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배움을 얻어야 하기에…
대선이 끝났다. 오래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결과였지만, 맘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오늘따라 유난히, 수학의 역사를 통틀어, 단 하나의 정리도 다수결에 의해 증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음미해 보았다.
숨가쁘게 진행되온 지난 세월, 즉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이후에 여당 쪽에 있었던 중요 정치적 사건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봤다.
2004년 10월, 헌재, 수도이전 위헌판결.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 국보법 비롯한 4대 개혁입법 실패.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당의장선거 문희상 당선, 보궐선거 열린우리당 23-0 전패.
2005년 7월, 대통령,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안. 한나라 거부
2005년 10월, 열린우리당, 보궐선거 패배. 정세균 의장 선출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물리적 저지 뚫고 사학법개정안 통과
2006년 2월, 정동영 의장 취임
2006년 5월, 지방선거 열린우리당 참패, 김근태 당의장 승계
2006년 11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실패
2007년 1월, 대통령 개헌 제안
2007년 1월, 열린우리당 의원 탈당 시작
2007년 4월, 한미 FTA 타결, 대통령 개헌 제안 철회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열린우리당 신당에 흡수 합당 및 소멸
2007년 12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
2004년 후반기의 개혁실패를 기점으로, 열린우리당은 끊임없이 선거패배, 지도부 교체만을 반복하다가 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04년 4월 총선의 뜨거웠던 열기를 생각한다면, 바로 이 지점 즉, 2004년 말과 2005년 초의 어딘가에서 거대한 민심의 이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의 실패라 진단한다. 물론 책임자는 상생 및 실용주의를 외친 정동영과 그 졸개들이다.
내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 한 번 찾아왔던 개혁의 찬스라 말하는 이 시기. 이 날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 및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뼈가 사무치도록 후회할 날이 올는지도 모르겠다. 정조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조선이 망하는 그날까지, 내리막길의 흐름은 한 번도 되돌려진 적이 없었다. 그 이후는 탐관오리의 득세, 그리고 계속되는 민란과 그것의 진압. 세기만 바뀌었지 다를 것 같은가.
노무현은 이후 두 번의 정치적 승부수를 더 던졌다. 2005년 7월의 대연정 제안, 2007년 1월의 개헌 제안이었다. 결과는 모두 실패. 정치인 노무현의 철학이 담겼던 제안들이었지만, 시대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의 결론은 노무현을 지도자로 갖기에는 한국이 아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사건의 진행을 보면, 무엇이 한국정치의 고질병인지가 드러난다. 첫 번째,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끊임없는 교착. 두 번째, 시도때도없이 해야 하는 선거. 세 번째, 선거의 유불리에 따른 정치인들의 무질서하고 원칙 없는 이합집산.
바꾸어야 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제도였다. 그러나 혹세무민하는 언론과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처럼 생떼를 쓰는 민도 낮은 국민 그리고 거기에 대고 입에 발린 소리밖에 하지 못하는 정치모리배들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키지 솔루션이 존재해야 한다. 건전한 정당들이 존재해야 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이 일치해야 하고, 시도 때도 아닌 선거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의 선거를 통한 평가로 책임 있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권자가 던진 표들이, 의미 있는 형태로 선거결과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제 조건이다. 왜 끊임없이 진흙탕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가.
노무현은 대연정을 통해 무엇을 요구했는가. 선거구제의 개편을 요구하는 대신, 권력을 야당과 일정부분 공유하길 원했다. 설령 이것은 선거를 통해 잠시 양도된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는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에 있어, 책임정치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을 받는 한이 있어도, 이것이 공동체 전체의 정치발전을 위해 반드시 한번은 지나쳐 가야할 단계이기에 이 제안은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선거구제의 개편은 유권자들의 많은 표가 사표가 되는 작금의 불합리한 현상을 시정할 수 있다. 부패한 메이저 정당들의 독과점을 해소할 수 있게 하고, 민주노동당 같은 마이너 정당들의 의회입성을 도울 것이다. 지역주의 해소에도 일조하게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투표 행위가 정치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살려낼 수 있다는데 있다. 만연한 정치허무주의도 상당부분 허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회에 정당이 많아지면, 연정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정치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하나의 제안에는 이렇듯 여러 가지의 것들이 논리적이고, 합당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런 제안에 대고 '민생이나 챙겨라.' 이러면 결국 진흙탕 개싸움을 계속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라.
노무현이 개헌을 제안할 때 무엇을 요구했는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의 일치를 요구했다. 이 개헌을 지금 하고 나면, 다른 헌법조항들은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손볼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이 개헌제안에는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교착을 누그러뜨리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일치된 선거를 통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87년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중요 문서임에 틀림이 없지만, 한국이 가진 한국적 정치문제의 해결책까지 담고 있지는 못하다.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들이 지난 20년간 드러내어 져 왔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거의 근접한 이 20년 만에 찾아오는 개헌의 기회를, 대통령이 놓치지 않고 살려준 것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를 다시 '민생이나 챙겨라.'라는 말로 내팽개쳐 버린 것은, 결국 진흙탕 개싸움을 계속하라는 것과 역시 다르지 않은 짓이었다.
이 얼마나 집단적 등신 짓의 악순환인가.
장담하건대, 향후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 이상의 총명한 지도자는 한동안 한국에 나타나지 않는다. 역사적 찬스라는 것은 그렇게 흔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참담한 장면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많은 젊은이들은, 우리가 지난 시기에 놓친 것이 무엇인지 잘 공부해서 기억해두었다가, 이 다음에 행여나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 때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지만 지금의 한국정치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트럭으로 싸들고 온다 한들 당선되기는 어려운, 그보다 훨씬 이전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 점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무튼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된 이명박은 이제 의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 명박이 이제 뭘 해야 하는가. 대통령직 인수준비와 더불어,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이러면 또 무슨 생각나나. 선거법위반 생각나지.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불러왔던 바로 그 선거법이다. 우리는 모두 쳇바퀴 위에 올라탄 다람쥐인 것이다. 지겹게 반복해왔던 집단적 등신 짓을 오늘부터 새롭게 또 시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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