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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뮤지컬

예화전 - 20191018

by lucill-oz 2019.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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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만족한 낭독극이었다.

전체적으로 약70%정도는 완성된 느낌이었다.

특히 음악적인 만족도가 높았다.

앙상블 파트의 배분이나 화음도 좋았고 각 배우들의 가창도 만족스러웠다.

중, 대극장 스케일로도 손색없어 보인다.

다만, '건'의 존재의 필요성이 좀 모호한 느낌이다.

건이가 실존인물인지, 환상인건지,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왜 예화앞에 나타나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지 하는 부분.

건을 주요인물로 등장시키려면 그에 대한 설명이나 혹은 역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이런저런 제약이 싫어 집을 나온 임예화. 

남장을 한 채로 무작정 극장주변을 서성이던 예화는 극장주의 눈에 들어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모두들 남자라고 믿고 있던 그녀에게는 양성의 특별한 매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두의 사랑을 받고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선배단원들을 제치고 주역까지 따내자 그녀는 질투의 대상이 되고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선배는 그를 협박?하기에 이르고

그녀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국극. 

국극을 검색하면 꼭 '여성국극'이 나온다.

남자배우들 빼고, 여배우들이 남자역할까지 다 하는 극이다.

남자들이 여자역까지 다 하는 중국의 '경극'에 대비되는 장르다. 

 

임춘앵() 은1948년 서울에서 박녹주·김소희 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였고, 

첫 공연인 <옥중화()> 공연에서 이도령역을 맡았다.

그녀는 남자역을 맡은 여배우였던 것이다.

예화전은 이 임춘앵을 모델로 만들어진 극이다.

영화 패왕별희의 장국영이 매우 묘한 매력을 보여 주었듯이

그녀는 춤과 노래 뿐 아니라 검술 등 남배우 역에 필요한 부분들까지 잘 수행했으니

이 걸크러쉬 언니들이 얼마나 멋져 보였을까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연극 '오펀스'에서 여배우들로만 한 팀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초연을 재미있게 보았던지라 급 관심이 가서 기사를 꼼꼼히 보았다.

여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비중이 있거나 주연급의 배역이 주어지지 않고 

남자 캐릭터들의 앞길이나 방해하는 멍청한 여캐이거나

연기력이 좋아도 그저 밑자락 깔아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그나마도 자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연계 역시 남성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공연에 주로 돈쓰는 건 여자들인데 정작 만드는 과정에서는 여자들에게 기회가 별로라니.)

아직까지도,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자들의 이야기, 혹은 여성의 시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

또는 아주 일반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인데 여성측면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만나면

반갑다.

그런 작품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예화는 소수자이기도 하다. 여성 예술가.

백년쯤 전에 태어났는데 소리꾼으로서의 기질을 핏줄로 물려받았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뚫고 새로운 시도를 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 과정이 당연히 쉽지 않았으리라.

 

 

 

 

 

인터넷에서 임춘앵을 검색해 보았다.

 

대한민의 국악인이자 배우, 한국무용 안무가, 공연기획자. 본명은 임효금, 아명은 종례.
50년대에 활동한 천재 국악인들 중 하나로 여성국극의 선구자이자 당대의 대스타.

가야금과 피리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악기 연주와 창을 배웠으며, 

9세부터 15세까지는 명창 임방울 등이 스승으로 있던 광주권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밖에 서편제 명창 정정렬과, 임방울의 스승인 유성준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가요에 비유하자면 위키드에 나온 꼬마아이가 김연우이수이선희에게 6년동안 트레이닝을 받은 셈이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명창들에게 엘리트 조기교육을 받은 것.

18세 때 부민관에서 개인 무용 발표회를 열며 데뷔했고, 2년 후 조선창극단 단원이 되었다. 

이후 1948년에 여성 국악인들을 모아 여성국악동지회(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했다. 

여성국악동지회의 국악인들은 박록주, 김소희 등으로 40년대 말 ~ 50년대 초 최고의 여성 국악인들이 활동하던 

어벤저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를 바탕으로 여성국극을 개척하였는데, 여기에는 시대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50년대 당시는 가부장제가 지금보다 더 심했고, 

국악계 및 공연계는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여성 국악인 및 여배우들은 차별은 기본이고 천대를 감수해야 했던 사회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임춘앵은 여성국악동지회의 국악인들을 중심으로 남성 명창 없는 공연을 올렸는데, 

이것이 여성국극이다. 

춘향전의 이몽룡, 변사또, 방자가 나오는데 모두 남장여성들인 셈. 

남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나오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경극과 대비된다. 

국악 및 대중문화사에서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임춘앵이 개척한 여성국극은 현재의 시각에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시도였고, 

시대가 어느정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저항이었던 탓에 오히려 모든 성별과 계층에서 인기를 끌었다. 

임춘앵이 개척한 여성국극이 50년대 공연계를 휩쓸면서 

김진진, 김혜리, 이옥천, 박미숙 등의 국극 스타들도 여럿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사생팬들까지 몰려들어 가출은 기본이고, 패물까지 바치는 팬들도 있었다고.

문혁 이전까지 고전작품들을 소재로 한 경극처럼 

여성국극 또한 춘향전햇님달님 등의 고전들을 무대화해 공연을 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외국 희곡도 공연하기는 했지만 이는 문화적으로 현지화한 번안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임춘앵은 50년대 내내 인기를 끌다가 

60년대부터 영화산업 및 TV의 발달로 여성국극이 사양세에 접어들면서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조카 김진진이 여성국극을 이었고 본인은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975년 서울 장위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이상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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