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중, 이일화, 고인배 cast로 관람
아마도, 예전에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아니면, 일요일 아침에 영화 소개해 주는 TV 프로그램에서 봤던지.
이 '미저리'라는 이름은 영화가 나온 이후에 스토커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는데
재밌는 것은 이 이야기의 여주인공 이름이 미저리가 아니고 '극중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미저리다.
그러니까 정확히 스토커는 '애니 윌크스'고, 미저리는 그녀가 사랑한 소설 속의 여인인 것이다.
(집착하는 사람을 보며 '미저리야?'라고 하는 말은 정확히 '영화 미저리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은 상황이네'인 것이다)
마치,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는 '뮤지컬 레베카'와 조금 비슷한 느낌?
주요 캐스팅이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웬지 서지석+길혜연 보다는 김상중+이일화 조합이 더 끌렸달까.
내가 이일화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고. 의외로 김상중+길혜연 조합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보고나니 길혜연 배우가 더 애니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이일화 배우는, 그녀의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착한 애니 윌크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캐릭터의 연기는 처음 보아서 좀 새로웠다.
히스테릭하고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는 길혜연 배우가 조금 더 잘 어울렸을 듯.
김상중 배우는 드라마에서와 다른 느낌은 없었고
보안관 역의 고인배 배우는 길지 않은 등장인데 뭐랄까...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 '미저리' 시리즈와 그 작가인 폴 셸던에게 광적으로 몰입해 살고 있던 간호사 출신의 애니 윌크스.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서 집필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 매일 주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집필을 끝낸 그가 돌아가던 날, 마침 큰 눈이 내리고 그의 차는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애니는 자신의 연장으로 차문을 열고 정신을 잃은 그를 병원이 아닌 집으로 데려온다.
자신의 우상이 내 집 침대에 누워 나의 간호를 받고 있다니!
애니는 자기가 폴의 '넘버 원' 팬임을 입증하며 정성껏 그를 간호한다.
그러나 상냥한 그녀는 간혹 히스테릭한 행동으로 폴을 긴장시킨다.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하는 폴은 모든 것을 애니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미저리'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애니는 눈길을 뚫고 그 책을 사와서는
한 장, 한 장을, 아니 한 글자, 한 글자를 흥분하며 읽어나가는데...
주인공 미저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애니는 갑자기 무섭게 돌변한다.
(물을 달라는데 걸레 빤 물을 먹이다니! )
폴이 새로 완성한 원고마저 불태우고, 고통스러워하는 폴을 진통제로 협박하여
결국 미저리를 다시 살리는 글을 쓰도록 하는데, 이름하여 '미저리의 귀환'
한장 한장 원고가 나올 때마다 흥분과 분노를 거듭하며 자기 마음에 드는 내용으로 바꾸도록 한다.
아무리 '넘버 원' 팬이어도 그렇지, 작가가 자신의 의지대로 쓰지 못하고
무슨 받아쓰기라도 하듯이 억지로 글을 써야 하다니... (갑자기 폴에게 확! 감정이입이 되며 화가 난다.)
심지어 애니는 폴이 원고의 복사본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까지, 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폴의 입장에서는 이 대목에서부터 진짜 공포스러웠을 듯)
그런데 또 가만 보니 폴 역시 처음엔 화가 나더니 점점 새로운 이야기에 함께 몰입이 되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니야말로 작가인 자신보다도 더 이 '미저리'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꿰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 여부를 가장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편집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미저리'는 곧 자신이고 미저리의 세계는 그녀의 또다른 세계다.
애니는 폴을 보낼 생각이 물론 없다. 눈이 녹아도 애초에 병원엔 데려갈 생각이 없었을 뿐더러
집으로 찾아온 보안관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전화선을 끊어 놓고 외출할 때는 방문을 잠그고 나간다.
폴이 탈출을 시도한 흔적을 발견하자 잔인하게도 그의 양 발목을 부러뜨려버린다.
두 번째로 애니를 방문한 버스터 보안관은 이상한 느낌을 받아 그녀의 집으로 들어와 보지만
폴 쉘던을 대신해 글을 쓰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의 헛소리에 그만 돌아서다가
필사의 노력으로 인기척을 낸 폴의 신호를 듣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침실 문을 따고 들어 온 버스터 보안관은 폴을 발견하지만 그 순간 애니가 쏜 총에 그만 쓰러진다.
외부로부터의 구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폴은 순순히 그녀의 말대로 소설을 완성한다.
(아니면 보안관을 찾으러 누군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그 때를 기다린 것인가)
소설을 완성하자 그는 애니가 그랬던 것처럼 원고를 불태워 그녀가 주었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 준다.
폴은 격분하는 애니를 타자기로 내려치고, 피투성이의 그녀와 한판 몸싸움을 벌인 끝에 그녀의 맥이 풀린다.
그러나 반전은 폴이 불태운 원고는 가짜!이고 진짜는 잘 감추었다가 정식으로 출판한다는 것.
이것 참, 애니를 욕할 수도 없네...
그러나 폴의 입장에서는 그 악몽 속에서 목숨 걸고 만든 소설인데 당연히 버릴 수 없었겠지.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검색을 해 보니 원작과는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어보인다.
단순히 눈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아니라 눈길에 음주 운전이었다든가 (심지어 술을 마시며 운전을 했다던가)
애니가 폴의 발목을 자르는 부분, 보안관의 시신을 처리하는 묘사라든지.
아무래도 소설을 극화하는 과정에서의 한계나 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참 영리하구나 싶기도 하다.
이 '미저리' 시리즈를 다른 소설에서도 잠깐씩 등장시켰나보던데, 뭐 시그니처인가?
작가가 전작의 등작인물을 다음 작품에서도 등장시킨다거나 하는 기법이 이제 드믄 일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무대가 정말 볼 만 했다.
집의 구조를 그대로 만들어 턴 테이블로 방향을 돌리면 침실에서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또 현관과 마당으로 이어지는 집 전체를 특별한 무대전환 없이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로지 집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니까 이런 디자인이 가능했겠다.
폴이 휠체어를 타고 침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나오는 씬을 영화나 드라마 무대처럼 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침실의 창은 마당에서 보이는 창과 동일하므로 마당에 있던 버스터 보안관이 창문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복도를 지나 침실 앞까지 오는 동선을 관객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끊김없는 원 테이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말 획기적인 무대였다.
대략 감으로, 기억을 더듬어서 그려보았다. (별 걸 다 하고 있어...)
어떤 사람이 남들과 다르게 과하거나 부족한 면이 있다면 그의 살아온 날들에 그 원인이 있을 거다.
영양분을 고루 섭취하지 못하면 영양소 결핍으로 인한 병이 생기듯이 말이다.
애니 윌크스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자신의 에너지를 스스로를 위해 쓰지 못하고 눌러 두었다가 (그녀는 뭔가 금욕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만났던 소설과 그 작가에 깊이 빠져들어 그 속에서 자신을 실현시키려는 사람으로 보인다.
몸과 마음이 둘 다 건강한지 늘 살필 일이다.
그런가 하면 폴 셀던의 삶에 대한 의지는 매우 높아 보인다.
보면서 잠시 들었던 생각이지만, 나 같으면 어땠을까... 내가 폴의 상황이었다면.
물론 첫번째는 그렇게 눈 많이 오는 날 굳이 차를 몰고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만약 애니같은 사람을 만났다... 다리는 망가졌다... 통증에 죽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기어이 탈출할 생각을 했을까, 그 다리로?
아니면 아주 긴 텀을 갖고 애니를 안심시키며, 나뭇꾼에게 옷 빼앗긴 선녀같은 장기 플랜을 세웠을까? ㅋㅋ
어쩌면 후자 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프리뷰 기간동안 배우들의 커튼콜 인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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