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형식의 연극이라니, 놀라웠다.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예술에 대한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임에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그 몰입을 힘겹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구조여서
뭐랄까... 몰래 훔쳐보는 재미?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의미가 있고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
축음기에선 음악이 흐르고, 벽에는 그가 최근 작업 중인 벽화 시리즈 중의 한 점이 걸려있다.
그의 조수로 채용되어 첫 출근을 한 무명의 젊은 화가 켄.
로스코는 켄을 보자마자 대뜸 묻는다.
"뭐가 보여?"
당황하는 켄. 그러나 로스코는 어떻게 그림을 느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요구한다.
"그림이 너에게 고동치게 해. 그림이 너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채울 수 있게 해.
그림에게 다다가 관계를 맺으란 말이야!" 등등.
다시 묻는다. "뭐가 보이지?"
"이 그림들은 감성적인 관람객에 의해서만 살아 숨쉰다고!"
로스코는 새로운 조수가 자신의 그림을 최고의 찬사로 표현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가 가진 최고의 감성과 성의와 존경과 경이로움을 담아서 말이다.
켄은 "레드요"라고 대답한다.
그렇지. 누가 봐도 형태를 이해할 수 없는 붉은 색만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로스코는 그 '레드'가 맘에 든다고 말하는 켄를 향해
모든 것을 다 '좋다'고 말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는 인정받을 만 한, 그러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이 인정받아야 옳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포함한 세계적 거장들만이.
그는 마치 여느 직장인들처럼 아홉시부터 다섯시까지 정해진 시간동안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켄에게는 다만 잔심부름과 캔버스를 만든다거나 물감을 섞는 정도의 단순한 일만을 시킨다.
기껏해야 밑칠을 돕는 정도. 아, 그의 그 끝없는 얘기를 들어주고 고약한 성질을 받아주는 일을 포함해서.
그는 '나는 다만 너의 고용주'일 뿐이라고 못박고 선을 넘어오지 말 것을 요구한다.
제일 좋아하는 화가를 묻는 그에게 켄은 주저없이 "잭슨 폴락"이라고 답한다.
아차, 실수! 젝슨폴락은 그의 라이벌인데... 맹랑한 녀석이다.
젝슨 폴락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묻는 켄에게 그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었는지를 묻는다.
니체, 프로이드, 융, 쇼펜하우어, 세익스피어...등등을 읽어봤느냐고.
교양을 쌓기 전엔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로스코.
젊은 조수 앞에서 철학자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대는 그는 마치 자신의 교양의 깊이를 과시하려는 듯이 보인다.
'결코'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교양과 함께 한 작품에 깊이감이 생긴다는 점에는 동감한다.
연작 작업 중인 벽화의 느낌이 어떤지 묻는 로스코.
비극적이라고 답하는 켄에게 "식당에 걸 거야"라고 말한다.
로스코는 당시 건축가 '필립 존스와 미스 반 데 로헤'가 설계한 시그램 빌딩에 위치한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면을 장식할 벽화를 제작해 줄 것을 의뢰받아 작업중이었다.
필립 존스 역시 그의 명성에 걸맞는, '마크 로스코' 정도는 되어야 하는 예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겠지...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건넨 프로포즈와 삼만 오천달러라는 거액의 작품비는
그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주는 일이었을 것이고... 로스코는 그 일에 매우 고무되어 있다.
오직 자신의 작품만을 위해서 비워진 공간, 그곳은 곧 예배당과 같은 성전이 될 것이다...
그곳은 (갤러리가 아닌) 식당인데 누가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밥을 먹겠느냐는 켄에게
그는 신념에 찬 말투로 '그곳은 사원이 될 것'이라 말한다.
단골 중국집이 없어진다고 아쉬워하며 그래도 모퉁이에 다른 중국집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하는 켄에게
'모든 것들은 생성, 성숙, 소멸의 영원한 순환속에 있다.'고 말한다.
모퉁이의 중국집은 사라진 단골집을 대신할 테니까.
중국집과 우주론? 좀 거창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는 입체파(큐비즘)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조를 확립한 자신과 동료 세대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수명을 다 한 입체파 작가들을 동정한다.
"비극적인 일이야, 살아있는데 더는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우린 큐비즘을 끝장냈지, 우린 큐비즘을 짓밟아 숨통을 끊어버렸어"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한다구!"
그는 자연의 법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지금까지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해 왔다.
존경하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까지는... 이제 남은 건 아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만 남았을 뿐...
로스코는 자신의 컬러작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색과 색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느끼며 감상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관람객이 자신의 의도대로 느껴주길 바라며 그러려면 관람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라고.
그런 로스코에게 켄은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이 그림들에게는 관람객이 꼭 필요한 거네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모나리자는 한밤중에도 미소짓고 있지만 이 그림은 관람객이 없으면 과연 숨을 쉴까요?"
"이건 다만 마술같이 조명을 이용한 환상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형광등 조명을 켜서 조명을 바꾸어버리자 확 바뀌는 그림의 색과 느낌.
그림은 레드가 아닌 화이트가 되어버린다.
로스코는 그래서 자신이 전시장의 조건에 까다롭게 구는 것이라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그림을... 의도적으로 계산적으로 만들어낸다고 할까...
화이트의 느낌을 묻는 로스코에게 켄은 뜻밖에 '뼈, 해골, 시체 안치소, 잔인함, 빈혈, 수술실, 두려움' 등이 떠오른다고 답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에 창밖으로 보인 하얀 눈 때문이라고.
기억은 그렇게 경험과 동반하는 것.
로스코는 로마에서 미켈란젤로 카라바 조의 작품을 본 후 영감을 받는다.
인공의 강한 조명을 그림안에 설정한 그의 그림들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카라바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로스코는 갑자기 그림을 구상한다.
이것저것 원하는 색을 찾다가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혼잣말에 켄이 '레드'라고 말하자
갑자기 영감이 깨진 로스코는 불같이 화를 낸다.
"대체 레드가 뭐야?"
주눅이 들만도 하건만... 당당하게 레드의 이미지를 읋어대는 켄.
그러자 로스코도 주거니 받거니 마치 돌덩이를 넣은 눈뭉치로 싸움을 하듯 격렬하게 서로에게 레드를 던진다.
이 모든 레드를 뛰어넘는 그림은 바로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라고 말하는 로스코.
그는 마티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그의 컬러작업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그 열정의 레드를 삼켜버릴 블랙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켄은 어느날 자신이 그린 그린을 작업실에 가지고 왔다.
로스코 선생이 기분 좋으면 혹여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기대하며.
그러나 로스코 선생은 들어오자마자 작업에 들어간다.
작품이 들어갈 씨그렘 빌딩에 다녀온 그는 자연광이 너무 많은 것이 맘에 들진 않지만
아마도 그의 작품들이 걸리면 그것들이 그 빛을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그곳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은 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제공된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켄은 여전히 그 작품의 장소성을 의심한다.
잭슨 폴락을 알기 위해 니체의 비극의 시작을 읽어 봤다고 말하는 켄.
잭슨 폴락은 자유로움의 상징인 디오니소스로, 마크 로스코는 냉정한 아폴로로 상징되었다고.
그래서 폴락은 물감을 뿌리고 로스코는 그림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요점을 정리해 주는 켄.
그러나 로스코는 좀 더 깊이 들어가길 원하고, 영리한 켄은 그가 이끄는 세계로 성큼 들어선다.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의지해야 함을,
열정과 이성이 서로 공존해야 완벽한 균형이 이루어짐을.
그러나 인간의 비극은 그 균형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데 있고
순간을 영원으로 잡아보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 마치 레드를 블랙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인간은 다가올 블랙에 대한 두려움을 각자가 간직한 레드의 기억에 의존하려고 할 뿐이고
그것이 다른 것들을 견딜 만하게 해 준다고...
로스코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잭슨폴락의 방탕한 생활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자살행위'라고 단언한다.
시골출신의 보잘 것 없던 화가가 "잭슨 폴락"이라는 현대 미술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폴락의 비극이라고.
실제로 폴락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자신의 심장을 찔러 피를 얻으려는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연상되는...^^
그는 폴락의 생활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의 예술은 인정한다.
적어도 그는 자신과 함께 입체파를 몰아낸 추상주의의 동료가 아니던가.
유명 화가의 미술품이 그저 벽난로 위나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취급되는 세태에 대한 로스코의 비난은 이어진다.
그것은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사는 것이니까. 동감한다.^^
힘있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넓은 켄버스 위에 붉은 색의 밑칠을 하는 두 사람.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라서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역동적인 장면이다.
레드에 대한 기억을, 카펫 위에 떨어져 굳어버린 피의 색깔로 떠올려내는 켄.
그는 일곱살 때 부모님이 강도살해를 당했었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날 아침, 창밖으로 보이던 눈쌓인 풍경과 침실에 가득하던 피.
그의 화이트와 레드는 그곳으로 모이고 있다.
가끔 범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는 켄. 그는 그의 비극의 기억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기억이 컬러를 얼마나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크 로스코'가 된 유태인 '마르크스 로스코비치'
그가 기억하는 유년의 한 장면도 실제 경험인지, 들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이야기가 만들어낸 상상일 뿐인지
그도 분명하지 않다. 기억은 때로 왜곡되기도 하는 것.
켄은 로스코에게 블랙에 관해 묻는다.
로스코에게 블랙은 죽음, 즉 생명력의 감소, 레드의 부재...
켄은 로스코의 그림들에 대해서 묻는다.
당신 그림 속의 화려하고 따뜻한 색채들은 당신의 열정과 생명력일 것이고
당신은 차가운 이성의 기하학적 형태의 틀 안에 그것들을 가두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그림에서 그 컬러들이 없어진다면 당신의 그림에는 무엇이 남는가?
내용없는 질서만 남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로스코는 나이를 들어 갈수록 그 컬러들을 지탱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한 로스코를 감성적이고 낭만적이고 솔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켄.
색은 그저 색일 뿐인데 왜 그것들을 의인화해서 감정이입을 하는가.
로스코 - 그럼 화이트를 죽음으로 보는 너는?
켄 -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반응일 뿐이다. 나는 화이트를 내 예술의 모티브로 삼진 않았다.
로스코 - 너도 너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너의 화이트를 파고들어 봐라.
켄 - 그건 너무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가, 모든 예술이 싸이코드라마일 수는 없다.
로스코 - 범인의 그림을 그린다면서?
켄 - 그것만 그리진 않는다.
로스코 - 그것만 그렸어야지!
마지막 대사에 관객들은 웃는다. 하지만 여긴 웃음코드가 아니다.
개인적 비극의 경험은 예술가에게 확실한 모티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사실이긴 하니까.
'맨 오브 라만차'에서 누군가 세르반데스에게 던지는
"너희 시인들은 왜 미치광이들에게 열광하는가?"라는 질문과 상통하는 얘기다.
비극, 상처, 그곳에 몰입하는, 미치광이들...
서로에게 공격하듯 던지는 질문과 대답들 중에 정말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화이트를 죽음으로 본 것은 적어도 식상하진 않다"고 다시 대가에게 공격을 재개하는 켄.
화가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블랙은 그의 그림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즉 내리막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고흐는 마지막까지 자연의 위대한 컬러를 그렸고,
선생이 존경하는 마티스도 죽어가면서도 컬러를 구상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티스여야 했기 때문에.
(당신은 왜 벌써부터 블랙을 두려워하는가, 당신도 끝까지 로스코여야 한다...)
그러나 로스코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애송이 화가가 대가들을 다 이해한 것처럼 단정짓는 것을 비난한다.
"그래, 그들과 격투를 벌여 봐, 그들과 논쟁을 벌여 봐,
그러나 그들을 이해했다고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하지 마.그들은 네가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다고!
그들과 끝없는 싸움을 해 봐, 그러다보면 그들의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의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그 때까진 잠자코 그들의 위대함이나 인정하라고!!!"
렘브란트의 그림을 인용하며 그는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한 것"이 자신에겐 블랙이라고 말한다.
달갑지 않게 달려드는 이 새로운 물결에 끝까지 저항하려 하는 로스코.
켄은 혼자 일하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듣고 있다.
불같이 화를 내며 들어오는 로스코.
현대 미술관에 자신의 그림 옆에 앤디 워홀의 작품이 같이 걸려 있는 것에 대해 광분을 한다.
자신의 세대(추상표현주의)를 밀고 들어 온 팝아트의 물결을 강하게 부정하는 로스코.
예술에 대해서 너무나도 진지한 로스코는 팝아트를 가벼움의 극치로 밖에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대중에 대해서도.
대중들은 만화를 보면서도 로스코의 그림과 같은 감동을 받는다는 켄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예술이라고 불리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중의 만족감. 그는 그것을 거부한다.
"난, 네 심장을 멈추게 하려고 여기 있는 거야.
네가 생각하게 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거라구!!!"
예술에 대한 숭고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의 모든 독선과 아집을 용서할 수 있는, 나의 심장을 멈추게 만든 명대사다.
그러나 이어지는 켄의 반격.
"입체파 화가들도 그랬겠죠. 선생님이 그들을 짖밟아 죽이기 전엔"
그리고 그가 했던 말들을 인용해 그를 맹비난한다.
"정말 비극적이야, 살아있는데 더이상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한다구!" 라고 당신의 입으로 말했듯이
이제는 팝아트가 추상표현주의를 몰아내고 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가 왔으니 물러나야 하는데 당신은 안 내려가려고 버티고 있다...
"이제 제발 물러나시죠, 로스코 선생님!"
오호, 이런 위험스럽고 맹랑한 젊은이를 보았나!^^
그러면서 덧붙인다.
"저는 그들이 좀 더 동정심이 있기를 바랄 뿐이예요.
선생님과 동료들이 퇴장하실 때 선생님의 위엄을 허락해 주길 바랄 뿐이라구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죽어가는 종족의 마지막 헐떡임을!!"
계단의 윗단과 아랫단에 있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랫단은 물론 좀 더 젊은 쪽이다.
위에 있는 어른은 아래 있는 소년의 머리가 자신의 어디쯤에 닿아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소년은 어른의 발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좀 더 아래에 있기에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때론 뒷모습이 눈달린 앞모습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함께 일한지 2년이나 되었는데 자신에 대해 손톱만한 관심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선생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켄.
그러나 로스코는 그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대신에 "너의 그 결핍이 지겹다"는 독설을 한다.
(정말로 솔직하지 못하게)
"지겹다"는 말은 인간이 말로 상대를 찌를 수 있는 무기 중의 하나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게 만들 수 있을만큼 강한.
켄은 그간 생존을 위해서 얼마나 '지겨운 로스코'를 참고 견뎌 왔던가.
켄은 로스코를 향해 실랄하게 뱉는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가식덩어리다. 당신은 자신이 스스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당신만큼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조금만 더 세상과 교류했다면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당신 눈에는 모두가 다 부족하지 않은가,
당신의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미술관도, 갤러리들도, 콜렉터들도 모두.
대체 당신의 그림을 가지려면 얼마나 고귀해야 하는가.
아니, 그냥 당신 그림을 볼 수 만이라도 있으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그런 자격을 갖춘 이가 존재하기는 한 단 말인가.
당신에게는 그 모두가 다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한 것"들이 아니던가.
당신의 그림을 인정하는 이가 적어지자 당신은 사람들의 안목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도 잃었다.
결국은 당신의 블랙이 레드를 집어 삼킨 것이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인정하고 아끼는 곳이 아닌 곳으로 그림들이 팔려갈까 염려한다.
그것은 그림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그래서 오직 자신의 그림만을 위한 전용 공간에 그들을 보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성찰과 안전의 명상의 장소로. 그들이 외롭지 않로록 친구들과 함께 연작으로. 그것이 나의 의도다.
그러나 하필 그곳이 포시즌 레스토랑이어야 하는가.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정작 본인만 못 느끼는, 너무나 명백한 오류다.
평생 그림 옆에서 강의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것 미친 짓이다.
"그림은 그 스스로 이야기해야 하는게 아닌가"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말이다.
당신은 위선자일 뿐이다. 예술의 상업화를 비난하지만 당신은 거액의 돈을 받지 않았는가.
식당을, 밥먹는 공간이 아닌 명상의 성전으로 만들었다고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곳으로 간다면 이것들은 바로 당신이 혐오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벽난로 위의 장식품"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잭슨 폴락을 앗아간 스포츠카가 될 것이다.
당신의 허영심을 버리고 끝까지 마크 로스코가 되어라...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스코는 귀족들을 위한 레스토랑에서
신사들의 입맛을 자신의 그림으로 망쳐놓고 싶은 것이라고 변명한다.
변명, 그래. 적어도 여기서부터는 로스코의 대사가 점점 변명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켄은 말한다.
당신의 그림은 무기가 아니다. 당신은 그림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할 수 없다.
당신의 가슴 속에서 들고 일어날 예술이 그렇게 하게 놔두진 못할 것이다.
당신은 예술가니까, 그게 당신의 일이니까.
당신은 그저 퇴장하고 싶어하지 않는 늙은 사자일 뿐이다...
그러나 로스코는 여전히 "그림은 그들이 있는 장소를 초월해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그림들의 힘을 믿는 것일까.
"저 해고지요"라고 묻는 켄에게 로스코는 "넌 처음으로 존재했다. 내일 봐" 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멋진 로스코 선생인걸!!
다음날 아침, 출근한 켄은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는 로스코 선생을 발견한다.
그런데 손목에 붉은 색이? 놀란 켄은 선생을 흔들에 깨우는데, 부스스 눈을 뜨는 로스코.
지난 밤, 포시즌 레스토랑에 다녀왔다는 로스코는 화가가 아닌 손님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입구부터 왁자지껄 소란스런 식당, 고압적인 제세로 소박한 차림의 손님을 대하는 직원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은 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살게 될 내 그림들이 날 용서해 줄까? "
로스코는 필립 존스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한다.
켄은 "드디어 마크 로스코가 되셨군요"라며 매우 기뻐한다.
그러나 그 순간 "넌 해고야" 하는 로스코 선생.
해고 이유를 묻는 켄에게 이핑계 저핑계로 대답을 하지 않으려던 로스코는
집요하게 캐묻는 켄에게 큰 소리로 고함치듯 말한다.
"네 인생은 저 밖에 있으니까!
넌 이제 더 이상 나하고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어, 넌 이제 네 동료들을 찾아서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해.
세상 속으로. 사람들을 향해 네 주장을 펼치고 사람들이 그걸 보게 만들어. 나가서 새로운 걸 만들어 봐"
늙어가는 사자의 따뜻하고도 멋진 배려...
서로의 관계 속에 성장한 두 사람의 모습, 훈훈하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뭐가 보이지?"
"레드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모든 말이, 조사 한 자까지도 허투로 쓰이지 않은 대본이라 느껴졌다.
살다보면, 나이를 먹어가며, 누구나 자연이 느끼고 알게 되는 자연의 이치들. 그것이 곧 진리다.
나고, 피고, 지고, 진 자리에 또 새로이 나고... 영원한 순환.
그 속에 나는, 나의 자리는 현재 어디쯤에, 어디까지 흘러왔는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로스코는 끝까지 예술의 이름으로 논하지만 그 말들은 곧 인생이고
그래서 예술은 그의 것만이 아닌 모두의 것일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진리란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마치 보물찾기처럼.
마크 로스코의 배우 강신일.
그의 연륜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아마도 연기를 하면서 진짜 로스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라는 직업과 화가라는 직업. 예술 아닌가, 둘 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풍같은 엄청난 대사량.
그림도 그리고 물감을 섞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무대에서 사건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대화 만으로 100분을 채우는 일.
그러나 그 시간을 관객들이 눈치챌 수도 없게 만든 명연기였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켄 역의 한지상.
2013년에 정말 많은 작품을 했던 젊은 배우인데, 처음 만났다.^^
총명하면서도 겁없고, 대담하기도 하고, 젋은 패기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는 느낌이다.
뭐랄까, 살아서 펄떡거리는 물고기같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아서 여전히 말하고
그의 말대로 여전히 스스로 공간도 만들고 교류를 원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을 본 적은 있으되,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니, 그 뿐 아니라 모든 추상작품들을 보면서
작가의 혼잣말을 내가 꼭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가를 고민한 적이 많았던 나는
여러가지로 답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웬지 쾌감도 느껴지고^^
나이 탓인가, 처음에는 켄의 입장에서 출발했었는데 점점 로스코의 주장들이 귀에 들어오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비난도 많이 하게 되지만.
예술이 꼭 다 진지할 필요도 없지만 또 다 가벼울 필요도 없지 않은가.
정말 그의 말처럼 심장을 뛰게하고, 생각하도록 해 주는 작품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연극 작품 자체에 대해서, 이런 작품이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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