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을 핑계로 둘이 함께 공연을 보기로 했다.
오랫만에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짜장면도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정동극장에 도착했다.
삼국지 매니아인 남편은 그 길고 웅장한 적벽대전 이야기를 어떻게 다 하겠냐며
그중 일부만 떼어서 하지 않겠냐 짐작했지만 웬걸, 도원결의에서 적벽대전까지 풀스토리를 모두 풀어냈다.
정통 국악배우들의 명창과 연기, 뮤지컬 배우가 보여주는 관우의 묵직한 매력,
여성 배우가 연기한 제갈공명의 뜻밖에 묵직한 소리, 조조가 보여주는 코믹함과 가벼움 등
시종일관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화려한 의상과 군무 또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판소리 극이기 때문에 호흡에 따라서는 잘 들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대 좌, 우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자막을 띄워주었기에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눈이 바빴을 뿐!
심플하다 못해 조금 허전한 감까지 없지 않았던 무대가 꽉 차 보였다.
참, 무대 정면 2층 무대 아래에 자리잡은 고수와 연주인들의 포지션도 아주 절묘했다.
악기의 구성도 전통악기와, 드럼과 대북의 조화가 신선했고
고수의 북 다루는 소리와 함께 추임새 소리도 흥을 돋우었다.
전통의 맥을 잇는 다양한 분야의 발전이 반가웠다.
정통의 길을 지키는 축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잘 모르더라도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시도와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래야 진부함이나 선입견 없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공연들, 정말 세련되고 재미있게 잘 만드는 것 같아서 반갑고 좋다.
예전에는 인사동 거리나 관광지의 전통상품 파는 상점에 가면 상품의 내용이라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하고 예뻐 보일지 몰라도 내국인들에게는 진부한 장식용 상품들 뿐이었다.
종류도 다양하지도 않았다. 어딜가나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나 디자인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이 분야의 상품도 많이 달라졌다.
장식성을 넘어서 실용성까지 겸비한 상품이 넘쳐난다.
나도 하나 써 볼까, 하나 갖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고, 하나쯤 소장하게 되면 그 만족감도 꽤 커졌다.
공연은 무형의 상품이다. 가치가 큰 상품이다.
물건을 소장하는 것 이상의 기억을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런 상품을, 질높은 상품을 만들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흠, 나도 나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고 있을까?
'관람후기 > 뮤지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화전 - 20191018 (0) | 2019.10.24 |
---|---|
세미터리클럽 - 20191004 (0) | 2019.10.05 |
6시 퇴근 - 20190227 (0) | 2019.03.26 |
지하철1호선 - 20181028 (0) | 2018.10.30 |
록키 호러쑈 - 20170805 (0) | 2017.08.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