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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차이메리카 (두산인문극장 2015: 예외) - 20150429

by lucill-oz 201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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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타 space 111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주 당황스러웠다.

낮공연, 두시간의 여유를 두고 나왔지만 아주 빠듯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표를 받아들고 좌석을 확인해보니 '자유석'! 이런...

그런데 막상 입장해보니 공간의 반이 넘는 무대, 그것도 무대 중앙에 기둥이 있는!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좌석 수.


비교적 저렴한 티켓가격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출연진, 두시간 반의 공연 시간.

매우 답답하고 가슴 아프고 무거운, 시대적인 주제.

중국과 미국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는, 우리의 지난 이야기, 아니 지금 현재도 진행중인 여기 우리시대 이야기.




젊은 미국인 사진기자 조 스코필드는 1989년 중국 특파원으로 근무 중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현장을 목격한다.

마침 묵고있던 호텔에서 바로 보이던 천안문 광장에 탱크를 몰고 시민군을 진압하러 돌진하는 정부군.

그런데 그 때, 손에 검은 비닐봉투를 든 웬 사내가 그 탱크를 막아선다.

그러자 탱크는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발이 묶인다.

이 인상적인 장면은 조를 비롯한 외신기자들의 카메라를 통해 담겨지며 전 세계로 알려진다.

그 사내는 일명 '탱크맨'으로 불리며 이 첨예한 대립을 멈춘 상징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된다.

조는 잠시 본국과의 통화 중에 시야에서 사라진 그 탱크맨의 행방을 궁금해 한다.

맨 몸으로 탱크를 막아 서다니, 대체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조는 선배 멜 기자와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서 고소 공포증이 있는, 카테고리 컨설턴트(?) 테사 켄트릭을 만난다.

그녀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직업적 습관대로 상대방을 판단하려고 한다.

인간을 연령별, 유형별로 분류하고 소비 패턴을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마켓팅의 자료로 활용하는 일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적인 직업이랄 수 있겠다. 

(이런 직업이 있는 줄은 나도 처음 알았다)


북경에 도착한 조는 중국인 친구 장 린을 만난다.

장 린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영어교습을 하여 수입도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그는 죽은 아내의 환영에서 오랜 시간동안 헤어나오지 못하여 알콜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그의 형 장 웨이는 그런 동생에게 늘 마음을 쓰고 돌본다. 형에게 그는 아직 어린아이 상태다.

장 웨이는 힘든 공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동생의 미국인 친구 조를 만나자 그에게 아들을 살펴주길 부탁한다.


조는 장 린의 집에서 1989년의 그 사건을 이야기하던 중 장 린의 입을 통해 탱크맨의 이름을 알아낸다. 왕 펭페이!
게다가 그는 현재 뉴욕에 있다고 한다.

탱크맨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조는 그를 주제로 특집 기사를 만들 것을 자신의 신문사에 제안한다.
그러나 편집장은 대선 후보들의 토론회에나 집중할 것을 원한다. 롬니와 오바마, 힐러리의.

적어도 탱크맨을 주제로 다루더라도 그 저변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에 대한 찬양을,

그리고 그 영웅이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을 택했다는 사실이 빛나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편집장과의 적정선을 유지하며 방법을 찾으려는 멜 기자와 달리, 독신에 거칠 것이 없는 조는 다혈질이다. 

편집장의 비서는 왕 펭페이가 이미 숙청당했다는 기사를 찾았다고 알려주고

조는 그 기사를 썼다는 기자를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나 그는 그 기사를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탱크맨의 정확한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자 계속해서 그를 찾아보고자 한다.


뉴욕에서 다시 만난 조와 테사 켄드릭.

조는 데이트 신청으로 알고 나갔지만 테사는 비지니스를 제안한다.

테사는 신용카드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신용카드에 넣을 사진으로 조가 찍은 작품을 넣길 원한다고.

서로 빗나간 핀트에 마음이 상한 채 헤어진 두 사람.

그러나 얼마 후 조의 아파트를 찾은 테사. 두 사람은 비지니스를 핑계로 연애를 시작했다.

테사는 조의 집에서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며 대선 후보자들에 대해 지지와 반목의 설전을 벌인다. 


편집장이 조에게 전화를 걸어 최신 고급 정보를 흘려준다.

어떤 여인이 뉴욕에서 중국으로 국제 전화를 걸어 베이징의 한 일간지에 

'6.4에 누군가를 잃은 어머니들을 위하여' 그리고 '왕 펭페이, 광장의 이름없는 영웅에게'라는 광고를 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광고를 실어 준 편집장은 물론이고 전화를 받았던 여직원 역시 영문도 모른 채 해고되었다며

미국으로 밀입국한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준 것이다. 

멜과 조는 바에서 스트립 쑈걸로 일하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 전화로 광고를 의뢰한 여인의 이름을 알아낸다. 펭 메이후이.  

조와 멜은 현직 경찰과의 인연을 이용하여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펭 메이후이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녀를 찾아가나

그녀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대신 광고를 낸 것이라 한다. 그의 이름은 지미 왕.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지미 왕의 꽃집을 찾아간 두 사람. 

그러나 꽃집의 남자는 자신은 지미 왕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장 린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그는 언제나 TV와 술이다.

가끔 방문하는 형 말고 그가 대화하는 유일한 사람은 옆집에 사는 중년 여인.

그녀는 폐렴으로 늘 기침을 달고 산다. 그리고 장 린은 그 소리에 자신이 더 괴로워 한다. 

한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그녀는 사실 고도의 경제성장 중인 중국의 극심한 스모그의 피해자일 뿐이다.

젊은 시절엔 당을 위한 선전 포스터의 모델이기도 했다던 그 아주머니는 

미국에 거주 중인 딸을 기다리지만 딸에게선 소식이 없다.


장 린은 소꿉친구인 리울리와 어린 시절에 결혼했다. 

그리고 그날 그 광장에서 희생된 그녀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집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냉장고. 침대를 사러 갔다가 마음이 변해 즉흥적으로 구입한 냉장고.

그 냉장고는 곧 그녀다. 냉장고를 열면 가슴에 피를 흘리며 그녀가 앉아 있다.

어린 신부는 임신 중이었고, 그는 그날, 그곳에서 일찍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날 그 거리에서 만난 외신기자에게 미래의 부푼 꿈을 얘기하던 그녀를.


젊은 시절엔 베트남전 반전 시위를 했었다는 편집장.

그동안 은근히 두 사람의 취재를 도왔던 그는 탱크맨에 대한 지면을 할애해 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꾼다.

신문사의 전문 경영인이 중국으로부터의 자금이입을 위하여 중국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기사는 접으라고 했단다.

현실의 벽 앞에 멜과 조는 갈등한다.

조는 마리아 상원의원을 협박하여 힐러리 캠프에 기부금을 낸 지미 왕에 대한 자료를 빼 낸다.

다음 날, 그녀의 보좌관이 조를 찾아와 일침을 놓고 간다.

(그가 마리아 의원을 설명하는 대사가 아주 인상적이다. 

"마리아 상원의원은 포드 자동차 뒷좌석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딸로....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조는 자신이 탱크맨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 

그리고 영웅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 린의 옆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기오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장 린은

당에서 발표한 스모그 지수와 대사관 웹싸이트에서 본 수치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젊은 시절, 당의 선전 도구였던 그녀는 중국이 자랑하는 고도성장 아래, 그 쓰레기에 치여 죽어갔다.

아무도 그녀를 위해서 염려도 걱정도 해 주지 않았고 더욱이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가난해도 숨은 쉬게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울부짖는 장 린.

그는 조의 도움을 받아 미국 신문의 지면에 이 내용을 싣고자 한다.

그의 형은 그의 정신상태를 염려한다.

공공연하게 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던 장 린은 결국 공안에게 연행되어 간다.

조와 주고받은 메일을 비롯해 그간의 장 린을 주목해 왔던 당은 그의 사상을 의심하고 고문한다.

장 린은 고문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모두 황페한 상태다.

그의 기억이 다시 그날 그 광장으로 살아난다.


테사는 신용카드 회사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쳤다.

미국 기업이 중국진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소비자의 성향을 유형별로 분류한 자료들이다.

그녀의 PT내용은 아주 중요하다. 

중국시장에 진출하려고 시도했던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히 실패한 기업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성공한 기업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성공한 기업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철저히 중국화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고

중국이 무조건 미국처럼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기업들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초반 자신감 넘치고 순조로웠던 PT는 PPT 파일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테사는 임기응변의 PT를 포기하고 자신이 조사과정에서 느낀 점들과 문제점들을 솔직히 말해 버린다.

시장조사를 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중국, 

전 세계의 하청공장이 된 댓가로 극심하게 오염된 공기로 인해 아기들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는 나라,

비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괴물같은 나라.

지금 이 나라에 투자한다는 것에 대해 어느 누가 확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인들의 소비패턴인 선수입 후지출의 패턴을 신용카드는 선소비 후지불의 패턴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 뻔한데

13억 인구에게 미국과 같이 신용카드 대금연체나 모기지론의 압박이 불어닥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멀리 중국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내 얘기다.)


마리아의 보좌관에게 지미 왕의 주소를 받아 든 조는 곧장 그를 찾아간다.

그곳은 다름아닌 펭 메이후이가 알려준 그 꽃집.

그는 바로 탱크맨 아니, 탱크 안에 있었던 그 병사 왕 펭페이의 형이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든 사내가 탱크를 막아 세웠을 때,

탱크를 몰아 그 비닐봉지를 든 남자를 깔아뭉갰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다시 탱크안으로 들어가버린 병사, 이름없는 영웅 왕 펭페이!

그러나 그는 양심을 지킨 대가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흥분한 지미 왕과의 몸싸움 끝에 경찰에 연행된 조는 편집장의 보석금으로 겨우 풀려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마리아 상원의원은 그의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그는 난처해진다.

그런 그를 찾아온 테사. 

그녀는 오늘 PT를 끝낸 후 조와 장 린의 조카 베니와 함께 저녁식사를 약속했었다.

PT를 망친 댓가로 해고를 당하고, 오지 않는 조를 기다리며, 

처음 보는 청년 베니와, 좋아하지도 않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몇 시간이나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그녀도 그도 어쩌면 본질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중국의, 아니 중국 국민들이 겪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었고

조 역시 탱크맨에 집착해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지미 왕은 불법 이민자다. 그를 괴롭혀 경찰을 끌어들였으니 그가 추방될 것을 자명하지 않겠는가...

그녀가 차갑게 돌아선 후 장 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그 광장의 영웅은 탱크를 막아선 사내가 아니라 스스로 탱크를 멈춘 병사, 그의 친구 왕 펭페이였다고.

당이 그 사진을 이용해 중국 공산당의 인간적인 모습을 선전하려 했으나 사실 그것은,

탱크를 멈춘 것은 당의 명령이 아니라 왕 펭페이 개인의 판단이었다고.

그러나 조는 장 린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한다.

조는 과연 탱크맨에게 어떤 환상을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일까.


장 린은 거리에 나가 확성기를 잡는다.

당이 국민들에게, 아이들에게, 젊은이들에게 편안히 숨쉴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에서 우연히 재회한 조와 테사.

뜻밖에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조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아이라고 말하지 않는 테사에게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조.


조의 사진 전시장을 찾은 장 린의 조카 베니와, 베니의 아버지 장 웨이.

장 웨이는 동생 장 린이 전하는 물건을 전해주며 그의 무심함을 비난한다.

베니는 탱크맨의 사진 앞에서 어린 시절의 일화를 지껄인다.

개똥이, 이 자식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뻔 했다고 아버지가 말하곤 했다고.

개똥이는 바로 장 린의 아명이었던 것.

조는 장 린에게 전화한다. 장 린은 말한다. 

너는 그 사진의 껍데기만 보고 있다. 내가 거기 서 있기는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니다.

나도 진정 거기에 서 있는 그 사내이고 싶었노라고...


통화를 마친 조는 장 린이 녹음해 준 내용을 듣는다.

그날 그 광장에서 아내를 잃은 어린 남편 장 린은 거의 실성한 상태다.

아내의 유품과, 누군가의 셔츠를 입혀준 간호사가 들려준 피묻은 자신의 셔츠가 담긴 검은 비닐 봉지.

그렇게 두 개의 검은 비닐봉투를 양 손에 든 장 린은 넋이 나간 채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탱크 앞에서 꼼짝 않고 서 있다.


그렇게 흐느끼며 발이 붙어버린 듯이 서 있는 장 린과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바라보며 마주 서 있는 조. 

그리고 긴 여운...  



커튼콜은 생각치도 못한 채 긴 여운에 빠져 훌쩍이고 있을 때 갑자기 배우들이 무대위로 올라왔다. 

다시 한 번 당황...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는 다르지만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철저히 짖밟히고 있는 개인의 삶. 국가 권력의 횡포...

단물을 섭취하는 계층과 그 그림자에 치이는 계층이 철저히 다른...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이 두 나라의 이름을 합친 이름이 바로 '차이나-아메리카', 즉, '차이메리카'다.

'개인'에게 있어서 이 두 그룹은 사실 다른 얼굴의 같은 존재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대신의 잘못된 제도의 피해까지도 철저히 개인에게 책임지우는 자유주의.

개인의 자유를 드러내 놓고 제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큼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지도 않는 사회주의.

어떠한 의미의 권력이든, 권력의 지배자들을 제외한 모든 개인들은 고통받는다. 


중국에 대한 묘사, 굳이 대사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그들의 실상을 바로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니 발원지는 어떻겠는가.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는 타이틀로 포장된 우리나라의 7,80년대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국가의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거친 삶을 살아온 세대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세대들이다.

장 린처럼, 옳은 소리를 하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시대를 지나왔다.

(다 지난 줄 알았는데, 다시 역행하는 분위기라서 씁쓸하긴 하지만...)

중국의 천안문 사태, 한국의 광주사태...

실패한 혁명, 제대로 규명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던 '민주화 운동'.

나는 자꾸 이 이야기에 중국이 아닌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사진기자 조가 생각한 영웅은 어떤 존재인가.

밀려오는 탱크를 죽음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막아낸 뭐, 

슈퍼맨같은 이미지가 자신도 모르게 덧씌워진 것은 아닐까.

본인의 느낌대로, 원하는 바대로의 모습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울러 그 사진을 찍은 자신의 역할 또한 다시 한 번 부각시킬 기회로 삼은 건 아닐까.

언론의, 언론직 종자자들의 속성대로 말이다.

그는 자신이 탱크맨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다치게 될 사람들을 고려하지 못했고

이것은 나름 그가 좀 안다고 자부했었던 중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바가 컸다.

테사 켄드릭이 고작 6개월간의 조사만으로 중국시장을 전망하려고 한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얘기다.


테사 켄드릭.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던 매력적인 이 여자는

예정된 PT를 망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그러나 외면했었던 진실들에 대해서 입을 연다.

작가는 테사 켄드릭의 대사를 통해서 그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한 듯 하다.

서로의 다른 체제만큼이나 다른 문화와 국민성, 소비성향, 사고방식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덤벼들었다가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될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그대로 중국사회에서 발생했을 경우에 파생될 세계적인 혼란.

그리고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중국사회를 바라보는 걱정어린 시선.

13억 인구의 중국을 그저 단순히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으로만 취급하는, 

그 와중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오염된 대기, 

그리고 그 피해자들에 대해 눈감는 기업들의 이기주의... 뭐 그런 이야기.

세계는 이미 이념이 아닌, 자본이 지배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테사 켄드릭이라는 여자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니, 테사를 연기한 배우가 맘에 든건가?^^

그녀는 이 멋지고 책임감도 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커리어 우먼을 

아주 사랑스럽고 매력있게 표현했다. 목소리, 말투와 표정, 심지어 의상까지!


그 외에도

사회주의 국가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원하지도 않았던 '탱크맨'이 되어버린 자신의 과거에 발이 묶여 괴로워 하는 장 린.

얄미우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의 프랭크 편집장.

나이만큼의 지혜를 갖춘, 그리고 아직 마음속에 꿈을 간직한 멜 스탠윅 기자 등

등장인물들 모두가 뭐랄까, 설득력이 있어 보여서 좋았다.



중국에 대한 묘사들을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1995년의 베트남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베트남 호치민 시에 공사감리 건으로 두 달여 파견근무를 했었다.

그곳의 첫인상이 바로 매연이었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시의 도로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인력거(씨클로)와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가 함께 있었으나 의외로 교통사고의 발생률은 적었다. 

그러나 첫 출근길, 도로의 공기는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오토바이에서 뿜어내는 푸른 매연이었다. 

그리고 삼각형의 예쁜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탄 여학생들과 아가씨들.

두 번째 풍경은 시대를 초월한 문화의 공존이었다.

한국의 50년대부터 그 당시, 그러니까 95년도의 풍경이 한 도시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하게 보였던 사람들은 의외로 자존심이 매우 강했고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물리친 나라로서의 자부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듯 했다.

당시 나를 파견했었던 건설사는 2년 전부터 직원을 상주시키며 사전 시장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곳곳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민족성'이라는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


성장에는 통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통증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그 통증을 무시하고 만다면

반드시 그 부작용은 어느 부분에서든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건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다.

계단을 한꺼번에 서너계단씩 오르다가는 어느 순간에 근육을 다치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글을 정리하면서 몇 시간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아니 많은 부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만들었다. 

체제와 국가권력, 개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의.

생각할 '꺼리'를 던져 준 또 하나의 좋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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