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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세인트 조앤 - 20221014

by lucill-oz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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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4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은 큰형의 외손자, 여동생의 아들이자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3세,그리고

사촌인 발루아 백작 필리프가 있었다. 

 1316년 프랑스에 살리카법이 도입되면서 여성의 왕위 계승이 금지되었다. 

샤를4세의 누이인 이사벨라는 살리카법에 의해 자신이 왕위계승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아들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인  에드워드 3세를 내세웠고 프랑스는 당연히 이를 무시했다.

 

살리카 법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에드워드 3세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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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왕위는 샤를 4세의 유언에 따라 사촌형인 필리프가 계승하게 된다.

그러나 필리프 6세가 에드워드 3세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에드워드 3세는 다시 프랑스에 왕위를 요구한다.

 

당시 프랑스 북부의 플랑드르는 양모산업이 번성한 지역이었는데 그 원료를 대부분 잉글랜드에 의존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 지역은 전쟁기간 동안 잉글랜드의 편에 선다)

에드워드 3세는 유럽 최대의 포도주 산지인 기엔지역을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은 서로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다.

1337년 프랑스는 에드워드3세가 소유하고 있던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지를 몰수하고

둘의 왕위계승분쟁이 백년이 넘는 전쟁의 서막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두 나라의 왕이 수 차례 바뀌고 각자 내분을 겪기도 하며 휴전과 전투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1399년 잉글랜드는 헨리 4세가, 프랑스는 샤를 6세가 집권하였는데

샤를 6세는 젊어서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제대로 왕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를 대신하여 국정의 실권을 차지하고자 귀족들이 대립하는데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브루고뉴파'와 남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아르마냑파'다.

1413년 아르마냑파가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을 장악하자 브르고뉴파는 적국인 헨리 5세와 협상하여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헨리 5세의 요구가 지나치자 협상이 결렬되고, 그러자 헨리5세는 노르망디로 진격해 온다. 

잉글랜드군은 인근 지역들을 잔인하게 점령하며 북부지역인 칼레로 향하고

부르고뉴파에게는 자신에게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부르고뉴파는 처음엔 협력할 듯 하다가 차라리 아르마냑파와 결탁하여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자 했고

그렇게 아르마냑파의 군대가 아쟁쿠르로 합류하나 어이없게도 대패하고 만다.

이후로도 헨리 5세는 노르망디로 재침공하여 잔인하게 시민들을 학살하자 인근 도시들은 모두 항복하고

마지막으로 루앙마저 함락되었다.

 

샤를 6세의 정신병은 악화되고, 왕자들은 전쟁 중에 사망하고 발루아 왕가의 앞날은 어둡기만 한데

이 와중에 프랑스는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냑파가 또 다시 대립하고 있었다.

아쟁크루 전투에서의 패배로 아르마냑파는 크게 세력을 잃었지만 아직까지는 파리의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헨리5세는 이 둘을 교묘히 분열시켜 프랑스의 전투력을 상실시키며 계속해서 점령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1418년 부르고뉴파가 파리를 빼앗으며 아르마냑의 백작을 살해하자 샤를 6세의 하나 남은 아들인 도팽(왕세자) 샤를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파리를 떠나 시농으로 피신한다.

도팽 샤를이 두 파의 화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나 이번에는 아르마냑파에서 부르고뉴의 공작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부르고뉴파는 샤를의 의도를 의심하며 헨리 5세와 손잡고 그를 적대시하게 된다.

이로써 프랑스는 수도인 파리마저 잉글랜드의 영향권에 넘어가게 된다.

부루고뉴파는 도대체 프랑스의 적인가 아군인가. 아니지, 나는 그저 내 편일 뿐.

 

헨리 5세는 샤를 6세와 "트루아 조약"을 맺고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결혼함으로서 카트린이 낳은 아들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통치권을 갖는다고 하는,  프랑스 왕위계승자이자 프랑스 왕국의 섭정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적국의 왕이 사위가 되어 나라를 차지하게 되다니.

말하자면, 병세가 깊은 샤를이 곧 사망하면 프랑스의 통치권은 곧바로 헨리 5세의 아들인

헨리 6세(아들을 낳는다는 전제하에)에게 넘어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어린아이의 아비이자 젊은 헨리 5세가 섭정자로서 실질적 통치를 하게 될 테이니 이 조약은 프랑스를 잉글랜드에 바친다는 얘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 뜻밖에도 전쟁 중에 헨리 5세가 먼저 병사하고 만다. 뒤이어 샤를 6세도 사망.

그러나 갓난아기에 불과한 헨리 6세에게 왕권을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고

헨리5세의 동생이 섭정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는 부르고뉴파를 제외한 프랑스 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트루아 조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르마냑파와 귀족세력에 힘입어 도팽 샤를이 왕위를 이으려 하나

부르고뉴파는 트루아 조약 위반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전통적으로 왕의 대관식이 이루어지는 랭스 대성당에서 빨리 대관식을 치뤄야 하는데

랭스는 잉글랜드의 휘하에 있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당시 황태자 샤를이 있는 오를래앙 지역은 잉글랜드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오를래앙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으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한 복잡하고 궁한 처지에 놓여있는 황태자 샤를 앞에 바로 그 소녀, 쟌 다르크가 나타난 것이다.

쟌 다르크는 적은 수의 프랑스 군사들을 독려하여 잉글랜드 군을 격파하여 오를래앙 전투에서 승리한다.

 

 

 

 

<쟌 다르크> 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 세계위인전집에서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기억은 프랑스를 구한 영웅, 그리고 마녀라는 명목으로 화형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여인.

거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백은혜 배우가 보여준 그녀는

종교적 신념에 가득차 있으며, 프랑스를 구하고 샤를 왕자를 왕위에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힘은 있으되 용기는 없는 지주와 귀족들과 군주까지도 거침없이 설득하여 전장을 지휘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와! 아직 소녀의 나이인데 어디서 그런 확신에 찬 용기가 나온 걸까?

그녀가 드라마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는 점이 놀라울 지경이다.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는 프랑스의 군주 (아직까진 후보자?) 앞에 나타난 이 여인을

샤를은 의심스러우면서도 믿어보고 싶어 한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지 시험하면서까지도.

이승주 배우가 보여주는 샤를 7세는 매우 시니컬해 보인다. 물론 그가 처한 상황을 그렇게 보여준 것이리라.

그녀는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고 랭스의 대성당에서 그에게 왕관을 씌워주겠다 장담하는데

샤를은 대주교의 눈치를 본다. 

조앤은 그런 샤를을 북돋우며 용기를 주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설득당할 것 같다. 

실제로 쟌 다르크가 이렇게 똑똑하고 현명하고 단호하고 멋졌단 말인가? 

드디어 샤를은 군대의 지휘권을 조앤에게 넘겨준다.

적어도 여기까진 샤를이 조앤을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앤은 하느님이 프랑스의 편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하느님은 왜 프랑스 편이어야 할까?

영국에도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영국인들이 있을텐데.

조앤의 종교적 신념이 웬지 위험하게 느껴진다.

 

두 나라가 백년이나 계속해서 전쟁을 하다보면 어느 쪽이 적이고 아군인지가 모호했을 수도 있겠다.

전선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백성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도 했을테니 말이다.

다만 그 사이의 영주들만이 정치적 판단을 하기에 바빴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이 여인만이 자신이 프랑스의 딸이라는 의식이 선명했고

그점이 결국 그녀의 비극이자 또한 위대함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교회가 정치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던 중세 봉건시대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왕관을 씌워주겠다는 이 보잘것 없는 여인에 의해서

교회는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리기를 결코 원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봉건  영주들 또한 국왕의 지위가 강해질수록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니

그 사이에 놓인 조앤은 명실공히 승리한 프랑스에게나 패배한 영국에게나 양국의 공공의 적인 셈이다.

 

도팽 샤를은 조앤에 의해 샤를 7세로 등극한다.

조앤은 계속 진군하여 빠리를 탈환하고자 하나 샤를과 교회는 더 이상의 전투를 원하지 않는다.

조앤이 포로가 되었을 때 몸값을 지불할 돈도 마음도 없음을 내비친다.

어쩌면, 그녀로 인하여 위기를 넘겼으니 여기까진 땡큐이고,

더 이상은 그녀에게 권력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네들의 속셈이었을 것이다. 

연극은 이 갈등의 과정을 매우 자세히 보여주는데 길고 방대한 대사량이 집중력을 좀 떨어뜨렸다.

 

 

2막은 종교재판으로 시작한다.

그녀를 포로로 잡은 쪽(브루고뉴파)에서 몸값을 요구했으나 답이 없자 결국 그녀는 재판에 넘겨지고

재판관들은 별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어 수십가지의 죄목을 들이댄다.  

그 말같지도 않은 배운자들의 추궁에 조앤은 하나하나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을 먼저 따라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에겐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는 하느님이 아닌 악마의 속삭임이어야 한다.  

여인이 갑옷을 입은 것도 죄악이라는데 재판이 무슨 소용인가,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모든 죄를 인정한다고 싸인을 해도 결국은 평생을 감옥에서 풀어줄 생각이 없는데.

그녀는 차라리 불을 지피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끝까지 믿음과 소신을 가진, 여인이 아닌 끝까지 병사의 모습이고자 한다.

귀족들의 권력과 손잡은 역겹기 그지없는 교회의 모습.

자신들은 감당할 엄두조차 못내던 일을 해 낸 어린 영웅에게 보내는 최악의 보상.

이 대목에서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마지막 전투에서의 사망은 자신의 계획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 이유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는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

 

이처럼 극적인 삶을 산 이가 있었을까.

영국과 프랑스 양 국에서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실존 인물.

교회에 의해 추방당하고 화형당하고 25년이 지난 이후엔 역시 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

사후 명예가 망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망자에 대한 사후 명예 회복은 산 자들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하는 짓이다.

사후 25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 장본인들이 죽고, 산 자들은 입을 다물고,

'마녀'가 아닌, '성녀'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 왕위의 정당성을 굳건히 하려는 수작 말이다.

 

 

백년전쟁과 잔 다르크에 대한 양국의 역사를 정통하고 있었다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겠다.

그게 부족한 상태에서 긴 대사량으로 그 내용을 흡입하려니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기억하려니 힘들다.

결국, 리뷰를 하면서 쟌 다르크와 샤를7세, 백년전쟁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왜 영국식으로 조앤이라고 했을까? 프랑스의 영웅인데.

 

 

백은혜 배우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어린 조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드라마 '모범형사' 시즌 1,2를 몰아보면서도 저 배우를 어디서 봤더라~~ 하면서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공연을 몇 편이나 봐 놓고도 말이다.

무대에서 본 배우를 TV에서 보면 되게 반가운데,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그러려니 하자, 나이가 있으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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