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닌 지방민이 되어버린 후론, 관극생활 자체도 힘이 들지만 관극 후 후기를 남기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몇자 적어두고 싶은 까닭은 그날의 행복한 기억 때문!!
자신이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아주 은유적인 방법으로 살짝만 보여주고 정작 공연홍보는 안하는 고미숙 배우!
제목도 장소도 날짜도 모르고 있었는데... 관심에 의한 느낌적 느낌이랄까?
배우들이 홍보하는 공연 글을 공유해 주는 페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발견, 그 작은 첨부 이미지 안의 그녀 이름을 발견하였다.
제발 소문 좀 내라고 했더니,, 페북에 아주아주 친절이 흘러넘치는 자세한 안내를!
일주일에 단 하루가 되어버린 휴일, 그녀와의 오랫만의 만남을 기대하며 처음 가보는 열린극장으로 향했다.
열린극장은 객석을 내려다보는 구조의, 어느 좌석에서도 시야방해가 전혀 없는 훌륭한 구조의 극장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앞뒤 좌석간 거리가 짧아 무릎이 앞사람 의자에 닿는 불편함.
물론 그렇게 만든 이유야 좌석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뜻인 줄은 안다.
그러나 좌석이 너무 불편하게 되면 관객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을 무대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있다.
'아버지'라는 한 가지 주제로 두 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앞치마" 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를 그린다.
아버지 정국진은 대형 건설회사의 임원이었다.
가정보다는 언제나 일을 우선하며 자식에 대해선 애정보다는 엄격함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이미지의 아버지다.
그에게는 대학졸업을 앞둔 아들과 늦둥이 초등 1학년짜리 딸이 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잘 키우면서 자신도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현명한 아내가 있다.
그런 그가, 일에 대해선 누구 못지 않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던, 언제나 당당한 모습의 아버지가
어느날 사표를 던지고 집에서 살림을 하겠단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느라 승진의 기회조차 고사한 아내의 등을 떠밀다시피하면서 말이다.
번번히 입사시험에 떨어진 아들은 도저히 이런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니, 이런 때 아버지가 아들의 취직에 도움을 좀 주어야 할 타이밍에 실업자가 되다니...
게다가 자기보다 더 똘똘한 여자친구는 먼저 취직이 되고
말끝마다 아들인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와 부하직원을 대하듯 하는 아버지 때문에 아들의 속은 점점 더 꼬여간다.
그 쉬운 토스트 한쪽도 제대로 못 굽고, 아파트 분리수거는 남의 나라 얘기인데다가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것은 기본인 아버지는 까탈스러운 독신(반전!!)의 동네 반장 아줌마와 티격태격하며
조금씩 주부로서의 생활에 적응하며 이생활도 결코 녹녹치 않음을 느껴간다.
덕분에 아내는 점점 책임자로서의 역량을 펼치는 만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그간의 남편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늦둥이 막내딸이 반장 아줌마네 강아지 옷을 훔치는 일이 발생한다.
오, 이런! 이게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학교 학예회에서 입을 의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걸 아빠에게 편하게 부탁하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그만 사이즈가 비슷해 보이는 강아지 옷을...
막내딸의 입장에서는... 엄마에게라면 편하게 얘기했겠지만
어린 아이의 눈에는 어쩐지 앞치마를 두른 아빠라는 존재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며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받은 설움!을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이 퍼붓는다.
아버지야말로 완벽한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더니 이게 뭐냐, 앞치마만 두른다고 주부인 줄 아느냐...
(이 집은 보통 아내들이 이런 상황에서 바가지를 긁으며 해댔을 잔소리를 아들의 대사로 대신한다.)
충격을 받은 걸까, 아버지는 막내딸의 의상을 직접! 만들어 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세상에, 하룻밤 만에 옷을 만드는 일은 나도 엄두를 못내는 일인데)
그의 현명한 아내는 아주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남편에게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해 보길 권한다.
아빠의 노력에 기가 산 막내 딸은 앙큼한 막내 난쟁이가 되어 사정없이 백설공주를 구박해 준다.^^
너무너무 귀여운 애기의 춤과 노래!!
아버지의 노력이 아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아들은 내심 아버지에게 가졌던 속마음을 퉁명스러운 말투로 드러낸다.
아버지를 향해 가졌던 자랑스러움, 그런 아버지가 사회에 백기를 든 듯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그리고 밖에서 대단한 일을 하던 아버지가 집에서 어울리지 않게 주부로 지내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아버지 역시 어리게만 보았던 아들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애정을 갖고 열과 성을 다해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는데...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자신의 허물이 아닌 일에 단지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는 이유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때의 그 복잡했던 심정,
그러나 그조차도, 마지막으로 해야 할 '나의 일'이라면 구차하게 피하지 말자고 받아들일 때의 마음.
그리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주부의 일이 막상 겪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으며
"가치 있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가족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집안일.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 지쳐 돌아온 가족을 기다려주고 맞아주는 일의 가치.
밖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소용되는 일만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의식의 변화!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를 격려하며 취업도전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각자가 서로를 챙겨주며 출근준비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훈훈하다.
아주 깔끔하고,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지는 마무리.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진심을 보이는 마지막 부분의 대사는 나를 불현듯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뭐랄까, 내 상황과의 높은 씽크로율 때문?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어느 대목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개의 경우 그 화살은 어느 한 사람을 향해 비정하게 꽂히게 된다.
그게 내가 됐을 때, 피하고 싶고, 억울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은 그야말로 리얼하게 이해가 간다.
내 경우에는 특히, 내가 아니면 안되는 줄 알고 사생활도 없이 매달리던 일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내 자리가 없어져도 잘 돌아가는구나... 느꼈을 때의 그 배신감.
나는 또한 주부가 아닌가! 그것도 전업주부도 아닌 워킹맘!
퇴근 이후가 더 바쁘고 쉴틈없는, 하는 것은 티 안나도 안하는 것은 그대로 티가 나는 집안일.
지금 내가 뭘하나 싶은 자괴감마저도 들게 하는, 소중한 가치를 느끼는 시간보다는 피로만을 안겨주는...
그래도 그것을 즐거이 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가족들이 함께 할 때이다.
집안일이 힘들고 무거운 것은, 그것이 주로 엄마 한 사람에게만 지워졌을 때이다.
그 고립감이 주는 무게감이 더해져서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깨닫는 일을 해 낸 아버지!!
그런 의미에서 이 극의 마지막 결말은 매우 바람직했다.
실제로도 고집 세고 보수적이고 고지식할 것 같은 느낌의 허선행 배우의 아버지였다.
곽민준 배우의 아버지는 어떨까? 두 사람의 느낌이 다른 만큼 또 다른 아버지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다소 거친! (쏘리) 평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조용하고 지혜롭고 자상하고 현명한 고미숙 엄마.
알고 보면 그녀의 내면에 그런 모습이 숨어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까?
너무 심하게 반항적이었던 아들 역의 조한결 배우는 전작 노스탈지아의 79청년이었다.^^
아버지의 캐릭터를 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역이다.
뭐랄까, 이집의 두 남자들은 감정표현이 많이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름 그러한 닮은 꼴을 보여주어서 설득력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나 똘똘해 보여서 나라도 데려가고 싶은 여자친구(장서현)라고 했더니
고미숙 배우 왈, 예뻐서 그렇단다.^^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예쁜이다.ㅎㅎ
아,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뽐냈던 반장 아줌마 역의 박정근 배우!
그가 등장할 때마다 분위기를 확! 바꿔주니 가벼움과 무거움의 밸런스가 맞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실제로도 매우 유쾌한 성격이었다. 앞으로 팬이 될 것 같다.^^
막내딸 빛나역의 꼬맹이도 얼마나 귀엽고 능청맞게 잘 하던지...
정말 오랫만에 훈훈한 가족극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기억... 아픈 손가락"
조명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강재현은 오래 전, 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
그들은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재현씨', '지현씨'라고 호칭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너무 다정하여 혹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인가 싶을 정도다.
어느 날, 아빠 재현씨가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일어난다.
간호사는 별일 아니니 집에 가서 쉬고 내일 오라며 딸 지현의 등을 떠미는데 지현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아빠의 상태가 걱정되서일까 싶었으나 곧 그 까닭이 드러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사고를 목격한 후 충격으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아빠의 보살핌을 받았던 딸로서는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일종의 분리불안으로 인한 공황장애의 발작증세가 일어난다.
정신을 차린 제현은 딸이 걱정되어 병원을 박차고 나와 딸에게 달려간다.
제현이 퇴원하는 날, 간호사와 유난히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아빠에게 딸은 질투를 느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생각이 많아진 듯 하다.
자신이 언제까지나 딸 곁에 있어줄 수는 없는 일, 딸의 자립을 위해 간호사와의 가짜 약속을 만들고 집을 비운다.
딸은 딸대로 질투심 반, 그리고 어쩌면 아빠에게도 아빠의 생활이 필요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까?
지현 역시 직장 내에서 추근덕거리는 이혼남과의 가짜 약속을 만들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 버리고...
(이 대목에서 이혼남과 간호사는 잠깐의 등장에도 강한 존재감이 드러난다.)
그런데 어느 날, 딸에게는 진짜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긴다.
그녀의 아픔을 다 이해해 주는, 한눈에 반해버린 남자가.
제현은 그런 딸을 보며 마음이 놓이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켠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질투가 길면 서운해진다는 박정근 배우의 명대사!)
딸이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간다며 처음으로 집을 비운 날, 아빠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혹여 자신이 없는 낯선 곳에서 힘든 일을 맞게 되면 어쩌나...
선잠에 빠진 사이, 지난 날 있었던 일들과 더불어 이런저런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나 다음 날, 딸은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와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아내의 얼굴과 겹쳐 보이며
오로지 딸을 위해서만 살아 온 아빠의 마음은 많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것.
나는 이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의 아버지가 부디 다른 곳도 바라보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도 좀 가지며 살기를 바래본다.
그의 아픈 손가락인 딸을 좀 더 믿으며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OVER THE RAINBOW '가 따뜻하게 들렸다.
어느 작품에서 봤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익숙하고 잘 생긴 얼굴의, 아버지 역에 곽민준 배우.
부드럽고 낮게 신뢰감을 주는 음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페이스북에 공유된 공연정보 글을 올린 사람이 바로 곽민준 배우였다)
관객으로 보는 나는 잘 못 느꼈는데, 오늘 바뀐 부분의 합이 잘 안 맞아서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딸 지현 역의 배우는 '한 꽃송이'라는 예쁜 이름인데
어쩌면 이 아버지에게는 정말 딸의 존재가 한 송이의 꽃송이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더블인 '이나리' 배우의 이름도 꽃이름이네~^^
너무 잘 생긴 아버지와 꽃처럼 젊고 예쁜 딸이라서였을까?
극초반, 서로를 제현씨, 지현씨 라고 부르는 부분 때문에 관객들에게 극심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나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
잠깐의 등장이지만 미숙배우는 평소에 듣던 시원스런 톤의 대사를 들려줘서 나는 익숙하니 매우 좋았다.^^
독특한 캐릭터로 큰 웃음을 준 박정근 배우, 역시 '무게감 조절자'였다.
원래는 지현의 남자친구가 잠깐 등장했었는데 오늘 급하게 바뀌어서 안 나온 거란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현의 남자친구가 실제인지 아님 또 가짜로 연극을 한 건지 잠시 헷갈렸었다.ㅎㅎ
아침부터 미숙배우에게 문자를 남겼으나 답장이 없길래 큰 기대 않고 공연이 끝난 후 전화를 했더니 반가이 나와주었다.
오랫만에 그녀 옆에 서는 순간, "아~ 굽있는 신발을 신고 와야 하는 건데!!" 내겐 좀 큰 그녀의 키 때문에...ㅋㅋㅋ
오늘이 시파티를 하는 날이라고 해서 그냥 오려했는데, 뜻밖에도 연출님께서 합석해도 좋다고 하신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쁘고 기대되고 설레는 기회인가.
하지만 막상 문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었다. 혹시 불청객이 나타나 불편하게 만들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일단 들어가자고 잡아끄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못이기는 척 합석을 했다.
공연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끝나고 난 후에 그 느낌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특히, 소위 '덕후'들일수록 말이다.
그런데 만들어 가는 사람들 역시 관객 반응에 따라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바로 앞에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디테일을 만드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법이니
당연히 고민이 많아질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비슷한 고민을 늘 해야 하니까...
처음으로 "블로거님"으로 불리운 날이었다. 민망해라...
극단 '가교'를 방문하여 연습실을 구경하는 행운도 누렸다.
1965년 창단하여 오십여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일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같은 65년생인 나도 지금껏 살아오기가 만만치 않았으니 말이다. ㅎㅎ
(아, 그러고 보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했던 '울고 넘는 박달재'는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의 남자친구와 함께! )
아주 오랫만에 밤시간까지 소중한 만남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 날이었다.
극단 가교와 모든 배우분들, 모두들 응원합니다!!!
'관람후기 >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소설집 - 20160818 (0) | 2016.08.19 |
---|---|
데블 인사이드 - 20160713 (0) | 2016.07.17 |
레드 - 20160617 (0) | 2016.06.20 |
킬 미 나우 - 20160605 (0) | 2016.06.06 |
짐승가 - 20160528 (0) | 2016.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