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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 20160320

by lucill-oz 201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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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도 재연도, 행여하는 마음으로 꾹 참고 보지 않았었다. 혹여나 실망할까 싶어서.

오랫만에 올라온 삼연을, 이제 명실공히 믿고 보는 배우가 되어준 박영수의 윤동주를 기대하며

일찌감치 티켓팅을 하고 기다렸었다.


보고 나니, 왜 진작에 안 봤던가 싶었다. 특히 음악!

혼란한 시대의 순수한 청춘들이 짧은 삶을 통해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표현해 주었다는 느낌에 작곡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영수가 이 역을 한 이후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오로지 시를 통해서만, 그의 전기를 통해서, 지인의 회고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시인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있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칭찬을, 나의 애정배우 박영수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해 주고 싶다.

허구의 인물 이선화와의 관계를 너무 벗어나게 그리지 않았을지가 가장 염려한 부분이었는데

적정선을 지켜준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시는 나에게 무었인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내려간

시는 나에게,너에게 무엇인가!



내게 있어 시인 윤동주를 만난다는 것은 나의 십대 시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한 편의 시로 시작한 '윤동주 사랑'은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의 내 진로의 뚜렷한 이유였었다.    

단 한 권 뿐인 그의 시집을 통해 나는 그의 시와 그의 생을 깊이 사랑했으며

그에 대한 자료들을 찾으며 앞으로 그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리라 마음먹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뜻하지 않게 그동안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당시만 해도 생소한 이름이었던 '디자인'이라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엔 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갈등하며 책 한권도 제대로 맘편히 읽을 수 없었지만 

이 직업은 그런 갈등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때론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기까지 한 직업이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과 생활에 파묻혀 살다 보니 어느새

삼십년이 넘게 내 책꽂이에 곱게 꽃혀있는 그의 시집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였으며

나 역시 이젠 청춘을 다 보내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

내가 아껴 부르던 그 이름보다 훨씬 많은, 어쩌면 그 시절 젊은이들의 부모와 같은 세대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들여다 본 그 암흑기의 순수한 청년들을 보니

이젠 다른 마음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되돌아보게도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나는 행하고 있는가.

꽃같은 청춘들이 두려움을 견디며 하던 일들을 

지금의 나라면 나는 행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 그러한 시대가 아님을 맘속으로는 다행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내가 부끄러웠다.


암울한 시간의 한가운데에 놓인 청년으로서 문학을 논하고 시를 쓴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그에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누구나 싸움을 할 때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무기로 싸우는 것이라고.

모두가 총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그대는 가고 없어도 그대가 남긴 시들은 지금까지 살아서 많은 가슴을 울려주고 있으니

그대가 승리한 것이라고.




감동과 더불어, 내가 나를 만나고 온 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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