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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광부화가들 - 20230104

by lucill-oz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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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극을 할 때 가급적 프로그램북을 꼭 사는 편이다. 

물론 관극의 기념이 되어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잘 모르는 작품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무대에서 보여지는 짧은 대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 대사가 왜 들어간 건지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프로그램북의 내용과 구성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부실한 내용에 비해 가격이 비싸면 화가 나기도 한다. 

옛날 사람이어선가? 기본적으로는 입장권을 구매한 관객에게는 무료제공 되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대체로 연극의 플북은 작품의 이해를 위한 정보를 충실히 주는 편이다.

뮤지컬 플북은 아무래도 젊고 예쁜 배우들의 비주얼 자료가 많고.

이번 작품의 플북은 정독하여 두번 이상 읽었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실화라니... 그래서 더욱 감동이다.

원전인 THE PITMEN PAINTERS : THE ASHINGTON GROUP를 읽어 봐야겠다.

 

뉴캐슬의 College에서 미술학 석사 과정을 마친 로버트 라이언이

광부들에게 '미술 감상' 수업의 강사로  Ashington을 방문한 것이 1934년이다.

당시 Ashington Woodhorn 탄광의 노동조합 교육반은 지질학, 진화론 등의 주제를 가지고 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는데

미술감상 수업 역시 그 중 하나였다. ( 1930년대인데 이렇게 좋은 시도가 있었다니! )

라이언은 미술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들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하려 하나

광부들은 그림의 숨겨진 의미를 알려달라고, 저 그림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한다.

(라이언은 당황하지만... 나는 광부들의 질문에 충분히 이해했다.

사실, 유명한 그림이라는데...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그림도 있지만

때로는 이게 뭘 그린 건지, 왜 높이 평가되는건지, 뭘 봐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은 작품을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그래서 더 잘 이해하려고 도슨트의 설명도 듣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어쩌면 라이언은 그런 실무 경험이 없다보니 그 질문을 난감해 한 것이 아니었겠나 싶었다.)

그래서 그는 광부들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 보라고 과제를 내 준다.

어쩌면 그 자리를 회피하려는 방편으로 생각해 본 것인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첫 수업을 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매우 효과가 있었다.

처음엔 어색해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광부들은 어차피 같이 시작한 동료들이다 보니

스스럼없이 서로의 그림에 대해 지적도 하고 질문도 하고 평가도 하면서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 과정을 통해 광부 화가들은 물론 라이언 역시도 성장했으리라.

그들의 활동은 점차 외부로 소문이 나고 후원자도 나타난다.

선박회사의 상속자인 헬렌 서더랜드는 처음으로 그림을 사 주었고, 이들에게 유명한 화가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런던 여행을 주선하여 TATE 미술관이나 대영 박물관을 견학시켜주기도 한다.

(헬렌의 캐릭터가 그렇기도 했지만 처음 문소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1937년 영국인의 사회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설립된 Mass Observation에서 

그들 그룹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 그룹의 활동을 "노동계급의 자기 표현"의 주요한 예로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들의 작업을 주제로 토론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헬렌은 그들 중 특히 열정적이고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올리버에게 개인후원을 제안한다.

광부의 주급을 그대로 줄테니 그림에 몰두해 보라는 것인데 올리버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에게가 아닌 자신에게만 후원하겠다는 제안에 많이 고민한다.

지금까지 같이 해 왔는데 나만 잘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겠지만

그들의 그림세계는 자신들의 직업, 즉 광부로서의 삶과 생활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그들로부터 떨어져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도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야지, 뭘 고민해. 이런 기회가 아무한테나 오는 게 아니잖아!'라고

마스크 안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올리버가 그룹에 남기로 결정했을 때 내가 당황스러웠다.

 

8년간 이 그룹과 함께했던 라이언 선생은 에딘버러 미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이들과의 성공적인 동반이 배경이 되어 주었으리라.

전쟁으로 그들의 작업실조차 없어지고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계속 자신들만의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사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출세, 세인들의 관심은 나를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나를 향한 환호는 그들의 관심사에 나를 맞춰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은 바깥의 그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들은 광부라는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개인이 아닌 그룹이라서 가능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들의 그림은 네델란드, 중국, 독일로 순회 전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그림들이 작업실 여기저기에 쌓여있었다. 보관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84년, 이 작품의 원전인 THE PITMEN PAINTERS : THE ASHINGTON GROUP 의 저자인

William Faber와 올리버가 영구적인 콜렉션을 위한 재단을 만들었고

그들의 작품들은 우드혼 탄광 박물관에 수장, 영구 전시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들 삶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유명해져서 고가에 그림을 팔 수 있기를 바래야 하는가,
그저 동료들과 함께 하며 자신들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좋은 건가.
사람들은 올리버의 선택을 어리석다고 했겠지만
나는 끝까지 자신들이 상업적인 그룹이 아니었다고 자부하는 그의 대사를 들으며
올리버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였구나 하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의 안에서 끓어오르는, 그리고 싶은 열망과 광부로서의 자부심.
그들은 끝까지 예술가라는 이름에 스스로 도취되지 않았고
남들은 보잘것 없이 여기는 광부라는 일에 대해서도 끝까지 직업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살며 나이먹어간 그들의 모습은 숭고하게 느껴졌다.

많은 감동을 준, 그리고 여운이 길고 생각할 꺼리도 많아진 관극이었다.

 

잔소리쟁이 관리직인 조지역은 정석용 배우로 예매를 했는데 당일 캐스팅이 변경되었다. 감칠맛 나는 역할이다. 

올리버 역의 강신일 배우는 화가 전문인가? 마크 로스코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설마 진짜 그림을 그릴 것 같은 느낌.

사실 지미 역의 윤상화 배우야말로 진짜 화가인데... 올리버 역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토미는 조지의 조카다. 정식 광부는 아니지만 아저씨들 따라서 그림수업을 듣는다.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예매한 지가 좀 되서 캐스팅 정보를 잊고 있었다. 게다가 빠듯하게 도착해서 캐스팅 보드 확인도 확인하지 못해서 

헬렌이 등장할 때 누구지? 하면서 목소리가 아무리 들어도 문소린데, 설마... 그러고 있었다. 참 내...ㅋ

노 수산나의 발랄한 수잔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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