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던지라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지만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표!
(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작가소개글에 가장 중요한 제목에 난 오타를 발견하지 못하고,,,,)
2014년 <나는 왜 자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
자기 공연을 객석에 앉아 아주 재밌게 보고 있던 김재엽 연출의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이런 시도가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며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번 공연을 보고 나니, 이 사람은 이런 스타일로 연극을 하는구나 싶어서 역시 흥미로왔다.
남명렬 배우는 재엽의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이다.
말없고, 무뚝뚝한 듯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오롯이 떠안고 살았고
개인적으로는 그 자신안에 들끓었던 많은 감정들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오로지 책을 통해서 여과시키고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다 마지막 순간에 글을 쓰는 작은 아들에게 뜻밖의 고백을 들려준.
아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어머니 역의 전국향 배우.
때론 그 목소리가 선을 분명히 긋는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중견의 여배우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값지다.
재엽역의 정원조 배우는 나이가 적진 않을텐데 매우 소년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왜 재엽역을 전박찬 배우라고 생각했을까?)
그 밖에도 여러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어린아이부터 나이많은 역까지 일인다역을 수행했다.
실은 얼마 전, 몇달 전부터라고 할까...
나의 2,30대 시절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90년대의 유행곡들을 듣다보면 저 때 난 뭘 했었지? 싶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한창 시절이었는데... 일도, 연애도, 모든 생활이 치열했던 시절이었을텐데...
그래서, 언제 시간을 따로 내서 기록을 해 볼까 했다.
이 일, 저 일, 그 시절에 있었던 사회적 이슈, 유행했던 문화 등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나는 누굴 만났었고 무슨 일을 했었고, 어떤 사람들과 일을 했었나.
어떤 음악을 즐겨 들었고, 어떤 책을 읽었고, 누구와 어떤 대화를 심도깊게 했었나.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었나... 기억해 보고 싶어서 말이다.
(아마 이번 관극을 기회로 시작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나 그리워할 줄 몰랐다.
지금도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맺힌다.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남자로 이해해보고자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내인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 기억속에 남은 모습만이 전부일 뿐이다.
언젠가, 오빠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오빠는 같은 남자로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요즘 구순의 노인이 된 엄마를 새로이 겪고 있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나의 기억 또한 오빠들과는 다를 것이다.
누구의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한 사람이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개인의 일생은 하나의 역사다.
그 역사 안에는 영광도 있고 오욕도 있고 잘라내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신의 역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던
한 개인의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노력이 가족이나 혹은 타인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가와 상관없이 말이다.
재엽의 아버지를 보며 나는 그저 타인으로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극중 재엽보다 내가 조금 많은 나이니까 이 연극은 내가 지나온 시절과 비슷하다.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은, 힘들게 살아 온 부모를 가졌고
박정희 독재의 시대를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학창시절을 지나왔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79년, 대통령 박정희가 부하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머, 우리 이제 어떻게 하니? 북한에서 쳐들어 오는거 아니야?"라며 불안해 했다.
그는 그시절, 거의 신이었다.
형편상 거의 못 갈 뻔 했던 대학문턱을 겨우 넘어서 수도권 전문대에 다니던 내게는
구호를 외치며 연일 데모에 앞장서는 서울의 대학생들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들이 외치는 "독재타도, 호헌철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너희는 가고 싶은데 갔잖아, 하고 싶은거 하잖아.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해 준 동시대 사람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
나는 청춘의 방황을 하는 친구들에게조차 질투심이 일었다.
방황? 그것도 다 배불러서 하는 거야, 난 방황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어.
나는 그렇게 원하던 것을 포기하고 원하지 않았던 일로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거칠고 호된, 아니 그렇게 표현하기도 애매하고,
굳이 말하자면 불운한 시작을 거쳐 오래도록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머릿속을 괴롭히는 자의식의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눌렀다.
지금은 아무생각도 하지 말자, 그냥 하루하루 오늘만 살자.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땅밑만 보고 살자...
그렇게 살다 보니 삼십년이 지나 있었고, 가끔씩 나는 헛헛함을 느꼈다.
내 안을 채우고 있던 무엇이 다 고갈되었는데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마지막 남은 한줌의 가루마저 파내려는 듯한 모습의 내가 발견되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이렇게 여유없이...
억지로라도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나를 위한 양질의 시간은
결코 자연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나서야 나는 나에게도 곁을 좀 내어주게 되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약간의 독서와 함께 음악, 뮤지컬, 연극, 콘서트, 영화, 전시관람을 했다.
남들은 과도한 문화생활을 한다며 '먹고살만 하네~'라고 할 지 몰라도
나에게 그것은 마음의 안정을 위한 일종의 진통제이며 잠시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베란다같은 것이다.
사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활자와 멀어지게 된 것도
편치 않은 마음이 온전히 책에 나를 몰두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시킨다고, 나역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고 살아왔던 듯 하다.
나는 인문학을, 문학을 , 역사를, 예술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나마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이렇게까지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 역시 크던 작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비록 그 새로움이라는 것이 늘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재엽은 아버지의 역사와, 그와 함께 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자식으로서의 형과 자신의 지나온 모습을 반추하며 보여준다.
(그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 겪은 일본의 패망.
귀국과 동시에 좌우로 분열된 혼돈속에 정권을 잡은 이승만.
그리고 곧이어 일어난 한국남북전쟁과 박정희.
그에 대적하려했던 장준하의 의문사. 그리고 김대중.
아버지는 이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어떤 특정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책 속에서, 특히 외국활자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그가 특별히 따로 저술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방대한 독서량은 이미 그가 어떤 세계를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그런 아버지가 감추고 싶었던,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 일은
사실 지금이라면 몰라도 그시절, 누군가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텐데
아버지에게는 아마 자신의 인생에서 잘라내고 싶은 부분이었나보다.
재엽이 신병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울컥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자신을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하나의 인연으로 이해한다.
서로 무관하기 어려운 깊은 인연. 그래서 꼭 '거리'가 필요한 인연.
때로 부모는 자식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곤 하지만 이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적당한 때가 되면 자식은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해야하고
부모는 자식을 나와 구분되는 한 개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새들이 그러하듯이, 짐승들이 그러하듯이.
부모도 자식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커밍아웃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간의 깊은 이해가 가능하고 자식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부모를 이해하는 데서 자식의 성장은 시작된다.
재엽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반추해 본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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