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보게 되는 프라이드.
많은 할인이 보장된 덕분에 이번 시즌에 세번은 더 보게 될 듯.
처음 만나는 성두섭 필립, 난생 처음 보는^^ 장율 올리버.
궁금함에 첫번째로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애정하는 실비아 김지현.
첫씬의, 필립이 올리버를 낯설지 않게 느끼는 순간,
같은 대사, 같은 의상 (조금씩은 다른 점이 있었지만), 같은 디자인의 무대 디자인, 같은 음악, 일부는 같은 배우인데...
배우의 목소리, 대사 톤, 어투의 약간의 변화, 눈빛... 그런 아주 작은 차이에도
다른 지점에서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 신기하다.
처음에는 톤변화가 크지 않은 성두섭의 목소리가 좀 답답하게 느껴졌으나 나중에는 진중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올리버와의 갈등 장면에서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여러 번을 봐서, 내가 익숙해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올리버에게 델포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의 필립의 태도는 눈치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아내의 동료에게 최선을 다 해 대접하려는 노력이자 동시에
웬지 올리버에게 끌리면서 조금은 UP된 상태를 표현한 듯 했다.
올리버에게 아내 실비아를 묘사하는 부분은 그녀가 아주 섬세하고 직관적인 사람임을 알려준다.
식당으로 출발하며, 오늘 저녁이 우리 세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는 실비아의 말은
앞으로의 전개를 암시하는 복선이며 두 남자 사이의 기류를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세 사람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 주는 것은 역시 50년대가 아닌 현재의 모습이다.
올리버는 그의 섹스중독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필립은 진중하면서 진실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실비아는 거침없는 매력을 드러낸다.
나찌역의 남자 양승리는 재미있으면서도 좀 많이 남자스럽다.
(필립의 대사에 '오사마 빈 라덴' 대신에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일하러 왔다가 졸지에 빗속으로 쫒겨나게 된 남자의 서글픔.(개인적으로 김종구 배우가 가장 좋았던 거 같다)
비록 '쾌락의 옷'을 입어야 하는 일이긴 해도, 나름 괜찮은 직업이라며 스스를 위로하듯, 독백처럼 뱉는 또 한 명의 게이.
중독증세와 진실한 사랑의 차이점을 열심히 설명하려는 올리버와
그런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욱 비참함이 느껴지는 필립.
언제나 늘 과하게, 병적으로 느껴졌전 실비아의 추궁, 절규.
이 장면은 매 번, 보는 동안 늘 조금은 불편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본질에 다다른 느낌이랄까.
필립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고, 매일의 생활에 성실하고 충실한 사람이다.
실비아만큼 절실하게 아이를 원하지도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침묵을 간직한, 외로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동성애자일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 본 적이 없어보인다.
아니, 문득 어떤 순간에 그런 느낌이 있는 남자를 만났을 때,
그는 스스로 당황하여 피하고, 외면하고, 잊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직 실비아만이 그 사실을 눈치챘을 뿐이다.
실비아는 필립을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필립을 관찰하고 그의 내면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여자가 아닌, 실비아 자신도 호감을 갖고 있는 남성이라는 사실을 느꼈을 때
여러가지 생각에 시달렸을 것이다.
필립으로 인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인한 올리버, 그리고 자신 안의 감정을 극구 부정하려는 필립.
필립보다 더 실비아에 대해 잘 아는 올리버.
실비아를 고통의 중심에 두고 괴로워하는 두 남자...
부정하려고 애썼지만, 침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필립.
그러나, 당신은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라는 올리버의 비난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자신을 부정하는 것도, 자신의 모습을 직시는 것도, 올리버를 외면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필립.
무너져내리는... 안타까운 필립.
(필립의 대사톤과 억양, 속도... 이런것 때문일까, 아니면 드디어 깊이 이해한 것일까?
필립의 고통이 가장 와 닿았던 날이었다.)
매거진 '오르게이즘'의 편집장. 이 남자의 성 정체성은 의심스럽다. 양성애자인가?
그는 게이섹스를 소재로 이성애자 남자들을 위한 자극적인 글을 써 주길 원한다.
동성애자들을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그들을 소재로 책장사 하기를 주저않는 속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마지막엔 올리버를 상대로... 그걸 또 응하는 올리버 또한...쯧쯧쯧...
여하튼, 이 인물은 이 사회가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신한다.
겉으론 이해하는 척, 쏘 쿨한 척하지만 한편으론 호기심도 있고
한편으론 자신의 일탈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기도 하는, 동성애자들을 모두 섹스중독자로 생각하는.
늘 그의 삼촌 이야기가 감동적이긴 했지만 오늘은...
웬지 그저 올리버에게 치는 기름칠 정도로 느껴졌다.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고 할까.
침실에 떨어져 있던 펜을 돌려주려고 올리버를 만난 실비아.
그 펜을 돌려줄 결심을 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시 작업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실비아의,
감정을 억제하고 진정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매우 안쓰럽다.
필립과 올리버의 사이를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이 분명해지고,
자신과 필립의 사이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데...
필립을 사랑하고 올리버를 아끼는 실비아는 매우 힘든 결정을 한다.
필립이 잠시라도 행복했었던가를 묻는 실비아.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길을 택한다. 진정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프라이드 페레이드에 꼭 가자고 권하는 실비아의 입을 통해 축제의 의미와 상징을 설명한다.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 인식을 바꾸어보려는 계몽과 축제의 장인만큼
올리버야말로 그 상징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므로.
필립이 올 거라는 실비아의 말에 자신에게 있어 필립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올리버.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정신병을 의심해보는 필립.
매우 모욕적이고 일방적인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올리버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50년대의 필립은 자신이 올리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까? 궁금해진다.
축제에 참가한 실비아의 대사는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게이스럽다'는 표현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라고.
그런데 올리버 너는 그 말을 딱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며 그를 나무란다.
잠시 떨어진 사이 서로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 필립과 올리버.
그냥 자연스럽게 관계를 유지해보기로 한다. 상대를 위해 변화할 것을 약속하며.
그렇게 둘만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기로 한다.
내가 필립이라도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올리버.
내가 올리버라도 깊이 사랑할 것 같은 필립이었다.
훈훈한 마무리. 그렇고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나왔고, 관객들은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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