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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엔드게임 - 20190916

by lucill-oz 2019.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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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포스터, 마음에 든다. 



클라우드 티켓 공지가 뜨자마자 우선 신청을 하고 보니

극단76의 작품이고, 기국서 연출이고, 사무엘 베케트 원작이다.

게다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하성광 배우의 출연작이다.

뭔가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아울러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우려가 동시에...

역시나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1막짜리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듯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 시작 십분 전에 입장을 하니 무대에 이미 클로브 역의 배우가 조각처럼 서 있다.

휠체어라기엔 너무 허접한 그저 작은 바퀴가 위태롭게 달려있는 엉성한 의자엔 

누군가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마치 짐짝처럼 위치해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마치 동굴같기도 하고 지하실 같기도 하다.

사다리를 놓아야 닿을 수 있는 높은 곳에 아주 작은 창문 뿐, 가구 한 점도 없다. 

쓰레기통인지 트렁크인지 알 수 없는 드럼 통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의자 위의 남자 햄(박성광)은 하반신만 못쓰는 것이 아니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수시로 진통제를 찾고, 얼굴을 덮고 있던 헝겊조각엔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또 다른 병이 있어 보인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인에게 시킨다.

잠에서 깨어 하루가 시작되면 다시 잠들 수 있는 있는 시간까지 버티는 일이 내심 힘겨워 보인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기 위해 하인을 상대로 쉴새없이 지껄인다.

의식의 흐름대로 지껄이고, 화를 내고, 트집을 잡으며 젊은 하인을 괴롭히는 것이다.

스스로 끝내고 싶어도 끝을 낼 수 없는 이 상황을 종료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 하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막상 그가 보이지 않자 그가 진짜로 떠났을까,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일점 기대감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호루라기를 불어보게 했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보게 했을 것이다.

그는 과연 삶의 마지막 게임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죽는 일이 사는 일보다 힘들 것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쪽 다리가 불편한 클로브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행위가 아주 익숙해 보인다.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으면.

그는 남자를 위해서 집안일을 하고, 그를 돌보고, 드럼통 속에 사는 그의 부모를 돌보는 일을 한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히스테릭한 남자를 견디기가 힘든 클로브는 늘 떠나고 싶어한다.

"갈께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연극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국 문을 나서지 못한다.

그를 견뎌내는 일이 짜증스러웠지만 남자에 대한 애증과 연민이 그의 발목이 잡고 있는 듯 하다. 

만일 남자가 그에게 히스테릭한 말들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를 표했었다면 

그는 떠날 마음을 먹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창밖에 보이는 살아있는 생명은 그의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드럼통 안에는 뜻밖에 사람이 산다. (저 통밑은 뚫려 있을까? 뚫려 있어야 해!!!) 

뚜껑이 열리면 그 속에서 남자의 부모가 올라온다. 반전!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 같이... 겨우 던져주는 비스켓으로 연명하는 모습. 끔찍하기까지 하다. 

아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대접을 받지도 못하지만 받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 두 노인.

그런데 막상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애틋해 보인다.

젊은 시절은 철없이 살았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인이 된 지금은 뭐랄까, 달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 비극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보다는 옛추억 속에서 몽환에 빠져있기를 택한 것 같다.

노인의 지혜?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때가 언제여도 상관없는. 






시종일관 쉬지 않고 뱉어내는 남자(하성광)의 엄청나면서도 무의미한 대사.

클로브가 떠난다는 것은 남아있는 모두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마음은 언제나 문밖에 있지만 몸은 그가 뱉는 말과 달리 떠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

둘 뿐이라면 어떻게라도 해 볼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겐 사람도 짐승도 아닌 상태의 부모가 있다.

대사의 톤을 그리 무겁지 않게 처리하기는 했으나 

관객이 보고 있는 상황 자체가 답답하고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나는 '부조리극'이라는 연극용어를 이해하기가 아직 조금 어렵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조리하다"는 말과는 좀 다른 뉘앙스다. 이젠 자주 쓰이지도 않는 말이지만.

그런데 오히려 '부조리극' 장르의 작품을 관람하며 그 의미를 느낀다.

그러나 실존주의 어쩌고 하는 사전적 정의처럼 명료하게 설명하진 못하겠다.

내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ㅠㅠ

뭐랄까. 인생무상과 삶의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가는... 

반복되는 극단의 절망감과 무료함이 주는 비애라고 할까...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크고 풍성한 잎을 가진 나무가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이 휘어진 앙상한 나무다.

그리고 그 나무를 닮은 두 노인이 등장한다.

그들의 그 권태로운 하루하루의 기다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 나무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약속의 장소. 간혹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올 수도 있는 곳.

비록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지만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곳' 말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중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나마 클로브가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그가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물론 그 역시 그가 가진 결함과 남자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있기에 쉽게 떠날 수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의 클로브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그 앙상한 나무가 아닐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일종의 핑계같은 것.


결론은... 

깊은 허무감이다.


  


정재진, 이재희 두 노배우들의 짧지만 굵은 연기.

노배우들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 연극이라니!!!

체력소모가 매우 컷을 것 같은, 오로지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 대사로 모든 연기를 해야 했던 하성광 배우.

실제로 정말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은 클로브 역의 김규도 배우.

모두 인상적이고 좋은 무대였다.

이런 지루한 내용의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배우들의 힘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관객이 먼저 퇴장하는 낯선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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