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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올드 위키드 송 - 20150912

by lucill-oz 201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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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슈칸 - 송영창  스티븐 - 이창용





아슬아슬하게 시작해서 참 따뜻하게 끝나는 극이다.


마슈칸 교수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방으로 불쑥 들어온 스티븐 호프만이라는 젊은이는 많이 까칠해 보인다.

그를 맞이하는 마슈칸 교수 역시 어딘가 편안해 보이진 않는다.

스티븐은 사실 쉴러 교수를 찾아온 피아니스트이지만 그를 맞이한 건 쉴러가 아닌 마슈칸.

쉴러는 자신에게 반주 수업을 받으려면 먼저 마슈칸 교수로부터 노래를 배우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황당해하는 스티븐. 그러나 마슈칸은 마치 손님을 유치하려는 호객꾼처럼, 혹은 어린애를 달래려는 노인처럼

이 까칠한 젊은이를 설득해 자신의 수업에 참석하도록 설득한다. 그러면서도 교재비를 현찰 박치기로 수금하는 꼼꼼함.

스티븐은 이미 어린 나이에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친 바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 벽을 느끼고 있는 상태.

그래서 솔로 연주가 대신 반주자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쉴러 교수를 찾은 것이지만

마슈칸은 그에게 반주를 하려면 먼저 노래를 배울 것을 강요한다.

솔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을 접은 것도 모자라 가수가 아닌 자신에게 노래를 강요하는 마슈칸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쉴러 교수에게로 가는 징점다리 쯤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스티븐은 억지로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흠, 그런데 목소리가 좋다!)


수업 과정은 그들의 만남 만큼이나 순조롭지 않다. 

매사 삐딱한 스티븐과 그를 약올리는 듯한 괴짜스러운 마슈칸. 그렇게 위태롭게 수업은 진행된다.

그러나 음악은 너무나 아름답다.

반주자가 어떤 마인드로 연주해야 하는가.

가사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그 감성에 깊이 몰입하여야 한다는 것.

자신이 노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기계처럼 악보대로 누르기만 해선 안된다는 것.

예민한 스티븐의 입장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마슈칸과의 수업이 마치 전쟁을 치루는 듯 끔찍한 시간들이고

마슈칸의 입장에서는 말 안듣는 고집불통의 어린 제자를 데리고 진도를 나가야 하는 수고가 따르는 시간들이지만

어쩐지 마슈칸은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그에게는 어딘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인다. 그가 모든 것을 잊고 미칠 수 있는 시간들.

그러나 그들은 이 위태로운 시간들 속에서 무언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찾아낸다.

마슈칸이 추천한 오페라를 보고 오지 않았으면서도 보고 온 척 하려던 스티븐의 어색한 연기는 대번에 들통이 나고 

마슈칸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다. 스티븐으로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선생이다.


혼자가 된 마슈칸이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고 있는 그의 방으로, 마침내 오페라를 보고 온 스티븐이 흥분하며 들어온다.

마슈칸의 고독에 위로가 되어주는 스티븐. 그리고 그렇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서로의 모습.



마슈칸은 악몽을 꾸다가 놀라 깨어나고, 그 순간 스티븐은 독일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의 수용소가 있던 기념관에 다녀온 후 스티븐은 뭔가 좀 더 견고해진 느낌이 든다.

그곳, 독일에 의해 세워진, 독일어로 씌여진 그 설명문들은 독일어를 모르는 대부분의 방문객들에겐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고

처참했던 현장은 대부분 잘 포장되어 있거나, 스티븐의 설명대로라면 가려져 있었다.

그 곳에서 유태인으로서의 뜨거움을 느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스티븐은 독일어로 노래하지 않겠다고 한다.

반면 오랜 기간, 자신이 유태인임을 숨기고 살아와야 했던, 그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슈칸.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던져버리고 철저히, 유태인을 경멸하는 독일인으로 살아왔다.

내가 내 자신을 부정하는 것도 아픈 일이었지만 그들이 나를 찌르는 것보다는 덜 아팠으니까...라고 말하고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온갖 고통들이 그를 둘러싸고 괴롭한다. 그리고 몇번의 자살시도.

아내마저 10년 전 세상을 뜨고,긴 시간을 혼자 견뎌왔을 그의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서로의 진솔한 모습을 확인한 후 가까워진 두 사람.

스티븐은 마슈칸의 슬픔을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언어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들의 수업은 좀 부드러워진다.

온 생애를 관통하는 태생적 고통과 슬픔을 오로지 음악에 의지하고 음악에 위로받으며 버텨온 한 남자에게 있어

음악은 그냥 무의미한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음표 하나하나가 삶의 매 순간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엄청난 무게의 짐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늙은 남자와

자신이 그 엄청난 슬픔을 간직한 족속의 후예라는 것을 지금 막 자각한 한 젊은 남자가 함께 한 길지 않은 시간.

그들이 보여준 그 길지 않은 시간은 서로에게도 관객에게도 위안이 되는 느낌이다.

스티븐이 앞으로 무슨 음악을 하든, 그가 계속 솔리스트로서 연주하든 반주자로서 연주하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마슈칸은 노년에 선물처럼 만난 이 젊은이를 생각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고단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송영창 마슈칸 덕분에 극으로의 몰입이 편안했다.

어린애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여유와 유머. 좋았다.

이창용 스티븐, 이른 나이에 성공을 맛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의 미성숙한 자부심을 잘 표현해 주었다는 느낌이다.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젊은이에게도 중장년 층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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