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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프로즌 - 20150627 (박호산) / 20150718 (이석준)

by lucill-oz 201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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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다른 버전의 랄프로 두 번의 관극.

독특한 형식, 간결한 무대, 인상적인 배우들의 연기.

각자 극단의 슬픔과 상처를 갖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랄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낸시에게 있어 진정한 용서는 가능한 걸까? 그녀의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그네샤는 친구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 것인가, 그녀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은 것인가?

누구에게 있어서도 용서란,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미워하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무대 가운데 놓인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은 세 인물들이 차례로 일어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독백으로 읊조린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으며 때론 잔잔하게, 때론 강렬하게. 

그리고 자기의 차례가 끝나면 퇴장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다른 배역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관객처럼.

(그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소품이 매달린 줄들. 인상적이다.



첫 시작, 아그네샤의 등장은 인상적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앞두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일종의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그렇게 강렬한 첫 등장을 위해 무대 뒤에서 얼마나 깊게 준비를 하며 있었을까)

아그네샤는 그의 동료인 데이빗과 함께 진행했던 연구 발표를 위해 탑승한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10년을 같이 일했으나 지금은 사고로 곁에 없는 데이빗을 향한 그리움.


아그네샤는 런던에 도착, "연쇄살인,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인가?"라는 연구주제를 발표한다.

그녀가 데이빗과 함께 연구한 것은 바로 강력 범죄인들의 뇌구조에 대한 것이다.

어떠한 원인으로 인하여 뇌의 일부분이 얼어붙어버린, 그래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의,

그래서 죄악이 아닌 정신이상의 한 증상으로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의 뇌.

전두엽 이상 증세로 특정 현상에 반응하지 못하거나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증상.

그녀가 선택한 뇌는 바로 어린 소녀들을 유괴, 납치, 성폭행, 살인을 한 랄프의 것이다.



낸시는 잔잔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있었던,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던 평범한 그 날, 

큰 딸 잉그리트 대신에 작은 딸 로나를 친정어머니에게 심부름 보내던 날의 이야기를.

그러나 로나는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잉그리트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엄마를 극진히 살피지만 낸시는 점점 야위어 간다.

로나가 없어진 이후로 그녀의 가정엔 따뜻함이 사라지고, 

사랑받아야 할 또 한 명의 딸 잉그리트는 방치되고 있다.


평범한 주부였던 낸시는 실종자 가족들을 대표하는 지역모임의 대표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로나가 실종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녀는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추억을 하나씩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그리고 딸의 무사 귀가를 기원하며

로나의 물건을 늘 그자리에 두고 딸을 기다린다. 로나가 꼭 살아돌아올 것을 굳게 믿으며. 



랄프. 그런 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날, 

그렇게 특별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이든 벌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날, 그런 순간에 마주치게 된 로나를 어떻게 했었는지.

모두에게 말하듯 무심하게 던지는 대사.

'가끔씩 세상은 당신의 뒤통수를 치고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섬칫하지만, 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일정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정해놓고 지켜가며 동일한 류의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주로 소아성애에 관한 비디오를 모으고 있다. 소중한 재산처럼.

그리고 바늘이 살갖을 찌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몸에 문신을 새긴다. 자신만의 기념.




그러나 오랜 시간을 반복해 온 랄프의 범죄는 어느 날 꼬리가 잡히고...

낸시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실종 아동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로나의 것도 있었다. 

절대로 내려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낸시의 절망과 슬픔... 그녀의 절망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아, 그곳이 차라리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면... 그토록 가까운 곳에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녀는...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잉그리트는 엉망이 된지 오래된 집을 떠나 여행을 한다.

슬픔에, 절망에, 죄책감에, 사랑받지 못하고 빈 자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마음을 찾는 여행. 


로라가 발견된 그 창고가 철거된다.

낸시의 절규. 그녀의 곁엔 지금 아무도 없는데...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낸시. 

로라의 유해라도 받아서 편히 묻어주어야 하건만 당국은 그것마져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두 딸의 부재를 힘겨워하는 낸시.

잉그리트는 티벳에서 낸시에게 소포를 보낸다. 마음의 평안을 기원하는 글이 적힌 깃발.





아그네샤는 랄프를 상대로 여러가지 실험을 한다.

신체의 일부를 자극하여 반응을 살핀다던지, 언어능력에 관한 관찰, 한발 뛰기를 시킨다든지 하는 등.

그녀는 랄프가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하고, 그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랄프에게 한 발로 뛰는 동작을 시키자 겉으론 별 이상이 없어 보였던 그가 쓰러지고 만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녀는 랄프의 상처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러나 랄프의 대답은 횡설수설, 일관적이지 못하다.

그 와중에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지독한 학대의 흔적이다. 


아그네샤는 미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중범죄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뇌구조가 정상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어린 시절에 신체적, 정신적인 학대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물질인 '코르티솔'의 과다분비로 인한 부작용,

즉 뇌에서 저장소 역할을 하는 해마부분을 침식하여 정상적인 학습과 감정조절, 행동조절을 방해하게 되는데 

랄프 역시 그러한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것이다.

아그네샤의 설명을 듣던 랄프가 묻는다. 

"그럼 내가 고장난 사람이라는 겁니까?"

랄프의, 지극히 정상적인 "자각"의 질문.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랄프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아그네샤는 랄프를 위로한다기보다는 웬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낸시는 드디어 로나의 어린 뼈와 마주한다.

그토록 그리던 딸을 만나는 순간. 그러나 아주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진행되는 절차. 

로나의 두개골을 안으며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낸시.

그녀는 잉그리트와 함께 로나의 관에 어린 로나의 물건들을 넣어 준다.


잉그리트는 엄마에게 랄프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20년이나 붙잡고 있던 그애를 이젠 놓아주라고. 망가진 엄마 자신을 추스르라고.

그러나 낸시는 잉그리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나도 엄마 딸이예요..."  

안타깝고, 대견하고, 이젠 낸시의 든든한 보호자가 된 잉그리트.

 

낸시는 어렵지만 로나의 부재를 조금씩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잉그리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랄프를 만나려 하지만 아그네샤는 반대한다.

아직은 낸시가 냉정하게 랄프를 대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으므로.

낸시가 랄프를 만나려고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아니면 복수를 위해서? 아니면 모든 걸 내려놓고 홀가분해지기 위해서?




아그네샤는 단짝 친구이자 죽은 데이빗의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그녀가 진정 괴로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오랜 동료를 잃은 상실감? 친구에 대한 미안함? 

혹은 십년을 이어온 좋은 관계가 한순간의 감정조절의 실패로 인해 감당하기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린,

그리고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가져온 혼란스러움.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십년을, 동료로서, 그리고 친구의 남편이라는 방어막으로 속여온 서로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날의 일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의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고 그녀는 그것을 알기에 더욱 괴로운 것인지도...

(아그네샤의 고통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극 말미에 낸시에게 하는 대사에서 비로소 언급된다.

그래서 극 초반 아그네샤의 격한 감정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낸시나 랄프의 상처와 비교하면 아그네샤의 것은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일이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처란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스스로가 그 부분에 대해 얼만큼 자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크기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아그네샤는 다시 랄프를 면회한다.

랄프는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는 아그네샤의 말에 늘 상상속에 그리던 모습을 이야기한다.

따뜻한 집, 다정하고 친절한 어머니는 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아버지는 시를 읽고 어쩌고...

그러나 그에게는 씽크대에 머리를 처박던 어머니와, 어린 소년을 성폭행하던 양아버지가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결론에 따르면 

스스로를 자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에 기인한 범죄는 '죄악'이 되고

정신적인 질병의 한 증상에 기인한 범죄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둘 사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 둘 사이의 구분을 할 수나 있을까.

어쩌면 그를 한 사람의 환자로 이해하고 동정하는 일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낸시는 아그네샤의 충고를 무시하고 랄프를 면회한다.

그녀는 랄프에게 딸을 죽인 일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뭐, 누가 사탕이라도 하나 쥐어준 듯, 상투적인 말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랄프.

낸시는 로나가 어렸을 적의 가족사진을 몇 장 가지고 가서 랄프에게 보여주며 

로나의 어린 시절, 행복하던 가족들의 모습을 이야기를 해 준다. 

흥미롭게 반응하며 이야기를 듣던 랄프는 불쑥, 

로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고, 로나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낸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에게서 상상속에 그리던 엄마의 모습을 본걸까?

어린 시절을 묻는 낸시에게 털어놓는 랄프의 아픈 과거. 생생하게 재연되는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끔찍한 학대.

많이 아팠겠어요... 로나도 그렇게 아팠을거예요.. 이제 알겠어요?...

그 순간 랄프의 얼어붙었던 뇌가 녹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살아난 것이다.


랄프는 낸시에게 편지를 쓴다. 

비록 완전하진 못한 상태이나 이 불편한 마음이 그녀를 향한 미안함이라는 것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마음을 전하려 할수록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한 고통에 휩싸인다.




낸시는 랄프에게 다녀온 이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가볍게 취해보기도 한다. 잉그리트는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를 북돋운다.

그녀는 이제 즐겁게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랄프를 면회온 아그네샤.

랄프는 아그네샤에게 고통을 호소한다.

아그네샤는 랄프에게 일어난 그 변화를,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잘 치료받으라는 말과 함께 무정하게 퇴장해 버린다.

그녀,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연구발표가 끝났다고 이제 그와는 관계없다는 말인가?

정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그녀가 도와줄 수는 없었을까? 그녀 자신이 말했듯 그는 환자인데!

랄프는 낮선 그 고통을 이겨내려 노력하나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택한 선택은 그 자신에게 극단적인 벌을 주는 것...

아니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도피하는 것!




낸시와 아그네샤는 랄프의 장례식에서 만난다.

낸시는 사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진정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된 느낌이다.

아그네샤는 문득 낸시에게 데이빗과의 부적절했던 관계를 털어놓는다. 

그의 아내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인 그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아야 할지 낸시에게 묻는다.

그녀에게 할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누구에게라도 조언을 구하고 싶을 만큼 그녀는 괴롭다.

낸시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아니오, 그냥 그 고통을 안고 살아요"

낸시는 랄프를 위해 자신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랄프가 자살한 원인을 낸시가 제공했다고 믿는 그녀에게 감정이 좀 남아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낸시의 대답은 놀랍게도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친구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그 친구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추스리기도 전에 더 큰 배신감에 평생을 괴로워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왜 친구가 대신 받게 하는가.

옳지 않은 일이다.





랄프역의 박호산과 이석준. 두 사람의 랄프는 같으면서도 많이 달랐다.

호산 랄프는 좀 더 오싹한 느낌이라고 할까. 말투도 그렇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중에 언뜻언뜻 보이는 사이코패스적인 섬뜩한 눈빛. 내공이 엿보이는..^^


석준 랄프는 그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좀 슬프게도 느껴지는 랄프.

어눌한 말투 속에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의도하려는 랄프의 의지도 보였다.

(그가 긴 시간 동안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단순히 경찰의 무능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독특한 목소리의 두 여배우 우현주와 정수영은 외화 더빙을 좀 하지 않았을까 싶게 서구적인 목소리다.

낸시의 우현주 배우는 작품이 달라질 때마다 색이 많이 달라져서 놀라웠다.

낸시... 그런 방식으로 딸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라니... 딸의 가진 엄마로서,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런데 무대에서 매일 그렇게 딸을 보내야 하다니... 


아그네샤 역의 정수영. 그녀의 긴 연기를 본 것은 처음이다.

엠 버터플라이나 사회의 기둥들에서는 비중이 그닥 크지 않아서 크게 못 느꼈는데

아그네샤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는 느낌이다. 목소리, 외모, 말투까지.




랄프가 두뇌손상으로 인한 환자로서의 범죄를 저질렀는가, 혹은 의도적인 악행을 저질렀는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그가 환자라서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발상이고.

냉정하지만, 낸시의 슬픔과 절망은 그녀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그녀의 몫이다.

아그네샤의 혼란스러운 감정 역시 그녀가 처리해야 할 그녀의 문제다.

개인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은 여러 곳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문제이든, 고통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살아가기 위해선,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고통이 주는 교훈을 새기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겸손해지며, 

그 고통의 꼭대기에서 내려와서야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맞기 위해서는 그것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 뿐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뎌진 사람은 언젠가는 그 감각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무감각한 곳에 상처가 나도 느끼지 못하고 상처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그는 마음의 불구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나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그렇다.


상처에 대한

그 상처로 인한 고통에 대한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한 용서에 대한 이야기.

'용서'는 그래서 '구원'이 될 수 있다.

 

여운이 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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