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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프라이드-20140910

by lucill-oz 201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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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생각보다 긴 공연시간에 놀랐다. 
인터미션이 있는 세시간짜리 연극이라니!
두번째는 동성애의 문제를 놀랍도록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말이 내 생각과 일치하는 지점에 있어서 반가웠다.


1958년의 올리버는 동화작가이다.
전직 배우이자 현재 삽화가인 실비아는 올리버와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 필립은 부동산 중개 일을 하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날 아내가 올리버를 초대한다.
아마도 그녀는  함께 작업하는 올리버와 접촉할 일이 많을 터이니
남편이 공연한 의심을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가 좋아하는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시키고
그들이 좋은 사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을 것 같다.
첫 장면, 올리버가 그들의 집을 방문하던 날, 벨소리와 함께 마주선 두 남자의 실루엣.
의도적인 복선이었을까? 인상적이었다.
아내의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동화작가라는 그의 예술적 직업, 그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목소리를 들었다는 그에게 부러움과 호기심도 느낀다.

그러나 그날 밤, 실비아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필립이 식사 자리에서 왜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는지,
올리버의 어떤 면이 그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묻는다.
조금은 과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추궁... 그녀는 뭔가를 느낀 것이다.

사개월 후, 실비아가 집을 비운 어느 날, 비에 젖은 올리버가 필립을 찾아온다.
그들은 그동안 남몰래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 왔었으나 올리버의 의도치 않은 외도?로 인해 결별한 상태.
올리버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고 필립에게 사랑을 고백하나

필립은 올리버를 향해 느끼는 자신의 감정의 정체에 대해 혼란스럽다.
그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올리버와의 일은 그저 충동적 일탈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올리버의 모습을 떠올리면 참을 수가 없는 필립.

그런 필립에게 올리버는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자신을 향해서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올리버의 시선을 피하기는 너무 어려운 필립.

오히려 올리버에게 못되게 대하는데...


필립은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 상담을 청한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지는 처방은...
동성과의 성행위를 연상하는 것조차 역겨운 것으로 인식시키는 말도 안되는 '구토요법'이다. 이런...
의사를 향해 필립은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묻는다.
그럼 감정은요? 그리움 같은.. 그런 감정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편 실비아는 그들의 침실에 떨어져 있던 올리버의 펜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올리버를 만나 그의 펜을 돌려주며 마음을 정리하는 실비아.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도 자신도 행복해지길 원하는 실비아, 그녀가 진정 최고다!!




2014년으로 보여주는  현재  싯점의 또다른 올리버와 실비아와 필립.

먹고 살기위해! 이것저것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 올리버.
그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 필립!
그런 그들 사이의 유일한 이성친구인 실비아.


올리버와 필립은 공식적인 동성커플이었으나 올리버의 섹스중독증을 견디지 못한 필립은 올리버를 떠난다.
필립의 부재를 힘겨워하는 올리버. 

올리버가, 그야말로 얼굴도 안 쳐다보고 오직 배설에만 집중하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필립은 올리버가 일체감을 느꼈던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실비아, 그녀 자신은 남자를 사랑하는 이성애자지만 필립과 올리버 두 사람에게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애쓴다.
오디션을 통해서 남장여자의 주인공역을 당당히 따낸 배우이기도 한 그녀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편견없이 대하는 화통한 여자다.

올리버의 병적 증세를 나무라며 필립을 위해 진심으로 변할 것을 요구하는 실비아.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그들만큼이나 좋아하는 그녀는

이 기회를 통해 두 사람을 다시 화해시키려고 애쓴다.
필립, 올리버가 올 것을 알면서도 실비아를 핑계로 퍼레이드에 나타나고..
백발이 성성한 커플을 바라보며 그들에겐 '역사'가 있음을 느끼며

올리버는 필립에게 조심스럽게 진심을 전하며 변화를 약속한다.

그런 올리버를 떠날 수 없는 필립.

화해 후 다정한 모습의 두 사람 뒤로 1958년의 실비아가 필립을 떠나며 말한다.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따뜻한 엔딩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야기는 1958년과 현재를 번갈아 오가며 과거의 그들과 현재의 그들이 서로 같은 선상에 있는 모습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그가 그런 모습이었다면 현재의 그는 그 모습 그대로 현재를 살 뿐이다. 그들다운 모습으로.

그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은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닌 상태다.


올리버의 캐릭터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섬세함과 예술적 기질, 

섹스중독이라는 극단의 경우를 통해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게 갖는 

정적 선입견의 극치에 해당하는 예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 병적 증세와 달리 오직 한 사람에게만은 구별되는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오종혁 올리버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필립은 이성적이다. 그 이성이 혼란에 빠진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만큼.

올리버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그의 난잡함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과거에 비해 현재의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아니, 그 '작업'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사진에 대해 얘기하는 필립을 보며 올리버가 반했다니까^^

과거의 필립이 사회적 시선보다 스스로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면

현재의 필립은 사랑 그 자체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이다.

애증의  올리버를 결국 떠나지 못하는 모습.

진중한 모습의 정상윤 필립.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주인공은 과거나 현재나 실비아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에게서보다 올리버에게서 더 행복해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그녀는 남편을 비난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대신에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필립의 "의도"가 아닌 "현상"일 뿐이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혹은 남자들이)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물론 그녀 스스로의 행복 또한!

현재의 그녀 또한 멋지다. 동성애자인 두 친구의 고민과 사랑과 문제점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이탈리아 남자 '마리오'를 사랑하는 '현명한' 여자다.  


작가는, 여자나 남자를 떠나서 "실비아"라는 인간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녀의 대사를 통해서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올리버에게는, 성소수자들이 너처럼 그렇게 살라고 그동안 투쟁해 온 것이 아니라며 일침을 놓고

필립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것을 조언한다. 


김지현 실비아의 강한 비음은 유럽영화의 여주인공의 더빙을 듣는 듯 자연스러웠으며

거침없는 욕설과 직설화법 또한 후련했다. 대리만족?^^

그러나 풍월주에 이어 또다시 멀어지는 두 사람...^^



상심한 올리버를 달래주기 위해 초대된 남자, 김종구.

"나, 이 직업 꽤 괜찮다"라는 말, 묘한 서글픔을 자아낸다...


올리버에게 '이성애자 남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동성의 사랑' 얘기를 써달라고 했던가?

잡지사의 김종구는 올리버에게 외삼촌 얘기를 해 준다.

그토록 멋있고 다정했던 삼촌이 에이즈로 죽어갈 때에야 비로소 

그에게 25년간 함께 살았던, 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그들에게는 '역사'가 있었노라고...


필립을 치료하는 의사 김종구.

그의 태도는 1958년의 영국사회가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퇴마사가 마귀를 퇴치하려는 듯이, 정작 상담를 받고자 찾아온 당사자의 인권따위는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듯한 그의 태도와 극단의 치료법.

존중받지 못하는 필립의 소중한 감정... 



이런 경우가  비교의 대상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정 반대의 경우라고 해야 하나...

어떤 이성을 만나서 그와 대화가 통한다고 느꼈을 때, 그의 어떤 면에 매료되었을 때,

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느꼈을 때, 그가 나의 의식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나를 이성으로 느껴주지 않기를 바랬었다.

그가 나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쪽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유, 질투,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불만 등등...

그럴 때면 내가 그와 같은 성이거나 그가 나와 같은 성이길 바랄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 자체에, 그리고 오로지 '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동성애에 관한 세상의 모든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각을 지녔다고는 감히 말 할 수 없다.

어쩌면 이해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해일 수 있고, 혹은 오만일 수 있다고,

어쩌면 호기심에 가까운 시선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다고 자가진단한다.

그러나 동성애는 성적취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인간애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성에 대해서도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간의 사랑이 꼭 성행위로만 인식되어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다가가서 닿는 부분,

그리고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랫만에,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내가 2013 쓰릴미에서 아주 좋게 보았던 두 사람, 정상윤/ 오종혁 페어는 만족스러웠다.

쓰릴미와는 좀 반대 상황인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이명행, 박은석 커플로 한 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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