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을 연 세종 S 씨어터에서의 첫 관극.
앞뒤로, 혹은 좌우로 긴 무대는 백년 고택의 마당이다.
긴 마당의 좌우로 객석이 있고 한쪽 끝은 대문, 반대쪽 끝에 집이 있다.
객석 뒤로 울타리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마치 이집 마당 안에 들어서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의 무대다.
국제곤충아카데미 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입양된 한국인인 에밀리아 피셔가 학술 연구회에서
" fairy circle" 현상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는 것으로 극이 시작된다.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아프리카의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영토의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지대다.
나미비아라는 국가명도 사실은 나미브 사막에서 유래했다.
나미브는 현지 나마 족의 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평소엔 모래와 돌투성이인 나미브 사막에도 비가 내리면 곧 초록색 풀로 뒤덮이게 된다.
그런데 그 초록빛 들판엔 마치 누가 컴퍼스로 그린 듯한 둥근 원들이 나타난다.
지름 2m에서 15m에 이르는 수천 개의 원들 안에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원들을 이루는 둘레에만 마치 띠를 두른 것처럼 풀들이 무성히 자라나는 것.
그 풀들은 주변의 빈약한 목초지와 비교할 때 키가 더 커서 더욱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언뜻 보면 마치 땅에 마름병이라도 퍼진 듯한 원들의 연속이다.
나미비아의 페어리 서클 형성 원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위키피디아(Stephan Getzin)
유독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만 발견되는 이 신기한 원들을 요정의 원, 즉 페어리 서클(Fairy circles)이라 한다.
더욱 신기한 사실은 요정의 원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성장한 뒤 줄어들어
결국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 수명 주기는 30~60년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원주민인 힘바족은 원시 조상 ‘무쿠루’가 요정의 원을 창조했다고도 하고,
혹은 신들의 발자국이라고 믿기도 한다.
또 여행 가이드들은 땅 속의 용들이 내뿜는 유독한 호흡으로 인해 식물들이 죽어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밖에도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라는 설, UFO가 만들어낸 풍경이라는 설 등의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형성 원인에 대한 두 가지 가설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따른 가장 유력한 가설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족한 자원에서 생존하기 위해 식물들이 스스로 만든 패턴이라는 주장이다.
원형의 무늬는 물을 포획한 다음 원의 가장자리로 흘러들게 만들고,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이 증가하면 식물 뿌리가 증가해 토양이 느슨해진다.
이처럼 느슨해진 토양은 더 많은 물을 침투시켜 원의 가장자리에서 식물들이 자라게 만든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미국 콜로라도대학 등의 공동 연구진은 페어리 서클의 크기와 밀도, 분포 형태 등을 분석하고,
원 내부 및 외부에서 다양한 깊이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수분 및 영양성분을 조사했다.
그것을 기후 데이터와 비교 분석한 결과 원의 크기와 밀도, 분포지역의 넓이 등이 모두
이용가능한 자원의 양과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토양 내 질소나 강수량 등의 자원이 많을수록 원의 크기가 작고, 자원이 적을수록 원의 크기가 크다는 것.
이는 자원이 풍부한 풀들은 큰 저장고가 필요 없지만
반대 환경의 풀들은 더 큰 저장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른 가설 하나는 사막 흰개미들이 한해살이풀의 뿌리를 갉아먹은 부분이 원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흰개미가 식물을 죽이는 까닭은 바로 물 때문이다.
사막에서 자라는 풀은 물의 증발을 가속화시키는데,
식물을 없애면 물이 지표면 밑으로 모이게 돼 흰개미들이 계속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독일 함부르크대학 노르베르트 위르겐스 교수가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사막 흰개미는 페어리 서클의 80~100%에서 발견됐으며, 특히 새로 형성된 원의 100%에 발견됐다.
이 연구결과는 원 가장자리의 풀들이 주변보다 키가 더 크고 원들이 성장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원 안에 축적된 토양 수분에 의해 가장자리 풀의 성장이 촉진되며,
흰개미는 가장자리 풀을 먹으며 서서히 원의 지름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다 흰개미집이 소멸되면 요정의 원도 사라진다.
하지만 이 가설은 흰개미가 왜 원의 형태를 만들며, 원과 원 사이의 거리가 일정한 이유 등등
크기와 위치에 있어 규칙성을 갖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자가 정렬 식생 패턴에 대한 새 연구결과 발표
그런데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연구진이 페어리 서클의 형성 원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를
‘네이처’ 지에 발표했다.
이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페어리 서클뿐만 아니라 미국 오리건주의 ‘마이머 마운즈(Mima mounds)’,
남아공의 ‘휴웰티(heuweltjies)’, 브라질의 ‘모룬두스(Murundus)’ 등 네 곳이다.
나머지 세 곳은 페어리 서클과 형태는 다르지만 원형 무늬가 수백㎞의 초원 지역에
규칙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마이머 마운즈’는 동그란 형태의 봉분이 수없이 펼쳐져 있어
고대 인디언의 무덤으로 추정돼온 지형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인골과 같은 뚜렷한 증거물이 나오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 같은 지형을 만든 주인공은 땅다람쥐인 것으로 추정된다.
프린스턴대학 연구진은 이 같은 ‘자가 정렬 식생 패턴’이 형성되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그간 입증된 데이터와 수학이론을 연결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동시켰다.
그 결과 흰개미나 설치류 등의 지하 동물과 식물의 상호 작용이 협력해서 빚어낸
공동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페어리 서클을 예로 들면, 사막 흰개미가 물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육각형을 만들면 그 수분을 이용해 식물들이
질서정연한 뿌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요정의 원이라고 부르는 초목의 반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원들 사이에서 보이는 특이한 패턴은
제한된 물에 대해 너무 많이 경쟁하지 않기 위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비판하는 과학자도 있지만,
동물과 식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태조직적 메카니즘을 융합시켰다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처 : 싸이언스 타임즈>
이 마을에서 흰개미 떼가 발견되었단다.
이집은 삼대째 내려오는 목회자 집안이다. 이 집은 이 동네의 역사이자 상징이고 자랑이다.
에밀리아 일행이 집을 조사한 결과,
대대로 마을 주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백년을 이어온 이 목조고택의 집 주변은
이미 풀이 무성하고, 흰개미들에 의해 기둥이 다 파먹혀 곧 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태란다.
보수용으로 쓴 목재는 해충 방재처리도 되어 있지 않은 질나쁜 나무였고
거기에 딸려들어온 해충들 중에는 흰개미도 있었을 것이라고.
게다가 이 집안에는 오래 전에 막아버린 우물이 있는데
아마도 흰개미들은 거기 갇힌 물을 찾아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 집 밑에는 이 집만큼 큰 거대한 개미집이 있다고 한다.
흰 개미를 나쁘다고 말하는 재현에게 에밀리아는 말한다.
흰개미는 그저 자신이 살 수 있는 환경에 따라 움직인 것 뿐이라고.
입양아인 자신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찾아 해외로 '옮겨'졌듯이
흰개미들도 그렇게 자기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움직였을 뿐이라고.
페어리 써클은 그렇게 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에게 '옮겨져서' 주어진 환경에 따른 삶에 만족한다.
이 집의 젊은 주인이자 목사인 공석필은 가문의 대를 잇는 차원에서 자신의 의지와 반하는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 태식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지만 석필은 아직 아버지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필과 태식의 대화
너, 사람들이 교회에 왜 오는지 알아? 물 찾으러 오는 거야.
사는 게 사막처럼 팍팍해서 오는 거라구. 기도하면 뭔가 떨어진다고 믿는 거지.
(적어도 여기까진 나도 동감했다. 그러나 다음 대사!)
그런데 그게 문제지, 세상 기준으로 기도하는 건, 너도 알잖냐, 하늘의 법칙은 그렇지 않다는 걸.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것과 아버지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달라.
사람들이 저희들 눈으로 나를 재단하려고 하지만 난 하늘에 속한 사람!
하늘의 뜻과 인간이 바라는 바가 다르다는 말은 기도가 통하지 않을 때 그들이 언제나 들먹이는 말이다.
기도하는 바 대로 이루어지면 자애로운 신의 보상인 것이니 더욱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고
기도의 효과가 없으면 정성이 부족하거나 혹은 하늘의 뜻은 인간의 욕심과 다른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위로조차도 되지 않는 그 궤변은 어느 새 신앙인들의 정설과도 같은 패턴이 되었다.
진정한 기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니 기도란 무엇인가.
언제부터 기도가 딜의 수단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목사가 하늘에 속한 인간이 되었는가.
그 뻔뻔하고 파렴치함에 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그 많은 건물을 사들이고 세금도 안내고 사람들을 멋대로 해고하였냐고 받아치는 석필에게
매우 뻔뻔한 태식의 태도. 잊지 마라, 너 내아들이야.
교회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아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로부터 비롯된 악행의 씨앗으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석필은 아버지의 자취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그 지저분한 뒷치닥꺼리를 자신이 맡아야 한다는 점이 분개스럽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도 믿은 적이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믿으라고?
어머니에게 원망을 쏟아내보지만,
너 역시 그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아온 만큼 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누군가에게서 협박 편지는 계속 날아오고, 다급해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떠밀며 수습을 종용한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흰개미가 집을 잠식해버린 것처럼
대대로 이어온 아버지들이 만든 부패의 진액이 곧 그들을 덮칠 듯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 한 여인이 등장한다. 아버지로 인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지한이다.
그녀는 두려운 듯 주저주저하며 문 안에 발들여 놓기가 어려워 보인다.
석필은 그녀 역시 아버지에게 뭔가 피해를 혹은 상처를 입은 또 한 명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대신 사과를 하여 돌려보내려 하지만 지한은 석필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탓한다.
어린 시절, 해외출장을 다녀온 지한의 아버지는 유일한 선물로 목사에게 줄 양주 한 병 만을 사 왔다.
하필 목사에게 술이라니... 그 술을 갖고 심부름을 온 소녀를 범한 아버지 태식을,
유일한 목격자인 석필이 외면하고 가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더 크게 오래 갔다고 울먹이는 지한.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15년이 걸렸다고. 과거에 매여있는 자신을 청산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그 확인을 유일한 목격자인 석필을 통해서 받고 싶었다는 지한은
자신을 위하여 인간의 터전을 공격한 흰개미를 부러워한다.
석필의 모친 현숙은 지한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그녀가 누구인지.
교인들 앞에서 그간의 모든 아버지의 악행을 솔직히 밝히고
교회를 떠나고 싶어하는 석필을 말리며 절규하는 현숙.
시집올 때부터 짓눌리도록 무거웠던 이 집의 내력과 그 무게.
아버지들이 대를 이어가며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우물을 막고 담장을 더 높이 쌓아야 했던 것은 어머니들이었다.
결국 현숙은 자신이 교회로 가서 교인들 앞에서 모든 것을 시인한다.
아들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태식의 환영이 말한다.
난 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슬프지 않았다.
(이 말은 태식 역시 석필과 동일한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끝났다고 여겼는데 여전히 아버지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내가 그를 직접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너도 어서 날 죽이라고.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넘어설 수 없다는,
그러지 않으면 결국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게 되리라는 섬뜩한, 그러나 진심어린 마지막 대사.
에밀리아 역의 최나라 배우,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같은 연기, 좋았다.
현숙 역의 백지원 배우, 그간 작은 역을 할 때 보여주지 못한 단단한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석필 역의 김주완 배우, 너무 연극적인 대사톤이 좀 거슬렸었는데 생각해보니 감정의 소모가 큰 역이라
호흡과 함께 대사를 해야 하니까... 싶은 것이 나중엔 이해가 갔다.
지한 역의 황선화 배우,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인상깊었던 로베르토 쥬코!!
태식 역의 강신구 배우, 흔들림 없는 파렴치함을 정말 인상적으로 보여주어서 감탄.
좋은 무대와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자연현상에 빗대어 꼬집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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