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람후기/연극

졸업 - 20170825

by lucill-oz 2017. 8. 26.
728x90





 


우연히, 오랫만에 트위터에 들어갔다가 극단 청우의 공연이 있다는 글을 보고 덧글을 달았는데

이벤트에 응모되어 초대공연으로 보게 되었다.  

날짜도 못 지키고 며칠이나 늦게 갔는데 기꺼이,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선물까지 챙겨 주심에 감사!!

꼼꼼하고 성의있게 제작된 프로그램북도 좋았다.

아주 작은, 화려하지 않은 무대였지만 몰입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훌륭한 극이었다.

솔양을 데리고 올 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이 기가 막힐까?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오염된 바다생물들이야 이미 일어난 문제니 예외로 치더라도

연극을 준비하면서, 공연을 하는 이 시기에 살충제 계란사태가 터질 걸 알았을까?

계란 뿐 아니라, 식용 축산물 및 그 가공품들에 대한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했을까?

여성들의 배란이상까지 유발시킨다는 생리대 문제까지, 이렇게 동시다발로 불거질 것을 예측하고 만들었을까?

(세월호 사고를 연상시킨 작품 "사회의 기둥들"이 마침 그 시기에 공연되었던 일이 생각났다.)

이 연극의 내용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멀지 않아 곧 닥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즈음의 뉴스들이 마치 이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이드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 멀지 않은, 어쩌면 이 속도라면 내가 죽기 전에 맞이하게 될 수도 있는 미래.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고, 자원을 함부로 쓰다가 맞게 된,자연계 최악의 보복.

그런 세상을 살아가게 된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이야기이자 

그런 세상을 물려주게 된 어른들의 반성이다.


아이들은 고기(육류)와 생선을 먹어보지 못했으며

심지어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바닷속 풍경조차 기록물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을 살게 된다.

그 뿐인가, 아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좌우할 사건은, 인간의 가임기간이 매우 짧아진다는 것이고

그나마도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흔히 영화에서 보아왔던 미래의 인간들, 혹은 외계인들은 대부분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외모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배경이 이런 환경파괴 때문이었던가?)

때문에 아이들은 고교시절부터 여학생들에게 매달 배란검사를 통해 그 등급을 매기고 임신을 하도록 하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엄청난 복지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학생들은 정자제공을 하는 역할을 한다. 결혼을 통해서 아빠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 여기서 다시 한 번!!!!!

임신은 여자의 특권이자 동시에 족쇄이기도 한 것인데!

국가의 유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여성을 그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그 중대한 일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대해 뭘 잘 모를 나이에, 뭔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 보고 주체적인 선택을 해야 할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선택을 하도록 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국가폭력!

(작년에 여가부에서였나, 전국 가임지도라는 걸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폭탄맞은 적이 있었지. 그 일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 가임지도로 뭘 어쩌라고? 뭘 어쩌겠다고?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었지.ㅉㅉㅉ)

국가재건위원회의 교사는 마치 반성하는 어른인 양 하지만 결국은 아주 교묘한 이론으로 혜진의 결심을 끌어낸다.

아주 능숙한 조련사처럼 말이다. 


국가의 혜택을 받고 출산을 한 젊은 엄마가 1인 시위에 나선다.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며, 고민하는 과정없이 내린 선택을 후회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늦은 후회는 모두 개인의 몫이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고민하여 원하는 길을 찾고 그 길은 선택하라 말한다.

아주 교과서적이어서 조금 진부하게 느껴질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동의한다.

극 중 혜진은 홀엄마의 착한 딸로 살아가기 위해서 참고 감추어왔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그냥 살아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당황도 한다.

그러나 혜진은 다행히도 적당한 시기에 그걸 깨달은 것이다.

평생을 그럴 줄 알고,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온 수 많은 인생들이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문득, 자신 안에서 끓어오르는 자아를 주체하지 못해 

당황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혜진을 연기한 배우가 정말 예뻤다. 그녀가 곧 혜진인 듯 했다. 자기 얘기를 하는 듯 했다. 


맨 먼저 입장해, 시야방해 없는 맨 앞에 앉으려다가 바로 뒷줄에 단체관객들이 자리 잡길래 

맨 뒤로 옮겨 앉았는데 바로 옆에 유성주 배우가 앉는다.

마치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 듯 서슴없이 다가가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었는데 그러고 나니 좀 쑥쓰러워졌다.  

배우로서의 모습이 아닌 민낯을 보니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냥 그렇게 주어진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어느날 문득,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흔들렸었다.

물론 지금은 다행히 그 일을 친구삼아 아끼고 즐길 줄도 알게 되었지만...


스케일은 작지만 단단한 공연이었다.

728x90

'관람후기 >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이 오지 않는 밤 - 20171215  (0) 2017.12.19
오펀스 - 20170920  (0) 2017.09.20
불편한 입장들 - 20170818   (0) 2017.08.20
비너스 인 퍼 - 20170812  (0) 2017.08.14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 - 20170726  (0) 2017.07.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