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이해를 위해서 일단 필요한 내용들을 이해해야 한다.
<문화대혁명>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사회상·문화상·정치상 소란으로, 공식 명칭은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이고 약칭은 "문혁"이다.
문화 대혁명의 형식상 표면에 내세운 구실은 '회생하려는 전근대성 문화와 시장 정책 문화를 비판하고
더욱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창출하자!" 라는 정치·사회·사상·문화 개혁 운동이었지만,
실질로는 대약진 운동이 크게 실패한 탓에 정권 중추에서 잠시 물러난 마오쩌둥이 자신의 재부상을 획책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민중과 학생 폭력 운동을 동원해 시장 회생파를 공격하고 죽이려고 몰아간
이 운동은 1966년 5월 16일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주의 요소가 공산당과 중국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중국의 청년 학생들과 민중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인민민주독재를 더욱 확고히 실현키 위해
트로츠키주의식의 진일보 투철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후의 영구적 계급 투쟁"을 통해 이런 것들을 분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홍위병의 움직임으로 구체화되었다.
마오가 문혁을 제창하게 된 동기는 노선을 변경한 소련의 잘못된 수정주의가 중공에서도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중국에서 더욱 이상적인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한편, 마오쩌둥 자신이 시도한 대약진 운동에서 파멸적인 결과를 빚어 당에 대한 권력과 영향력이
덩샤오핑과 류샤오치에게 넘어가려하자, 극좌적 계급투쟁 형식을 빌어 이를 선회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라는 것도 통설이다.
1969년 마오는 공식적으로 문혁이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학생과 노동 운동가들 일부를 체포하였으나,
사실상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사인방의 체포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여러 혼돈과 변혁을 통틀어
길게 문혁기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에서는 이 기간을 십년 동란(十年動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혁은 대개의 중국인들이나 외부인 심지어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국가적 재난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문혁의 공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1981년에 이를 마오의 과오가 크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으나 문혁 기간에서의 마오의 과오로 제한하였다.
<사인방>
문화 대혁명 기간 동안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4명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뜻한다.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을 비롯하여 정치국 위원이었던 야오원위안,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를 가리킨다.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이들 사인방이 체포되면서,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렸다.
<상산하향 :중국지식인들의 대중을위한 문화운동>
하향의 ‘향(鄕)’은 중국어로 ‘향촌(鄕村)’, 즉 농촌이란 뜻으로 하향운동이란 농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즉, 도시의 학생이나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촌 대중과 함께 대중을 위한 문화를 구축하려고 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의 시초는 1919년 5·4운동이지만 본격화되기는 항일전쟁 시대이다.
1935년 베이징[北京]의 학생이 12·9운동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전국민에게 호소했을 때,
‘하향’을 외쳐서 농촌에서의 항일의 필요와 의의를 선전하였다.
이 운동에 자극을 받아 1936년 대학교수나 지식인들에 의하여 ‘신계몽운동’이 제창되었다.
이때 모든 지식인은 연구실을 나와서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위한 문화건설에 참가하라고 호소하였다.
이리하여 항일전쟁의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이 도시로부터 오지로 들어가 농민뿐만 아니라
노동자나 병사들과도 함께 생활하고 함께 새로운 정치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문화대혁명 이전 상산하향운동의 대부분 다수는 자원하향한 경우인데,
그 당시 다수는 가정환경이 넉넉하지 않거나 정치적대우 등으로 차별대우를 받은 소수의 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이 1968년 12월 상산하향 동원령을 발표한 이후에 상산하향은 젊은층의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농촌의 상황은 대약진운동과 공공식당 운영 정책 등 여러 정책들의 영향을 받아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을 보였다.
또한, 도시에서는 1960년 도시 취업자 수가 1억 3,073만명에서 1962년 4,537만 명으로 줄어들어
도시 취업자 수가 65%감소하게 돼서 심각한 실업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1968년 12월 마오는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가서 다시 배우자"고 주장하면서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개시하였다.
약 10년간 계속된 이 운동에서 도시에 살고 있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가서 그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도록 명령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청년"은 최근에 중학교(대한민국 학제로는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외지의 이질적인 문화로 고통받으면서도 지식청년층들은 마오의 혁명사상 전파와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0년 후반에, 이런 "지식청년"은 도시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 운동은 홍위병들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보내 사회적 분란을 감소시키려는 의미도 부분적으로 있었다.
약 2,000만명의 청년 노동력이 9만 개 인민공사에 소속된 80만 개 생산대대 산하 400만 개 생산대에 '입대'를 하게 되고,
농촌 중,고등학교 출신의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가 2억 농민의 집에 '입주'하게 된다.
상산하향으로 인해 청년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정치적 억압에 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들의 학문적인 열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앞으로의 중국의 발전방향에 대한 내재된 마음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의 농촌은 도시에서보다 빈번하고 큰 규모의 집회와 청년들간의 교류가 생기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도 의식의 발전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주정책 효과와 함께 토지를 개간하여 농업생산량을 높이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이 끊임없이 대립하게 되는 이원구조 체제가 유지가 되었고
정부는 도시에 문제가 터질때마다 농촌에 책임을 전가하는 그러한 과정이 반복하여 발생하게 되었다.
상산하향 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의 수많은 가족들이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으며,
젊은이들은 홍위병이라는 도구로 쓰인 후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농촌으로 보낸 운동이라기 보다
징벌이라는 평가가 일각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에도 일부는 농촌에 눌러앉게 되었으며
그들 중 대다수가 시장경제에서 도태된 곤궁한 생활을 지내게 되었다.
정부와 마오에 대한 믿음과 신념으로 황무지같은 농촌으로 가게 된 그들의 청춘은 한 시대의 희생으로 남아있다.
낭독극은 처음이었다.
모든 작품의 초연도 기대가 되지만 낭독극 또한 재미있었다.
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연습실을 보는 기분.
대본상의 캐릭터를 구체화시는 일과 전반적인 극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간 과정 쯤으로 이해한다.
문화대혁명의 시기가 지나고 향촌의 지식청년들이 도시로 올라오는 것이 허용되긴 했지만
주인공 리샤오장의 차례는 좀처럼 오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리샤오장은 여자친구와 연극을 보려고 표를 구하려 하지만 만만치 않다.
표 한장 구하는 일에도 고위층의 인맥이 필요한 상황.
(흘리듯 들려주는, 그들이 보려고 하는 연극의 줄거리가 바로 이 작품의 내용인 셈이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딸이 리샤오장과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그가 아직 도시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림없는 일.
리샤오장은 여자친구의 환심을 사려고 가짜 마오타이주를 구해서 보내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사실, 그의 차례는 진작에 지났다. 다만 고위 간부들의 자제들에게 밀렸을 뿐이다.
노동자 계급의 아들딸들에겐 아무런 기회가 없는 막막한 상황.
당간부인 쑨국장과 그의 딸, 첸처장이 표도 없이 당당히 입장하는 것을 목격한 리샤오장.
(그애 아버진 간부예요, 당신 아버지 간부인가요? 라는 대사를 다소 코믹하게 던지는
'자오단장'의 캐릭터는 극초반의 분위기를 업시켜준다.)
리샤오장은 홧김에 그날 밤에 오지 못한다는 '마부장'을 사칭하는 전화를 걸어
자신을 마부장의 지인 '장샤오리' 라고 속여 자오단장의 안내를 받는다. 간 큰 청년일세.
연극이 끝나고 VIP 룸으로 안내받은 리샤오장.
자오단장은 그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그가 누구의 자제인지 알아보려 한다.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주려다 퇴짜맞은 가짜 마오타이주를 자오단장에게 선물하며 리샤오장은
자신의 부친이 누구인지 맞춰보라 하고, 자오단장의 추측이 최고위층의 한 인물에 이른다.
자오단장은 그에게 묻지도 않은 그 고위간부 장아무개와 첸처장의 남편인 우서기와의 인연과
이십년 전의 에피소드를 말해주어 리샤오장의 거짓말을 심화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어쩌면 리샤오장은 그저 가벼운 거짓말로 연극이나 한 편 보고,
그 댓가로 가짜 마오타아주나 한 병 주고 나오면 될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을 텐데 말이다.
도망치려던 리샤오장은 첸처장과 마주치고, 엉겁결에 그녀에게 아는 체를 한다.
그러면서 단장에게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 점점 자신의 가짜 신분을 완성해 나간다.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거짓말 끝에 자신의 진짜 신분인 "노동자의 아들 리샤오장'을
농장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청탁을 하는 가짜 "장샤오리"
그러나 그가 거짓말을 하도록 옥죄여 온 것은 바로 첸처장이다.
쑨국장은 이런 식으로 공정치 못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마뜩치는 않으나
그 역시 자신의 딸이 농장에서 올라오도록 손을 썼을 것이고 딸의 성화에 사위도 곧 불러올려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상관인 첸처장의 지시를 당연히 거절할 수 없다.
첸처장은 '장샤오리'를 자신에 집에 머물도록 한다. 일이 점점 커져간다.
쑨국장의 집에선 리샤오장의 여자친구 저우밍화가 집안 일을 있다.
친구이자 쑨국장의 딸인 쥐안쥐안을 통해서 리샤오장이 농장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청탁을 하지만
쑨국장에게 거절당한다.
자오단장은 '장샤오리'가 선물한 '가짜 특제 마오타이주'를 쑨국장에게 선물하면서
지금보다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청탁하지만 역시 거절 당한다. (세 식구가 40평에 산다며 비좁단다.)
자신의 지위는 자신의 일에만 이용하고, 양심과 도리는 다른 사람들의 청탁을 거절하는 것으로 지키려 한다.
그 때, 사위를 데리러 간 쑨국장의 아내로부터 일이 잘 되었다는 전화가 온다.
다만 우서기의 명령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쑨국장의 집으로 온 찾아온 '장샤오리'. 리샤오장의 일을 확인하려는데 만만치 않다.
결국 자오국장의 제안으로 '장샤오리의 아버지'를 거짓으로 동원하기로 한다.
그런 후 그녀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청탁을 한다.
쑨국장 역시 사위의 전입명령서를 받을 수 있도록 청탁한다.
장샤오리는 무슨 부탁이든 들어준다고 흔쾌히 약속을 남발하는데...
그러나 우서기의 태도는 단호하다 .아내인 첸처장의 사적인 부탁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
당간부들의 해외 출장길에 동행하도록 해 달라고 졸라대는 것을 마다하고 버티는 중이다.
우서기는 장샤오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데
그의 부인은 장샤오리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없다.
그런 그들 앞으로 '장샤오리의 부친, 장위원'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그는 첸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리샤오장을 부탁한다. 우서기는 거절할 수도, 의심의 여지도 없다 .
쑨국장은 가짜 마오타이주를 우서기에게 가져온다.
첸처장은 그 마오타이주를 다시 장샤오리에게 준다. 아버지 갖다 드리라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가짜 마오타이주는 권력이동의 산 증인이다.
우서기의 명령서까지 동원했으나 농장에서 리샤오장을 빼오는 것이 수월치 않다.
그러자 이미 결정된 스무명의 명단에서 새치기를 하여 계급이 낮은 한 간부의 아들을 제치고
그 자리에 리샤오장을 끼워 넣는다. 드디어 농장을 떠나게 된 리샤오장.
농장장은 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코미디가 있나...
장샤오리는 여자친구를 우서기의 집에 데리고 온다.
자신이 만일 좋은 집안, 즉 간부의 아들이었다면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들은 밝은 앞날에의 기대에 차서 행복해 한다.
그 때 우서기의 집을 방문한 "장샤오리의 아버지, 장위원". 진짜와 가짜의 만남.
농장에서 풀려나기 직전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막힌 현실.
왜 신분을 속이려 했는지를 추궁하는 장위원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리샤오장.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를 이렇게 융숭히 대했겠는가.
왜 내가 노동자 계급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하대받아야 하는가.
재판에서 리샤오장은 자신의 죄는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고 항변한다.
뜻밖에 그의 변론을 맡아준 그의 가짜 아버지 장위원.
리샤오장의 잘못에는 이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당간부들도 포함되어 있다며
그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야기의 내용이나 흐름, 구조는 다분히 블랙코미디적인데
결말 부분의 장위원의 태도가 너무 정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원작에서는 장위원의 대사가 훨씬 더 길고 무거웠는데 앞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많이 줄였다고 한다.
풍자는 잘못을 꼬집어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있으나
결론을 좀 과하게 직설적으로 풀어낸 것이려니.
개인적으로는 이 문화대혁명 시절에 대한 관심이 좀 있었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잠깐 다뤄진 대목에서 처음 받았던 충격적인 장면 묘사와
연극 엠 버터플라이에서 다뤄진 단편적인 모습에서 이 시절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받았던 박해사라던가
이런 부분과 관련한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 말이다.
중국은 사실 북한이 중간에 있어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껴질 뿐, 한반도의 영원한 이웃이 아닌가.
특히나 전쟁이 끝나고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서부터 이어진 격랑의 시절은
같은 기간 한반도가 겪었던 그 혼란과 격동의 시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남과 북의 근현대사와 아울러 중국의 근현대사까지 한번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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