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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맥베스 - 20220428

by lucill-oz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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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무대였다.

모두 동시에 무대로 입장하여 자리를 잡는다.

바바리 코트로 몸을 감싼 마녀들은 우스꽝스럽게 과한 분장을 하고

기타반주에 맞추어  모두 "봄날은 간다"를 부르고

레이디 맥베스만 동시에 다른 노래를 부른다.  (두 노래가 섞여서 무슨 노랜지 알 듯 모를 듯...)

 

스코틀랜드의 왕 덩컨의, 독백처럼 흐르는 나레이션.

톤은 심각하지만 좀 웃기다. 의도한 코믹요소인가? 진지하게 웃기는 컨셉?

그래선가 몰라도 그의 말 속도는 너무 느리다. 지루할 정도다.

그렇게, 많은 내용의 이야기가 서너줄로 요약되어 휙휙 지나간다.

게다가 세명의 마녀 컨셉 또한 대놓고 웃기다.

이 연극이 도대체 어디로 가려나 싶다.

뭔가, 웃긴데 대놓고 웃을 수도 없는 분위기에, 나만 웃긴 건가 싶어 마스크 속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그것도 맨 앞줄에 앉아서. 

대놓고 웃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웃기는 건가?

암튼, 극이 중반에 이를 때까지 무대와의 괴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감정이 충분히 올라가는 레이디 맥베스. 대단하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드디어 맥베스와 벤쿠오의 등장. 

춤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그러나 나름 느낌있는 배우들의 움직임.

드디어 마녀의 예언을 접하는데,

맥베스는 영주가 되고 왕이 될 것이고, 벤쿠오의 자식들은 대대로 왕위에 오른단다.

배경으로 흐르는 '봄날은 간다'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허무감의 복선인가.

'셰익스피어'와 '봄날은 간다'의 콜라보?

 

레이디 맥베스만이 정극을 펼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인공이니까.

맥베스의 주인공은 확실히 그녀다. 야심만만. 탐욕의 결정체.

마녀들의 예언처럼 남편이 영주가 되자 예언을 혼자 확대해석하기 시작한다.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 앞에, 어차피 될 왕인데 뭘 기다려? 왕을 해치고 스스로 왕이 되면 그만이지.

결심하는 레이디 맥베스.

 

기타선률과 허밍, 시를 낭송하는 듯한 대사톤, 그리고 시니컬한 분위기.

극은 점점 장르가 묘해지는데, 또 묘하게 몰입하게 된다.

 

전공을 치하하고자 맥베스의 집을 찾은 덩컨 왕은 자신의 후계자로 맬컴 왕자를 지정하고,

마녀들의 예언은 이게 아니었는데... 싶은 배신감과

어서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라는 아내의 속삭임.

맥베스, 그도 이 말에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갈등한다.

덩컨 왕은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사령관의 지위를 내려주었는데.

전공을 치하하며 영지를 내려 영주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는 내집에 온 고귀한 손님인데...

그러나 맥베스를 부추기는 그의 아내.

갈등하는 남편의 등을 떠밀어 결국 왕을 죽이게 한다.

맥베스, 니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너를 믿고, 너를 높이고, 나를 맡기고, 왕좌를 뺀 나머지를 다 주려 한 나에게...

왕의 애원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맥베스는 칼을 휘두른다.

 

소식을 들은 맬컴 왕자는 도망가고

예언에 의하면 자식들이 왕이 될 것이라 했던 벤쿠오마저 없애버리는 맥베스.

둘은 모든 것을 차지한 기쁨에 취한다.

과도해 보이는 기쁨의 몸짓.

그 몸짓은 어느 새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간지러움으로 바뀐다.

죄책감과 후회. 환영에 시달리는 두 사람.

 

마녀들을 다시 찾은 맥베스.

맥더프를 조심해. 

여자가 낳은 자식은 아무도 맥베스를 해치지 못해.

성문 앞 숲이 성 안으로 들어올 때까진 맥베스는 안전해.

 

그래? 그럼 맥더프를 죽여야지. 그의 처자식을 죽여라.

매우 시니컬한, 독백같은 대사로 흘러가는 급한 전개들.

점점 미쳐가는 듯한 맥베스와 그의 아내.

급기야 맥베스는 아내를 원망한다. 니가 하자고 그랬잖아. (에잇, 찌질한 자식)

그의 아내 역시 정신이 혼미해진다.

( I'm a fool to want you가 몽환적으로 흘러나온다)

 

덩컨 왕과 벤쿠오의 영혼이 맥더프에게 깃들어 있다.

게다가 맥더프는 여자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여자의 배를 찢고 나온 자식이란다.

제왕절개로 낳았다는 얘긴가? 이건 좀 허무하잖아.

 

성문 밖 군사들이 나무로 위장을 하고 성문 안으로 들어온다.

마지막이 왔음을 인식한 맥베스는 예언을 받아들이듯 담담히 싸움터로 나간다.

 

I have a dream이 깔리는 커튼콜.

 

 

 

애초에 예언 따위가 없었으면 초래되지 않았을 비극이다.

맥베스는 충직한 신하였고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것으로 그 둘은 좋았으련만

예언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탐욕의 얼굴은 뻔뻔하다.

인간의 도리를 잊은 짐승만도 못한 추악한 결말만이 기다린다.

애당초, 기다리지도 않은 예언은 왜?

그러나 곧 예언은 중독성을 띠게 된다.

비극의 결말로 멱살잡아 끌고 가는 중독.

 

차라리 맥베스나 그의 아내가 끝까지 악인이었으면 어떘으려나.

어설픈 가책 말고 끝까지 내면의 괴로움이 없는 파렴치한이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라나?

세익스피어가 인간의 많은 감정을 담으려고는 했지만

아마 요즘의 사이코패스같은 사람들은 그 시절에 겪어보지 못했겠지 싶기도 하다.

 

 

이 시대에,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흥미롭다.

왜 지금 맥베스인가, 하필 지금.

연극을 관람하던 그 때에는 설마... 했던 일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를 그래서 이렇게 애매한 코믹으로 

비극인 척하는 희극물로 다룬 것인가 싶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연출이 천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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