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왜 그는 "생명"을 거는 무모한 약속을 하였던가 하는 부질없는 한탄을 해 본다.
그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나 혹은 아내가 될 경우도 있으련만.
그러나 '신'이라는 절대자는 뭔가 인간이 가진 것 중 BEST OF BEST가 아니라면
절대로 거래를 할 의지가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숙명, 혹은 운명이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이다.
극초반 그가 해변에서 아들을 만나는 순간 이후로
이도메네우스는 이구석 저구석에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이야기에
아무런 대꾸도 반론도 하지 못하고 아주 무기력하고 고뇌에 찬 표정과 자세로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닥친 이 가혹한 현실 앞에 그의 진심이나 그의 입장, 그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동정하는 듯 하다가 점차 그를 비난하거나 혹은 그를 바보로 만들거나
혹은 그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저 그의 이야기는 세인들의 가십거리로 소비될 뿐이다.
프로그램북에서 연출자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의 대표적인 이도메네우스를.
그 자신 만이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마치 벌거벗겨진 채 유리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온 국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눈길을 받게 된 사내.
피할 곳 없이 쏟아지는 수 많은 말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견뎌야 하는 가혹한 시간들.
극속의 이도메네우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현상 앞에 그의 본질은 없다.
다만 그에 대해 이런저런 화살을 너무 많이 쏘아댄 나머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저 그 말의 '화살들'일 뿐이다.
누가 그 많은 화살들을 거둬내고 상처입은 그의 본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연습을 하던 중에 이른바 '조국사태'가 벌어진 것인데
어떻게 이리 절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최근, 가수 설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어린 친구가 최근까지 많은 악플에 시달렸었다고 하는데...
공적인 미디어나 사적인 SNS나 할 것 없이
그녀 생전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사후에까지 맹독의 화살을 쏘아대는 이유가 뭔가.
왜들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그녀 또한 지금 이 시대, 또 한 명의 이도메네우스다.
비극은,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남의 비극은, 때로 누군가에겐 희극이 되기도 한다...
아주 모던한 형식과 무대의 이 '고전극'은
아마도 지금의 이 상황이 아니었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대에 너무나도 시의절적한 화두를 던져준 것인데
그래서 고전의 가치는 영원한 것인가.
독특한 구성과 진행이 돋보이는 좋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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