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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만선 - 20230330

by lucill-oz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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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을 향해 경사진 무대. 오른쪽으로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한채가 자리잡고 있다.

 

'칠산바다'에 몇 십년 만에 부서떼가 그득하다며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사나흘만 고기를 잡아올리면 모두 두둑히 한 몫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흥분한다.

부서잡이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곰치는 만선을 하면 빚청산을 하고 작으나마 내 배를 갖고자 꿈꾼다.

곰치의 아내 구포댁도 마을 남정네들의 질펀한 농담을 기꺼이 받아주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고깃금을 알아보러 나갔던 곰치의 아들 도삼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갖고 돌아온다.

곰치가 몰던 중선배의 선주인 임제순이 잡아온 고기를 밀린 뱃삯으로 싹 다 가져가 버리고 빚까지 안긴다.

게다가 사흘 안으로 빚을 갚지 않으면 절대로 배를 빌려줄 수 없다며 협박을 한다.

아니, 배를 줘야 고기를 잡아서 빚을 갚지... 저 욕심 많은 늙은이가 무슨 수작인 걸까?

선주와 함께 온 주막집 주인 범쇠는 빚을 대신 갚아 줄 수 있다며 곰치의 딸 슬슬이를 탐낸다. 

 

만선의 꿈은 한 순간에 깊은 수렁으로 변해 버렸다.

게다가 미래를 약속한 연인 연철을 놔두고 돈 2만원에 팔려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곰치의 딸 슬슬이.

곰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고, 묶인 배를 풀어줄 생각이 없는 선주를 원망해 보지만 별 도리가 없다.

 

배를 띄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몇 차례씩 만선을 하고 있는데... 곰치네만 애가 탄다.

범쇠는 또 구포댁을 찾아와 2만원을 갚아 줄테니 슬슬이를 달라며 염장을 지르고, 

그 말을 듣게 된 연철의 속은 더 뒤집어진다.

곰치가 선주에게 낼 모래까지 빚을 다 갚겠다는 약속으로 배를 빌리기로 했지만 막막하긴 매 한가지...

구포댁은 차라리 뭍으로 나가자며 곰치를 설득하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엔 차라리 배를 가르고 말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삼대가 바다에서 죽은 곰치, 이미 아들 셋을 바다에서 잃은 구포댁은 다섯번째 아들을 낳은 자신이 원망스럽다.

곰치의 고집은 어부로서의 자존심일까? 드높은 직업의식일까? 

그러면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딸자식의 앞날은? 아들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있는가?

곰치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곰치의 저 고집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슬슬이는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탓으로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자신이 한스럽다.

자신은 결국 범쇠 영감에게 팔려가야 하는 것인가. 연철은 돈 2만원 때문에 눈앞에서 각시를 뺏기게 되는 건가.

가엾은 연철과 슬슬이...  만선에의 꿈에 자신들의 미래도 함께 걸어본다.

 

곰치는 도삼이, 연철이와 빌린 배를 받으러 간다.

곰치는 그래도 역시 배는 중선배라며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데

어느 새 다 큰 아들 도삼은 큰 욕심 내지 말고 뜰망배라도 내 배를 마련해야 한다며 아비를 타박한다.

게다가 요즘은 첨단기계를 달고 물속을 들여다 보며 고기를 잡는다니

곰치로서는 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

아들과 아비가 티격태격하니 맘이 잘 맞아 보이질 않는데 

동료 어부 성삼은 하필 범쇠네 배를 탄다며 가버린다.

 

곰치는 부서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

부서의 특성을 이해해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이미 계획을 다 세워 놓았다.

이제 배만 띄우면 되는데, 임제순 이 영감이 덪을 놓는다.

빚을 제 때에 갚지 못하면 전 재산을 몰수한다는 조항이 있는 계약서에 도장도 아니고 지장을 찍게 한다.

도삼이 말릴 새도 없이, 눈앞의 배가 급한 곰치는 보이는 게 없다.

그저 배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장을 찍어주고 만다.

아들이 그물만 지고 나서면 가슴이 선득선득 한다는 구포댁을 달래며 남정네들은 모두 바다로 나간다. 

만선의 꿈을 한가득 안고.

 

배는 뜨고, 그때부터 구포댁은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앞바람이 심상치 않다던 도삼의 걱정은 끝내 화를 부르고...

폭풍우 속에서 다른 배는 다 돌아오는데 곰치의 배만 보이질 않는다.

구포댁의 닳는 속은 타들어가는데 임제순 영감은 배걱정만 할 뿐이다.

먼저 돌아온 이들의 말을 듣자니 폭풍 속에서 남들은 다 돛을 접고 돌아가려는데

곰치의 배 혼자만 쌍돛을 달고 부서떼를 좆더란다.  

그러나 결국 만선의 배는 폭풍에 부서지고 곰치만이 홀로 판자 한 조각에 의지하여 돌아온다.

아들을 또 잃은 구포댁. 하나 남은 오라비와 연인을 잃은 슬슬이 앞에 선주 임제순과 범쇠가 나타난다.

배까지 잃은 임제순은 모질게도 빚독촉을 하고 범쇠는 또다시 슬슬이를 넘본다.

어찌 인간들이 이토록 모질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이 가족들이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슬슬이는 결국 범쇠와의 몸싸움 중에 그를 칼로 찌르고 만다.

대체 만선이 뭐길래... 무엇이 만선이고 누굴 위한 만선이란 말인가...

 

아들을 잃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포댁은 넋이 나가 헛것을 보는데

곰치는 또 갓난 아들이 열살만 되면 그물 손질을 시키겠단다.

뱃사람은 바다에서 죽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이토록 슬프고 잔인하게 들릴 수가 없는데...

어린 아들마저도 뱃사람을 만들겠단 말에 구포댁은 어린애를 남의 빈 배에 태워 바다로 띄워 보낸다.

묻으로 가서 좋은 부모 만나서 제 명대로 살라고 그랬단다.

슬슬이에게도 배를 가진 범쇠에게 시집을 가란다.

그러나 이미 슬슬이는 목을 매고... 어찌 한단 말인가, 이 비극을.

넋이 나간 곰치는 그래도 소리친다.

조부님도 부친도 만선이 아니면 노 잡지 말라고 하셨다고. 곰치가 그물은 손에서 놓느니 차라리 배를 가르고 말겠다고.

단 사흘만에 만선의 꿈이 가져간 이 가족의 비극 앞에 무어라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이 있단 말인가. 

 

 

 

 

국립극단의 작품들은 늘 만족감이 크다. 이번에도 역시.

천승세 작가가 26세이던 1964년작이라고 한다.

그가 박화성 작가의 아들이라는, 모계로부터 물려받은 작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했었다고 쳐도

26세의 나이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전면으로 쏟아지듯 경사진 무대, 이 집안의 앞날을 보여주듯 비스듬히 쓰러진 낡은 오두막과 

실제로 물이 고인 웅덩이? 저수지?

그 무대 위로 실제로 비가 쏟아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물이 경사를 따라 그 웅덩이로 모이도록 세심하게 배수로를 연결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 솔직히 나는 곰치를 나무라고 싶지 않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다 앗아간 그 지긋지긋한 바다.

다 앗아간 그 바다는 댓가조차 제대로 치뤄주질 않았지만 그는 바다를 놓지 않는다.

오히려 폭풍 속에서도 쌍돛을 올리며 정면 대결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주신 선조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행하는 고집스러운 모습도.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엔 차라리 배를 가르고 말겠다는 곰치의 대사.

그 말이, 혹시 어느 어부가 실제로 뱉은 말이 아니었을까?

바닷가(목포) 출신이라고 해도 그토록 젊은 나이의 작가가 뱉어낼 수 있는 말이던가.

그런 삶을 살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사정을 떠나서 곰치라는 한 인물만 본다면 나는 곰치를 이해하고 싶은 편이다.

내가 구포댁이 아니라서? 글쎄.

곰치는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노하우와 숙련된 기술과 신념이 있고 심지어 체력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탓이 아닌 것이다.

 

5,60년대의 해안가 마을의 삶이 지금이라고 어디 다르던가.

자본가는 더욱 철저하고 악날하게 못가진 자들의 삶을 파괴시키고

가난한 자들은 그저 자신이 가진 기술 그 한가지에 목매고 사는데

그 한가지가 때론 삶의 희망이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를 해치는 무기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곰치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들은 잘 살 수 있었을까?

구포댁의 바램대로 뭍으로 갔다면 아들들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꽃다운 딸을 지킬 수 있었을까?

어떤 대사는 곰치가 아들들을 그저 고기잡는 도구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느껴지지만

슬슬이를 절대로 범쇠에게 줄 수 없다는 말에선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포댁도 이해할 수 있다.

곰치같이 고집스런 사람과 살다가 아들 넷을 잃었다.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비록 실성한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 해도 어린애를 빈 배에 띄워 폭우속으로 떠나보내는 결단을 한다.

나는 못했지만 너는 다른 세상에 살거라. 이게 너에게 해 줄 어미로서의 가장 큰 도리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애가 살지 죽을지는 역시 아무도 모를 일이다.

 

김명수, 정경순 두 배우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너무나도 허망한 결말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는데 

웬지 그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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