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가교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
1965년 창단이니까 내 나이랑 같다.
긴 세월만큼이나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엄청난 역사다.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을 절대로 홍보해 주지 않는 고미숙 배우는
그대신 예그린씨어터가 있는 무애빌딩을 홍보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그 건축물을 우선 돌아보았다.^^
프로그램북을 우선 꼼꼼히 읽어 보고 관극을 했는데도 극은 좀 난해했다.
등장인물 소개에 의하면!
아흘로비스찐 - 한때 저명했던 생물학자 (막 사는 듯이 보이는 이 남자가 그런 지식인이라는 것이 반전!)
지나 - 기하학으로 온 청춘을 바쳐 지칠 때까지 춤을 추는 여인
(나는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기하학적인 춤이란 어떤 춤인지 끝까지 기대했었다는^^)
이바노프 - 따냐의 남편이자 알려지지 않은 작가, 현재 무직자
(따냐가 그를 대신해 일을 한다는 것으로 그가 무직자라는 것은 알겠는데 시인이라는 것은 어디서 드러났었나...)
따냐 - 아흘로비스찐의 옛사랑.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심한 우울증 환자
(그러나 그녀가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거나 우울해보인다는 흔적을 난 찾지 못했다.)
아가씨 - 따냐와 동명이인.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아가씨
청년 - 항상 79라고 씌여진 옷을 입고 다니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청년
( 79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청년 역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미성년자였다는 것이 가장 큰 반전이었다.)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
이들은 매일 파티를 열고 술에 취하고 춤을 춘다.
그들에게는 학자로서의 교양이나 점잖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아흘로비스찐은 파티에서 만난 지나와 같이 살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옛 연인 따냐를 못잊어한다.
따냐의 남편 이바노프는 아내와 이름이 같은 젊은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지만
아내와 아흘로비스찐의 관계에 광분하여 어린 따냐를 버리고 아흘로비스찐의 집에서 난동을 부린다.
따냐는 남편을 유혹한 어린 아가씨에게 질투를 느끼나 싶더니만... 두 여자는 서로에게 빠져 버린다.
(좀 황당한 시츄에이션이어서 당황...)
이바노프에게 버림받아 상심한 어린 따냐를 사랑하는 79청년.
그러나 그는 어린 따냐가 자신을 떠나버리자 엉뚱하게도 지나에게 청혼을 한다.
지나는 아흘로비스찐의 아내노릇을 하며 그들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키려 애를 쓰지만
그녀 역시 청년의 청혼을 핑계로 아흘로비스찐을 떠나버린다.
그러나 그 청년은 아직 미성년자였다는!!!
아, 불쌍한 남자들...
(지나는 초반 관능미로 남자를 차지한 여인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뭐랄까...
제정신이 아닌 듯한 다른 두 여인들과 남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물론 가끔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충실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난 당연히 그녀가 그남자와 결혼을 했구나 싶었는데... )
그러나 이렇듯 서로 얽히고 설킨 이 복잡 미묘한 관계의 갈등을 넘어서 다같이 마음을 내려놓는 듯한 마무리.
관객입장이 다 이루어지지 않은 와중에 웬 밀집모자를 쓴 청년이 마치 무대 정리를 하는 듯 어슬렁 올라오더니
갑자기 소품용 사과를 베어물고 테이블 위의 소품용 술을 따라 마시고 들어간다.
그러더니 배우들이 자기네들끼리 숨박꼭질이라도 하는 듯이 들락날락한다.
이게 지금 시작을 한 건가 아닌건가...
그러더니 끝날 때도 여기가 끝인건가 아닌건가 싶게 퇴장도 없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박수를 어디서부터 쳐야 하는건지 잠시 눈치를 봐야 했다.
(전에 연극 '퍼즐'도 그랬었는데 다행히 2차 공연때는 좀 친절해졌었지^^)
그러고보니 그 밀집모자 청년이 곧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시그널이었던 듯하다.
생각해보면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좀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줘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비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서 느껴지는 무력감,
절제되지 않은 채 분출되는 여과없이 드러나는 감정들,
거기에서 느껴지는 자괴감 같은 것.
어렴풋하게나마 나름 이해가 간다. 옳게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그녀와 1:1로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대토론을 벌여야 할 듯!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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