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지난 어린 시절의 모든 일들을 딛고 몸과 마음이 함께 자란 존재들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그 시절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해서 정말 그 시절과 현재의 내가 별개의 존재일 수 있겠는가.
좋은 기억과, 주위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기억은 살아갈 날에 약이 되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크고작은 상처의 기억은 성장한 후에도 늘 상처로 남기 마련이고
문득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 띄게 되는 상처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상처로 남은 일들은 평생을 간다.
다치더라도 상처는 남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아버지도 한때는 아들이었고
부모로부터 (특히 아버지로부터) 사랑도 받았겠지만 깊은 상처도 받았다.
그 때는 약자였기에 그저 반항하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를 힘으로든 논리로든 이기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상처로 습득한 방식은 마치 유전자처럼 나에게 새겨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 과정의 대물림인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을 잘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자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거쳐야 할 과정을 다 밟아야 성장하는 아이의 입장에선
이해를 앞서는 부모의 압력이 버거울 따름이고
그것이 원망이 되고, 갈등의 씨앗이 되고, 대립의 출발이 되고.
극단의 경우를 통해서 들여다 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 극단의 고통을 잘 보여준 배우들이었다.
피에르와 안느는 이혼한 부부사이고 니콜라는 그들 사이의 아들이다.
니콜라는 새 연인인 소피아와 재혼하여 아이를 두고 있다.
어느 날 안느가 피에르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니콜라가 3달이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자긴 니콜라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아들을 만난 피에르는 뭔가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그 말들은 니콜라에게 가 닿지를 않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아들의 입장에 서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뿐이다.
뜻밖에 니콜라는 아버지의 새 가정에 함께 살고 싶어한다.
여기서는 너무 힘들다고,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며 흐느낀다.
어른들만의 문제와 별개로 아이에게는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다는 일은 마치 자기 자신이
둘로 나뉘는 듯한 고통이었노다고 얘기하는 니콜라.
부모와 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상대의 입장을 본인처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니콜라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피에르에게 니콜라는 거짓으로 둘러대고
그 말을 곧이 믿은 피에르는 니콜라에게 실망하고 화도 나고 좌절도 한다.
손목을 칼로 그어 피를 보고 나서야 답답한 마음이 조금 해소된다는 피에르.
아들을 이해하고 싶은 피에르는 답답하기만 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소피아는 기꺼이 니콜라를 받아주기로 했지만 그 일은 소피아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에르는 모처럼 아빠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려 하지만 그가 없는 낮동안
이해할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니콜라를, 친엄마도 감당 못 한 남편의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선의의 결심만으로는 분명 어려운 일이다.
어린 아들 샤샤를 니콜라에게 맏기고 외출하는 일은 소피아에겐 불가한 일이다.
니콜라는 다시 엄마에게 돌아오고 싶어 한다. 거긴 내 자리가 없어.
아빠에게는 이성적인 설명이 필요할 뿐이어서 그럴듯하게 둘러댔다고 말하는 니콜라.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겨워서, 이젠 그만 멈추고 싶다고 엄마에게 담담히 말하는 아들.
너무도 디테일하게 거짓말을 해 댄 덕에 깜빡 속아왔지만 니콜라는 이번에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피에르는 진심으로 아들을 이해할 수 없고 아들의 거짓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그런 피에르에게 더 이상 사는 일을 못하겠다고 절규하는 니콜라.
아빠가 엄마와 자기를 버리고 간 일을 심한 말로 비난한다.
나도 내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 알아?? 피에르도 억울하다.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갖고 살아온 피에르에게는
아들에게서 똑같이 되돌려받는, 그 칼같은 원망의 말들이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갑자기 숨막혀하는 니콜라를 병원으로 옮긴 피에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안느.
의사는 니콜라를 입원시켜 정신과 치료를 할 것을 권한다.
며칠이 지나 잠깐의 면회가 허락된 날, 의사는 결코 아들을 따로 만나선 안된다고 하지만
니콜라는 의사의 눈을 피해 부모와 아주 잠시 단독 면회한다
그리고 자기를 이 병원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의사는 피에르에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므로 계속적인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지만
니콜라는 두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애절한 말과 행동으로 집으로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며
난 그저 엄마와 아빠가 나의 고통을 이해해주기를 바랬을 뿐이라는 말에
피에르와 안느는 결국 니콜라를 집으로 데려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만다.
(부모에게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환자 앞에서 부모가 동의하는 절차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환자가 체념하고 치료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안느의 집에 도착해서 모처럼 세 사람은 '예전처럼'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엄마와 아빠와 아들, 완전한 가족의 모습으로.
이제 다 나은듯이 멀쩡한 모습을 보이는 니콜라.
엄마와 아빠에게 커피까지 만들어주며 즐거워하는 니콜라를 보며
두 사람은 아이를 데려온 것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아이를 함께 케어할 것인지 의논한다.
샤워를 좀 하고 싶다며 욕실로 들어가던 니콜라는 갑자기 엄마와 아빠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니콜라가 나오길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욕실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의사의 예언대로 니콜라는 자신이 원하던 선택을 하고 말았다...
피에르에게는 소피아와 샤샤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날들이 있지만
문득문득 생활의 틈새같은 순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니콜라의 환상이 그의 넋을 놓게 하고
'살아지지가 않아...' 라던 니콜라의 절규가 피에르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피에르는 아마도 그렇게 끝까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자책과 니콜라의 환상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물론 안느 역시.
내 주변에도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여럿 있다.
건강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어떻게 소통하고 어디까지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는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때론 과장되고, 때론 너무 위축되거나 무기력하고, 쉽게 흥분하고, 때론 늘 화가 나 있는 그들과
어떤 방법으로 대화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 또한 의사가 아니기에 의학적 처방같은 명확하게 맞는 대응을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말을 들어주려고 노력할 뿐. 진짜 마음을 알려고 노력할 뿐.
그러나 그런 와중에 나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답이 없는 일 같다. 누굴 원망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일.
입원치료도 완치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 같고...
최근에, 나도 가까운 누군가를 그렇게 보내야만 했다.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한 나의 자만에 내가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더 허망했고, 좀 더 세심하지 못했었다는 자책도 했었다.
당초 발병의 원인은, 시작은 어느 지점이었을까.
거기서 그걸 알아챈다면 고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그저 죽을 때까지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답일까?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더 위중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 중요하다.
오늘 나는,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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