뺏긴 쪽에서는 다시 와신상담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래서는 국가가 통합적으로 통치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실장으로 내정된 유우익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유우익 교수는 '지난 두 번의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화를 세계역사에 전례 없이 성공적으로 이뤘고, 그 과정에서 미진했거나 왜곡된 부분이 바로잡히는 시기였다'라고 참여정부와 김대중 정권을 평가했다. 이런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 신율/진행> 왜 국민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를 받아들이게 됐을까?
⊙ 유시민 의원> 예전 기억이 난다. 2001년 당시 어느 토론회에 나갔는데 주제가 '잃어버린 5년'이었다. 잃어버린 5년 얘기가 그때부터 나왔다. 당시 나는 황당한 얘기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 연장선 위에서 잃어버린 10년론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현상적으로 보면 국민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상징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이라는 건 잘했든 잘못했든 지난 10년간 국가를 경영했던 권력에게 다시 국가 경영을 맡기고 싶진 않다, 바꿔보고 싶다,는 의사다. 지난 시기를 긍정하면서도 또 바꾸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0년의 집권세력이 자기 시대에 부여된 소명을 어느 정도 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펼쳐질 5년 동안 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걸 줄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동안 고생했다, 앞으로 5년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본질적인 선택의 내용은 그런 것이었다고 본다.

⊙ 고성국 박사> 그런 형태의 정권교체가 선진국형 정권교체다. 그래서 승자도 패자도 국민들을 무섭게 알고 섬기면서 다시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제로섬 게임적 프레임에 빠져버리니까 나라 발전에 좋지 않다.

유시민 '잃어버린 10년 부정한 유우익 발언,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것'
⊙ 유시민 의원> 일종의 편 가르기 식의 상징이다. 유우익 대통령 실장 내정자의 말씀이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 인수위의 활동 방향이 달라지고 새 정부를 대하는 국민의 기대도 지금보다 훨씬 우호적일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 신율/진행> 국민들 입장에선 당장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구호가 받아들여진 건 아닐까?
⊙ 고성국 박사>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거구호는 다수의 국민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참여정부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서라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정의 실패보다는 정치의 실패가 주원인이라고 본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을 설득하고 어떤 방향으로 모아가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가 가장 점수를 잃어버린 영역이 부동산 영역이다. 그러나 나는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참여정부가 일관성을 가지고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세금을 정책수단으로 쓰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는데 참여정부는 세금을 정책수단으로 써서 3년 동안 우직하게 밀어붙였고, 그 결과 부동산 값이 잡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 하나 때문에 부동산 값이 오르고 매물들이 다시 들어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도 그때서야 사태가 심각한 줄 알고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바꾸려다가 상당한 유보기간을 두면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급하게 바꾼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잘못 평가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잘못 평가된 부분을 국민의 책임이라고 돌리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실패라는 것이다.

⊙ 유시민 의원> 그런 면이 있다. 총체적으로 보면 부동산과 양극화 문제가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중간에 혼선이 있었다. 유동성 규제를 제대로 못해서 현금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아서 좀 늦게 투입했다. 늦게나마 강력하게 투입했기 때문에 지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같은 게 우리에겐 별로 영향을 안 주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해지는 걸 강력한 수단을 통해 막았다. 세금정책만 쓴 게 아니고 유동성 정책까지 나중에 투입해서 막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좀 우왕좌왕하고 적기에 투입하지 못한 정책 오류가 있었다.

⊙ 고성국 박사> 그 과정에서 초기에 당정 간에 불협화음처럼 나타났던 게 결정적이다.

⊙ 유시민 의원> 2002년 대선 때 양극화는 쟁점이 된 적이 없었다. 누구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되리라고는 그 당시에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IMF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뒀고, 그 후유증을 어느 정도 치유하느냐의 문제의식만 있었다. 이렇게 국민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구조화되리라고는 충분히 예측을 못했다. 그런데 임기 중반에 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뒤늦게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양극화는 IMF 이후에 신자유주의, 시장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의 경쟁체제 강화로 인해 일어났는데, 이것을 제어하거나 완화할만한 정책수단을 정부가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정책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구조적 원인을 따져보면 이것을 극복하는 데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시민 '노 대통령이 소통의 문제를 겪은 건 계몽주의적 오류 때문'
⊙ 신율/진행> 정치 실패의 측면은?
⊙ 유시민 의원> 대통령의 소통 실패도 일부 원인이 있고, 한국정치의 구조적 불안정 문제도 있다. 대통령께서 소통에서 가장 문제를 겪으신 건 상당부분 계몽주의적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다. '내 판단이 옳은데 왜 국민이 안 알아주지? 왜 언론은 내가 주장하는 내용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해 왜곡해서 전달하지?' 이런 것들로 인해 소통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굉장히 위축되고 방어적으로 됐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오해, 즉 계몽주의적 함정에 빠진 부분이 국민과의 정서적 소통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그것이 다른 개별정책을 수행하는 데도 어려움을 준 원인이 됐다.

고성국 '이명박, 평교사와 영어교육 논란 토론할까 걱정'
⊙ 신율/진행> 계몽주의가 선악에 있어서의 이분법적 사고와 관련이 있을까?
⊙ 고성국 박사> 관련이 있다. 근본주의적인 정치철학이나 도덕주의적인 정치철학 같은 게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로 나타날 땐 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가 쉽다.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대통령이 방어적으로 됐는데, 사실 집권 초반엔 상당히 공격적이었던 측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검찰 개혁을 하려는데 잘 안 된다고 하니까 대통령 자신이 직접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영어교육이 논란이 됐을 때 '이해를 잘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설득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는데, 만약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내가 설득하겠다, 평교사들과 모임이라도 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굉장히 공격적이었다가 굉장히 방어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증폭이 너무 크다보니까 국민들은 안정성이라는 문제를 느끼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presidency를 유지해줘야 한다. 그 점에서 불안해지니까 국민들이 같은 얘기를 들어도 신뢰를 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뢰의 위기까지 오게 된 악순환의 고리가 있었다.

⊙ 유시민 의원> 소통의 실패이고, 소통의 실패와 관련되어 있는 정치의 실패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소통 실패는 한국정치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더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당정분리라든가 여야 간의 갈등대립, 지역간의 대립구도를 생산해내는 선거 제도, 불합리한 선거 주기 같은 것들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소통 실패나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도록 증폭시켰다. 이 오류는 잘못하면 이명박 정부에서도 똑같은 양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건 국가적인 불행이다.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행동방식이 유사하게 나타날 경우 똑같은 방식의 증폭작용을 거쳐서 그것이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로 직결되는 불행한 사태가 올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여야나 이명박 대통령은 갈등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는 선거 제도나 선거 주기, 정당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상의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은 본인의 소망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의 요구나 소망을 반영하는 쪽으로 대통령도 자기를 좀 죽여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도 이번 인수위 과정을 통해 그런 점을 느끼셨다면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안정된 가운데 국정운영을 하실 수 있을 것이다.

⊙ 신율/진행> 선거 주기라는 건 원포인트 개헌을 말하나?
⊙ 유시민 의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선거 주기가 5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주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때로는 원만하게 중간평가 성격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모든 정치과정 자체를 승패의 관점에서 몰아가는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 선거 때마다 정치지형이 불안정해지면서 정치인들의 현재 입지가 죽느냐 사느냐 식으로 위험하게 걸려버리는 불안정성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고성국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혼선의 원인은 콘트롤 타워 부재'

유시민 '노무현 정부 초기 카드 부실 막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아쉬움'
⊙ 신율/진행>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분양원가 공개나 분양가 상한제를 더 빨리 시행했다면 결과가 좀 더 좋지 않았을까?
⊙ 고성국 박사> 혼란은 있었는데 그 혼란을 가장 먼저 제공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분양원가 공개 여부를 두고 혼란을 줘버렸다. 그런 고민이 정황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부동산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서 투기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방향은 분명히 서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이자 참여정부의 기조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칫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시장은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투기는 근절해야 한다는 것에서 나오는 정책적 선택이 그리 넓지 않아서 그 사이에서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고심이 대통령과 정부와 당 사이에서 내밀하게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국민에게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되면서 말 한마디에 국민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고 부동산이 춤추게 되는 식의 정책 혼란이 초기 1년 가까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정권 차원에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일종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매우 취약했다는 느낌이다.

⊙ 유시민 의원> 그런 지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관제실이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정보를 다 받아서 조율해서 신호를 보내주는, 그래서 각자가 역할분담을 해서 당은 당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움직여주는 게 초기에 미흡했다는 점은 나도 당시에 느꼈다. 그런데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다만 하나의 정부를 평가할 때 주관적 잣대에 의해 자기 소망에 견주어 점수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출범 당시에 주어졌던 과제가 무엇이었는가에 비춰서 그 정권을 평가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집권 초기에 우리가 가장 고민했던 첫 번째 현안은 LG카드를 비롯한 카드사의 위기,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당시 카드사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사재출현을 강제하려고 하고, 국책은행이 출현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걸 신관치금융이라고 대단히 비난했다. 그리고 당시에 정부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던 어떤 은행장이 영웅처럼 뜨기도 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LG카드 사태를 잡았다. 그래서 이 회사가 살아서 주가가 엄청나게 오르고 금융시장에 충격이 없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많은 노력을 들여서 해결했던 문제인데, 문제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어 버렸다. 두 번째 문제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자영업자 수의 빠른 증가였다. IMF 이후에 실직한 분들이 자영업으로 진출하면서 자영업자 비중이 OECD 선진국의 3배 정도 될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공급 과잉이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리고 대북관계를 관리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임기 내내 있었다. 초기에 한미관계가 좋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사이에 불화가 있었고, 제네바 합의가 다 깨졌다. 북한 문제를 관리하는 게 큰 위기상황이었다. 이걸 하는 와중에 양극화 위기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런 과제를 부여받고 출범한 정부였다. 초기에 직면했던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해냈으며, 임기 중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의 부분들을 차분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고성국 '부시 행정부는 시라크, 슈뢰더보다 노무현 대통령을 훨씬 더 신뢰했다'

유시민 '아버지 부시가 부시 대통령에게 "노무현은 너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 신율/진행> 참여정부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등 미국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한미관계가 가장 껄끄러웠던 정권'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뭘까?
⊙ 고성국 박사> 국민 다수가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2001년부터 2005년 동안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이라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 대해 실무 총책임자 역할을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며칠 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나 주한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보다 훨씬 일을 잘한 것 같다. 한미관계도 전두환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 때 훨씬 더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 특히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 입장에선 국가적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이 문제에 관한한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나 독일의 슈뢰더 총리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훨씬 더 신뢰했다'고 말했다. 그건 부시 대통령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이후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당신이 나보다 이 어려운 문제를 더 잘 처리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마이클 그린 전 보좌관은 '참여정부 기간 동안 한미관계는 굉장한 발전이 있었다. 다만 두 가지 때문에 고비마다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두 가지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 그리고 국제외교를 하다가 갑자기 국내용 발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 대통령 모두 돌출적인 발언이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몰라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자들이 늘 전전긍긍했다는 고백도 나온다. 미국 측의 실무 책임자가 이 정도로 평가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관계가 불안했다는 인상적인 느낌과는 달리 미국 측에선 참여정부 기간 동안 한미관계가 상당히 실속 있게 잘 진행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도 이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본다.

⊙ 유시민 의원> 한미관계만큼 평가가 이상하게 된 게 없다. 일단 한미 FTA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해달라고 했지 미국이 해달라고 했던 게 아니다. 물론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미국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우리가 선대적으로 추진해서 한 거지 미국 압력에 밀려서 한 게 아니다. 이라크 파병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인데,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정말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 목적 때문에 파병한 것이다. 대통령도 그런 입장이었다. 평택 미군기지 문제는 양쪽 모두가 이익을 원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다만 한미관계가 이렇게 불안정한 것처럼 보인 건 언론 탓을 안 할 수가 없다. 순전히 언론 때문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일부 언론에서 이데올로기적 목적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를 너무 많이 했다. 미국 네오콘 쪽에서 나오는 발언이라든가 일부 전직 외교관들의 발언을 굉장히 침소봉대해서 보도함으로서 마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런 것이 국민을 굉장히 불안하게 했다. 한미관계는 하다보면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서로 자기이익 챙기는 과정에서 큰소리도 나고 접시도 깨지는 게 정상적인 것이다. 마치 미국이 원하면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한미동맹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인 양 얘기하는 건 정말 국익에 해로운 보도다. 그런 게 임기 내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북핵 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실험한 핵무기가 짝퉁이라 하더라도 핵무기는 재래식 무기와 달리 짝퉁도 명품만큼 위력이 세다. 우리는 존재가 걸려있는 문제니까 우리 입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잘 처리했다고 본다. 국내용 발언과 관련해서는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개성이 많이 연관된 일이다. 우리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아버지 부시에 대해 공을 많이 들였다. 여러 루트를 통해 초청하기도 하고, 대통령이 만나시기도 하고, 잘 대접해서 보내드렸다. 내가 들은 후문으로는 아버지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서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첫 번째 정상회담 직전에 아들에게 'your kinds of guy', 즉 '노무현 대통령은 너와 코드가 비슷하니 만나서 잘 얘기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집요하게 부시 대통령의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면서까지도 꼭 멘트를 받아놓으려고 했던 게 있다. 북한을 선제공격 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부시 대통령이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질문해서 답변을 받아낸다. 이런 건 나쁘게 보면 우리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좋게 보면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 입에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되어 있는 구체적안 언급을 받아내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 고성국 박사> 94년 북핵 위기가 심각해져서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해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아주 고압적으로 해서 결국 공격 의도를 좌절시켰다.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일관성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 신율/진행> 일부에선 '북한이 노무현 정부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끊기보다는 차라리 금강산 관광 같은 걸 제한적으로 끊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포장만 포용정책일 뿐 갈팡질팡 정책'고 비난하는데?
⊙ 유시민 의원> 열흘 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한 마지막 국정과제 회의에서도 일부 토론자들이 정확하게 그 문제를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인도적 지원이라고 해서 국민의 모든 정서와 여론을 무시하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국내정치적 여론의 메커니즘을 벗어나기 어렵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북이 무슨 일을 하든 무조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건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금강산 사업이라는 것은 호혜적인 것이다. 우리도 이익을 보고 북한도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고성국 '이명박,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계승해야'

유시민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서 벗어나는 정책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 고성국 박사> 북핵 위기는 국가적 사활이 걸린 풀기 어려운 문제다. 북한 정권도 정권을 다 걸고 하는 도박이다. 참여정부가 이 문제를 지난 5년간 잘 관리했는데, 정권 차원에서 관리한 게 아니라 다자 틀(6자회담)을 통해 관리했다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밀고 당기기가 있지만 그러나 여기까지 관리되는 것은 6자회담이라는 다자 틀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자 틀 내에서 중국의 역할을 적절하게 부각시켜주면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심리도 유발시켜가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 기조가 계속 확대, 발전되는 방식으로 통일정책이 다뤄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고 싶다. 통일 문제나 한미 관계와 관련해서 국민적으로 큰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 중에 이른바 '386 세대들이 외교정책이나 통일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통일정책이나 외교정책이 좌경화된 것 아닌가'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건국 60년 동안 우리나라 외교, 특히 대미외교는 전문 관료들의 독점구도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지난 5년 동안 전문 관료들 사이에 정치인들이 섞여서 외교를 해본 것이다. YS 정부 때 문민화를 얘기하면서 군부로부터 민간의 정치의 복원을 주로 얘기했는데, 사실은 전문 관료들이 독점했던 여러 영역들은 여전히 독점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가 그 영역과 일종의 성역을 깼다는 점이 있다. 그 부분에서 이분들이 다소 정치적으로 아마추어리즘 같은 실수를 한 점은 있다. 그러나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박사의 경우 박사 논문이 김정일 연구였는데, 이 논문은 '찬양도 하지 말고, 무조건 비판도 하지 말고, 실사구시대로 제대로 사실을 알고서 판단하고 비판하자'는 게 논문의 기조다. 이것을 친북이라고 한다면 친북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의 아주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특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대학 분위기에서 이종석 박사는 재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으면서 자기 소신대로 연구해온 사람이다. 이런 점들은 이후에라도 제대로 알려질 필요가 있다.

⊙ 유시민 의원> 북한 문제, 북핵 문제, 한미관계는 다 얽혀있다. 북핵 문제 때문에 북미관계가 많이 꼬여있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심기가 상해서 화가 많이 나셨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처지가 너무 한심했기 때문이다. 북미가 대결적으로 나가면서 미국은 군사적 위협을 입에 올리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북한을 달래기 위해 북한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야 하는데, 미국이 뭐라고 하면 그것도 맘대로 못하고, 우리가 북한과 대화해서 가다가도 북미관계가 험악해지면 모든 게 다 중단되어버렸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관리해나가는 데 우리의 주도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북미관계가 그래왔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리권한이나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북한과 미국에 의해 독점된 양상으로 흘러왔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가 굉장히 큰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6자회담 틀을 이용하고 남북관계를 터나가고, 부시 대통령과 잘 대화해나감으로서 6자회담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정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성을 어떻게든 찾고 싶었던 게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욕망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북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일시적으로 끊은 행동이 왜 나온 것인가를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분노, 이건 누구든 그 자리에 가면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당선인도 자칫하면 그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라크 파병부터 시작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는 주체의 문제와 엮어서 본다면 참여정부 5년 동안 결정적 진전을 이룬 건 아니지만 앞으로 큰 진전을 이루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진도를 차분히 밟아왔던 5년이었다. 일부 과민한 행동이나 실수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자기중심을 잡고 잘 관리해왔다고 본다.

⊙ 신율/진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참여정부 때와 달라지면 안 된다?
⊙ 유시민 의원> 달라지면 안 된다. 그런데 남주홍 교수가 통일부장관으로 지명됐는데, 대통령이나 장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그것이 '비핵개방 3000'이든 북핵 문제의 안정적 관리든 목표가 타당한 것이라면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방하면 3000불을 만들어주겠다는 건데, 전제조건이 2개나 붙어있는 전략이다. 북한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이것을 북한에 강제할 수단도 없고, 북한으로 하여금 이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매력적인 당근도 없다. 이런 것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한 것이지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 어떤 정책수단도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기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이 온 데서 더 많은 발전과 보완이 있어야 하겠지만 큰 틀에서 이것을 벗어나는 다른 정책수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가볍게 보고, 함부로 북한을 정상적인 상대인 양 생각하고 비전이 있듯이 했다가는 자칫 10년간 잘 관리해온 한반도 평화정세가 일순간에 위기상황으로 갈 수 있고, 그것은 곧장 해외에서의 한국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한국의 국가신용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불행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고성국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이룰 수도...'
⊙ 고성국 박사>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탈냉전이 시작됐는데, 그 출발은 미국의 가장 우파라고 알려졌던 닉슨 대통령과 가장 우파 지식인이라고 알려졌던 키신저 국무장관이 열었다. 그것은 그들이 중국과 개방해야겠다고 문을 열었을 때 누구도 그들을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조차 그런 것이다. 유시민 의원께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를 나름대로 잘 관리해왔으니 여기서 좀 더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건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한다면 아무리 우파라도 그걸 퍼주기라고 비난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라면 정말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을 해낼 수 있다. 단 그것은 참여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성과 위에서 가야 할 수 있다.


유시민 '거대언론, 여전히 겁난다'

고성국 '이명박 정부, 권언유착 우려된다'
⊙ 신율/진행> 노무현 정부의 언론관에 대해 어떻게 보나?
⊙ 유시민 의원> 우선 말하기가 겁난다. 진실을 말하는 게 때론 크나큰 박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 언론은 원래 정권을 비판한다. 권력을 비판하는 게 언론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러나 언론이 하는 모든 비판은 다 성역인가. 거기서 비판을 당하는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신문보도에 대해 어떻게 발언하나. 언론기관은 반론을 안 실어준다. 언론은 비판할 권한이 있는데 언론의 비판을 받는 사람은 그것이 타당하다면 수용하고 고쳐야겠지만 그것이 타당하지 않거나 왜곡된 것이라면 반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기관은 지면상에 반론권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그럼 할 수 없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재소하거나 소송을 걸어야 하는데, 그럼 또 언론중재위원회에 소송이나 재소를 많이 한다는 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답답해서 '정부가 직접 국민들에게 말씀드리자'는 뜻에서 청와대 브리핑을 만들면 '대통령이 신문사 사장이냐'는 말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힘 있는 언론사에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정치인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서도 겁이 슬금슬금 난다. 나도 한때 큰 신문사들에 대해 얘기했다가 몇 년 지나고 보니 괜히 했다 싶다.

⊙ 고성국 박사> 그러나 정권 말기에 대통령께선 '대못질을 한다'는 표현까지 하셨다. 그 대목은 역시 정상적인 통치 과정이라기보다는 오기가 많이 담겨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전까지는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했다. 그래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4:6 정도였던 걸로 안다. 그런데 그 단계를 지나서 진짜 대못질을 해버리는 과정은 합리성이 결여됐던 시점이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선거 과정에서 공방의 대상이 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것부터 원상복귀하겠다고 바로 치고 나가서 마치 그게 또 하나의 기정사실화되어버리는 것처럼 돼서 애초에 참여정부가 가졌던 문제의식까지 실종되는 결과가 됐다. 그 점은 반성적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 유시민 의원> 나도 공감한다. 우리도 대통령께 많이 건의했다. '그렇게 하면 다치십니다. 국정 운영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싸움은 해봐도 못 이깁니다. 의미가 있는 대립이지만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도 없고, 언론을 바꿀 수도 없고, 우리가 매를 맞아서 완전히 죽게 됐으니 대통령께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건의를 많이 드렸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이 단계를 한번은 거쳐야한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5년간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언론과 정치권력도 지난 시기와는 달라질 것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 판단이 현실적으로 맞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점은 언론 스스로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 신문들은 자신이 여론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가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의사결정을 내린 것 같다. 그런 경우 시장에서의 언론권력을 누가 제어할 수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건전한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셨지만 그것을 정립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부터 6년간 계속됐던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사이의 노골적인 충돌이 그 이후에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볼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성국 박사>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자 측에 전직 언론인들이 무려 수십 명씩 이름을 올렸는데, 이것이 언론 발전이나 정권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정부든 언론과 정권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양쪽을 위해 필요하다. 건강한 긴장관계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 점에서 양 극단이 나타날 수 있다. 참여정부가 또 하나의 극단이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역으로 또 다른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은 국민적으로 볼 땐 바람직하지 않다.

유시민 '정치세력으로서의 386은 허상이다'

고성국 '코드 인사가 문제가 아니라 코드 인사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가 문제'
⊙ 신율/진행> 노무현 정권 내내 '386의 이념 지향성이 코드인사를 낳았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 유시민 의원> 이 논란 자체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의 386은 존재해본 적이 없고,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의 참모 가운데 젊은 참모들이 몇 사람 있었고, 당시 새로 만들어진 집권당 안에 비교적 나이가 젊은 국회의원이 상당수 새로 진입했다는 걸 제외하면 80년대에 대학 다니면서 시위를 했던 젊은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권력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건 일부 언론인들이 지어낸 얘기라고 본다. 청와대 행정관에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이 좀 있었던 걸 가지고 그러는데, 40대들이 행정관을 하지 누가 행정관을 하나. 50대가 되면 비서관을 한다. 이건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세력을 만들어놓고 이것으로 하나의 정권에게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386 정치세력이 어디 있나. 아무리 둘러봐도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 고성국 박사> 문제는 코드인사 논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권인들 코드인사를 안 하는 정권이 없으며, 또 어느 면에선 코드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책임제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이 5년 동안 국정을 책임 있게 이끌어가려면 자기와 철학이 같은 사람들을 참모로 앉혀야 한다. 지역이나 성 균형을 배려하더라도 코드는 맞추면서 배려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오해가 없어야 한다. 중요한 건 코드냐 아니냐가 아니고, 이 코드가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의 코드냐다. 이명박 당선자도 어떤 면에선 노무현 대통령보다 훨씬 강하게 코드인사를 하고 있다. 나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이 국민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코드냐의 판단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선험적으로 할 수가 없다. 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다음 선거가 있는 것 아니겠나. 카이사르는 로마에도 도움이 되고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을 고민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 로마에만 도움이 되고 자기에겐 불리한 길을 가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건 정치하는 사람에게 죽으라는 얘기다.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향해 가되 그것이 대한민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해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코드정치를 제대로 해석하고 그 긍정성을 봐줄 필요가 있다.

⊙ 신율/진행> 386은 허상이라고 보나?
⊙ 고성국 박사> 그건 정치적인 용어가 아니다. 이를테면 모래시계 세대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쓰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쓴다. 386도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의미로 쓴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에 386이 이미 4,50대로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미 중견의 위치에 와 있다. 그들의 선택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 사회문화적 의미와 정치권력으로서의 386 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신율/진행> '회전문 인사'도 문제로 지적됐는데?
⊙ 유시민 의원> 일부 그런 지적을 받을 인사도 있었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5년간 인사를 그런 걸로 재단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예전에 '코드인사 해야 합니다. 코드인사 안 하면 뭐 하러 집권합니까'라고 말했다가 언론에서 엄청나게 비난을 들었다. 지금 이명박 당선인이 코드인사를 막 해도 언론에서 코드인사 한다고 공격하지 않는다. 이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386 코드라고 비판을 받았는데, 요즘은 고소영 코드(고려대, 소망교회, 영남)라고 말하더라. 나는 그런 것에 대해 당선인이 잘못했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들고 행정을 잘 이끌 분들이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의 대표적인 코드인사라고 하면 바로 나다. 내가 2006년 초에 입각할 때의 보도를 보면 '말도 못할 코드인사, 보은인사'라는 얘기뿐이다. 그럼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기용한 게 잘못된 일이었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때의 결과를 놓고 보면서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한 게 잘못이었나로 봐야 할 것이다. 인사에 대한 비판이 균형을 잃고 갔던 측면이 있다. 다행히 인수위가 활동했던 두 달의 기간 동안 지난 시기의 대통령 인사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 상당부분 과도한 것이었다는 것을 언론 스스로 입증해보이고 있다. 그 점은 다행스럽다. 이명박 정부 때는 코드인사라는 이유로 무조건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고성국 '이명박 정부, 한건주의 경계해야'
⊙ 신율/진행> 이명박 정부의 장관 내정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고성국 박사>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실용주의라는 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실적과 기능과 역할 중심인데, 이 점은 동시에 사람이 실종되고, 양적으로 승부하지 질적으로 승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보면 실적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한건주의가 기승을 떨칠 가능성이 있다. 인수위 활동도 인수위원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이런 실용주의로 인해 불가피하게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또한 통합보다는 갈등으로 갈 위험이 보인다. 정치적으로 한나라당의 우파가 중도파를 끌고 간다면 통합보다는 갈등 쪽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보면서 마음이 굉장히 안 좋다. 정부조직 개편안의 출발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정치를 찾아볼 수 없다. 여야든 인수위든 당선자든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고 정치력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에선 통합적인 국가운영이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실적주의와 한건주의와 갈등우발적인 국정 운영이 우려된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인사 개개인에 대해 평가하는 건 지금 시점에선 중요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이 흐름 속에서 그분들이 선택됐다면 이왕 선택된 분들이 통합적으로, 사람 중심으로, 양보다는 질 중심으로, 한건주의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국정 아젠다를 만들어간다는 자세로 일을 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시민 '10년간 진보개혁세력에게 기회 준 국민에게 감사드린다'
⊙ 신율/진행>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유시민 의원> 우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10년 동안이나 진보개혁세력에게 국가 운영을 맡겨주신 건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국민의 정부 시대에도 부족함이 있었으나 다시 한번 집권시켜주셔서 5년간 더 할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나 개인적으로도 능력은 부족했지만 열성을 다해 봉사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권력을 뺏겼다는 것보다는 지난 10년간 기회를 받았다는 생각이 더 우선이다. 지난 10년간 열심히 노력했으나 능력 부족, 노력 부족, 극복하기 힘들었던 과정 등으로 인해 국민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드리지 못해서 국민들께서 다음 5년은 다른 세력에게 맡겨보자는 선택을 하신 거라고 본다. 이런 선택은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5년간 국정 운영에 참여했던 나로서는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하지 않나, 균형을 잃은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시는데 마치 봉화에 아방궁 짓는 듯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무겁다. 마치 귀향 가는 신하처럼 국민들을 떠나가는 대통령을 보면서 나도 책임의 일단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참여정부가 내건 '3대 국정운영 목표'가 있었다. 이 목표에 비춰서 참여정부를 평가해주시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 첫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다. 이 부분은 성공도 있었지만 실패한 점도 많았고 한계도 있었다. 특권과 부패, 정경유착, 돈 쓰는 정치는 많이 청산했다. 그러나 민주제도를 좀더 안정화시키고 민주적인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둘째,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다. 지역 균형발전은 상당부분 진전이 있었지만 양극화로 일컬어지는 계층적인 면에서 국민 통합적으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함과 한계를 보였다. 셋째,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다. 이것은 비교적 잘 관리했다고 본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고 시대적 한계도 노출한 정권이었지만 참여정부 5년의 길이 해방 60년 동안 걸어왔던 길의 한 굽이를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주시고 모쪼록 너그럽게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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