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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공연 관련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 인터뷰

by lucill-oz 201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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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뉴욕에서 공연을 보며 매일매일 노트에 생각을 정리해둔 게 있어요. 당시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노트 뒤쪽에 무대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 적어놓은 게 있더라고요. 지금 보니 되게 학문적이에요(웃음). "무대 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기초로 대본이 가진 감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장면을 구상하고 만드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관객을 위해 하는 작업이며, 공연을 매우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술작업이라는 올가미에 갇혀서 소위 있어 보이기만 하는 공연을 하려 하면 오히려 관객들을 극에서 벗어나게 해 재미없는 공연을 만들게 된다. 매 장면 아주 재미있고 깊은 감성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특히 배우가 세트와 같이 코웍(co-work)할 수 있는, 세트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배우에 의해 만져지고 움직여지도록 재미있게 작업해야 한다." 이렇게 썼더라고요. 물론 디자인에 대한 제 개념이 항상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당시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좀 정리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반을 하다가 연기를 하려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어요. 그때는 운동도 좋아하고 덩치가 좋았거든요. 그래서 선배들이 '넌 무대 제작 스텝을 해라'라고 해서 하게 됐죠. 근데 무대 디자인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때까지 막상 할 일이 없는 거에요. 교수님이 '놀면 뭐하냐, 무대 디자인이나 배우라'고 하셔서 그 때부터 배우와 무대 디자인을 같이 했죠. 그러다 보니 졸업할 때까지 했던 무대 디자인이 스무 개 정도 됐어요. 앞으로 뭘 할지, 과연 내가 어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지 생각해봤을 때 배우라는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제가 견딜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반면 무대 디자인을 할 때는 며칠 밤을 새도 너무 재미있고, 작업이 완성되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다 풀렸어요. 그럼 배우를 그만두자, 생각했죠. 

사실 졸업 전부터 현장에서 일하려고 열심히 노력을 했어요. 처음에는 무대 디자인을 했던 게 아니라 무대 전환, 무대 조감독, 제작감독, 제작 조감독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무대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어떤 목마름이 있었어요. 학부가 무대미술과가 아닌 연극영화과였기 때문에 무대를 집중적으로 배운 게 아니잖아요. 학교 도서관에서 무대와 관련된 책은 다 찾아서 몇 번씩 읽고, 원서도 다 찾아봤지만 계속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현장에서도 항상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유학을 결심하고 NYU(뉴욕대학교)로 갔죠. 

NYU에 가보니 제 안에 세워진 공연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단단했던 거에요. 흔히 말하는 몇몇 법칙들이 있잖아요. 무대에서 등을 돌리면 안 된다거나, 무대 위 거울은 관객을 향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그런 틀을 다 허무는데 1년 정도 걸렸어요. 지금은 내가 가진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는 금기가 너무 많았던 거에요. 그런 것들을 깬 것이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NYU의 장점은 개개인의 장점을 키워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거든요.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계속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거죠. 그게 저한텐 큰 도움이 됐고, 제가 한국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결국 거기 중점을 두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에 들어와서 디자인을 했고, 졸업 후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하면서 고난의 시간을 겪고(웃음) 열심히 하고 있죠.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것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대본을 처음 받으면 그 대본이 요구하는 실제적인 공간이나 배경은 철저히 배제하고 그 안에 있는 감성을 들여다보는 데 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왜 이 인물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 이야기가 내게 어떤 감성으로 다가오는지 등의 원초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첫 리서치는 굉장히 정서 중심이에요. 예를 들어 분장실 장면이 있다면 분장실 사진을 찾는 게 아니라, 그 분장실에 서 있는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떤 정서인지를 찾는 거죠. 그 과정이 힘들고 길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찾다 보면 대본의 정서와 저의 정서가 연결되는 접점을 찾게 되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행복해요. 그 다음에 대본에서 요구하는 공간들에 대해서 분석을 하기 시작하죠.

작품마다 사실적인 요소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큰 개념 자체는 그렇게 정서적으로 접근해왔던 것 같아요. <해를 품은 달>의 경우도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공간이 50~60개였거든요. 반복되는 공간도 있지만. 그 공간을 120분의 공연 동안 다 구현하면 2분마다 한 번씩 장면이 바뀌어야 하는 거에요. 그러면 관객들이 그 '무대 전환쇼'를 견뎌낼 수 없거든요. 그래서 사실성에 초점을 두기보다 인물들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요.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그게 일반적이거나 식상하다고 느껴지면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시작하고요. 





작품마다 다 다르지만,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리서치 같아요. 디자이너가 리서치 작업을 지루해하면 디자인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거든요. 사실 리서치라는 것은 굉장히 방대해요. 예를 들어 어떤 문을 하나 만들 때, 여러 문들의 사진을 찾는 것뿐 아니라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공부하는 등 많은 과정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방대한 리서치를 하면서 선택을 해나가는 편이에요. 근데 리서치에서 찾은 것을 그대로 쓰면 절대 안 돼요. 그걸 보며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를 생각해보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을 그릴 때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당시 그의 정서는 무엇이었을지, 그가 그림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관찰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거든요. 



장점이라기보다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새로운 화법을 찾는 거에요.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표현방식은 저한테는 더 이상 재미가 없어요. 관객들이 극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근데 경험해보니 이게 단점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관객들이 극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고, 극의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고. 그래서 요즘은 그 균형을 잡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들간의 협업, 연출과 모든 스텝들과의 협업, 그리고 배우와의 협업. 무대 디자인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든 디자이너들과 스텝, 배우가 힘을 합쳤을 때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는 거니까요. 제가 갖고 있는 게 100일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다른 분이 혼자서 100을 가질 수도 없어요. 모두가 힘을 합쳐 20, 40씩 모아야 공연에서 100이 되는 거죠. 

그리고 다큐멘테이션, 즉 문서화를 잘 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시간이 없더라도 도면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그리려고 하죠.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거든요. 사실 좀 쉽게 일하고 싶으면 그냥 말로 해도 되고 다른 방법도 있어요. 근데 제가 쉬워지면 다른 사람이 어려워지거든요.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려면 선명한 그림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도면, 모형, 스토리보드 등을 모두가 정확히 공유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좋은 점이 많아요. 제작소 분들도 일하기 편하고, 나중에 극장에 와보면 서로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 맞고. 

단점은 정말 이야기하기 싫지만(웃음) 굳이 이야기하자면 작품을 너무 깊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다 보니까 어느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을 표현하려고 욕심을 내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무대 디자이너가 관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것들을 자꾸 표현하면 관객들은 거기에 대해 네, 네, 하고 대답해달라는 요구를 당하는 것이거든요. 요즘은 그렇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어요. 작년 초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공연은 우선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굳이 심오할 것도 없고, 심오하더라도 즐겁게 심오해야 하는 거죠. 





가장 처음 생각나는 작품은 2009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됐던 <지킬 앤 하이드>에요. 그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대극장 뮤지컬로 데뷔한 첫 작품이거든요. 그 때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작품을 맡고 참 많이 돌아다녔어요. 연출과 안무가, 배우들이 호주 사람들이라서 연습은 호주에서 하고, 제작팀은 서울에 있었거든요. 모형을 들고 회의하러 호주에 가고, 서울에 가고, 다시 뉴욕에 돌아오고. 뉴욕에서 호주까지 비행기로 26시간이 걸려요. 그 때 모형이 안 부서지게 하려고 포장 기술이 많이 늘었어요(웃음). 아무튼 저한테는 너무 황홀하고 행복한 작품이었죠. 규모도 매우 컸고, 창작진도 좋았고. 제가 이제 막 데뷔한 새내기였는데 창작진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원작을 갖고 있는 회사에서도 제 디자인을 보고 극찬을 했고요. 매번 다 너무 즐거웠어요. 결과물도 만족스러웠고, 평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작품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연이 이후 발전되기도 했고.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작품은 작년에 했던 <해를 품은 달>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요. 작년 초 큰 고민을 하고 나서 만든 작품이거든요. 두 작품을 통해 또 많은 것들을 배웠고, 정말 기분 좋게 두 작품 다 (뮤지컬상에) 노미네이션 됐고, 저도 조금 더 알려지게 됐고.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죠. 2013년이 저는 참 즐거웠어요. 일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매번 재미있었죠. 2014년도 그랬으면 좋겠네요(웃음). 



이것도 몇 가지가 있는데(웃음), 먼저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제작자가) 쉬운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 마음에 들면 좋은 작품, 내 마음에 안 들면 별로인 작품 하는 식으로.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판단을 하기 전에 창작자가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고민을 해보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그런 관점이 만들어지면 공연이 정말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뮤지컬도) 어쩔 수 없는 상업이기 때문에 잘 팔리는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죠. 그런데 항상 어떤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기준이 만들어지면 창작자가 힘들어져요.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을 때 더 좋은 작품으로 주목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 다양성에 대해 열려 있으면 창작자들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큰 고민 중 하나가 평생직업으로서의 무대 디자이너가 가능한가에요. 디자이너로서 가정을 꾸리고 평생 살아간다는 것의 한계가 조금씩 느껴지더라고요. 이것이 가능하려면 제도적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리나라의 무대 디자이너란 참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웃음). 저보다 먼저 작업을 해오신 선생님들이 아직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하고 존경스러운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무대 디자이너는 일용직이에요. 창작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저작권에 큰 의미가 없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잘 안 돼 있어요. 아무튼 평생직업으로서 무대 디자이너가 가능해지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고, 그걸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무대 디자이너 어시스던트에 대한 처우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무대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과정이 있는데, 그 중 어시스던트가 손을 안 대는 과정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그들의 노력과 존재를 제작사에서는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프로그램북에는 물론 (어시스던트의) 이름이 올라가지만, 제작사에서 그들을 계약 당사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게 저는 제일 안타까워요. 정말 고생 많이 하거든요. 꼭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존재와 기여도를 인정받아야 뿌듯함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거에요. 계약 자체도 어시스던트와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다 디자이너가 챙겨야 하는 부분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디자이너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 모형 제작과 사무실 운영을 비롯해 작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거든요. 이건 분명하게 개선돼야 하는 부분 같아요. 그래야 그들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너무나 많은 목표들이 있어요.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요즘은 조금 다른 목표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현실화될지는 모르겠어요. 무대 디자이너들의 그룹을 만들고 싶거든요. 무대 디자이너뿐 아니라 어시스던트와 그들을 교육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그룹을 꿈꾸고 있고, 좀 더 나아가서는 창작자들만의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무대, 조명, 영상, 의상 등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연출들이 다 모여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거에요. 지금은 다들 너무 바쁘기 때문에 따로 모이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 쉽게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서로 이야기하고 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그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거든요. 

또 다른 것은 아주 오래된 목표이자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는 것 중 하나에요. 연극, 오페라, 오페레타, 뮤지컬, 퍼포먼스 등 공연이라는 큰 범위 안에 각각의 이름을 가진 장르들이 있잖아요. 그 외의, 새로운 이름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세계적으로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요. 그게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10년 넘도록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답이 없네요. 앞으로 또 10년 고민해봐야 시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가장 중요한 건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것 같아요. 눈 앞에 있는 사물들, 혹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가서 보는 것들, 인터넷으로 보는 미술작품이나 뉴스에 나오는 기사사진들, 눈앞에 있는 사물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려고 관찰을 하다 보면 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관찰하는 버릇을 들이면 정말 재미있어요. 그리고 그게 결국 무대 디자인의 시작인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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