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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금조 이야기 - 20220406

by lucill-oz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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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관극, 그리고 백성희장민호극장.

여유있게 일찍 도착하여 좌우 붉은 마당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기울어지는 짧은 저녁해가 금방 기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극장 안에서 이 작품의 대본집을 판매하고 있는데 단행본 한 권이다.

공연시간이 260분이라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장.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던 금조는 신기슭의 메밀밭에서 전쟁을 맞는다.

집에 두고 온 아이 생각에 집으로 달려갔지만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아이를 데리고 피난을 갔을까? 아이가 엄마를 찾아가다 길이 어긋났을까?

어쨋거나 피난민의 무리를 따라 집을 나선 그녀는 7개월이 흐른 엄동설한에 예전 주인을 찾아온다.

 

여주인은 금조를 반긴다.  못 본 사이 그녀는 변해있다. 

낮술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사교클럽(낙랑클럽)에도 다니며 전쟁이 준 새로운 기회에 들떠있다.

남자들처럼 멋지게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지만 아직 서툴다.

'매리언 모'(모윤숙) 에게는 아무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녀가 그 메리언 모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조가 딸아이의 행방을 묻자 여주인은 심드렁해한다. 

피난을 가야 하는 줄을 알고 있었을텐데, 산 하나를 넘어가야 있는,

싹도 안나는 돌밭에 왜 메밀씨를 뿌리게 했느냐는 금조의 원망에 

처음엔 금조를 반겨하던 여주인은 그녀를 쫒아버린다. 

금조 대신 새로 온 듯한 여인이 금조가 데리고 다니는 들개 때문에 알러지가 있는 듯 연신 재채기를 하며 긁적거린다.

아, 반전의 여인!

 

표범 아무르. 엄마와 숨박꼭질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산엔 불이나고 엄마가 보이질 않는다.

엄마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숲은 사라지고 보금자리가 있던 자리엔 수력발전소가 세워져있다.

그 곳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손을 내민 인간들을 처음 만난다.

 

기차가 서지 않는 기차역엔 역무원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기차들은 모두 전쟁터로 간다고 한다.

저런, 기차엔 어린 아이도 있던데... 아일 전쟁터에서 빼내올 수는 없을까... 

금조는 아이를 안타까워하지만 역무원은 그 아이가 가난한 집에서 입하나를 줄이려고 자원입대를 했으리라고 말한다.

군번줄도 받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같은 또래 아이들을 향하여 총구를 겨눠야 하는 현실.

한창 엄마가 그리울 나이의 소년들이 속절없이 총알받이가 되고 만다.

 

금조의 옛 여주인. 푸념을 들어보니 흥청망청 있는 티를 내고 다니던 그집은

아마도 누군가의 밀고로 공산당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편은 목숨마저 잃은 듯 하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이기지도 못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일까.

술에 취해 횡설수설 정신을 못차리더니 1등석 기차표 한장을 남기고 쓰러져 죽는다.

도망갈 마음이 급했던 여종은 옳다구나하며 그녀의 겉옷을 벗기고 머플러를 벗기고 기차표를 챙겨서는

여주인을 버려둔 채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평소 그녀의 태도를 맘에 들어하지 않던 여주인은 그녀에게 쎄게 뒷통수를 맞는다.

죽고 난 이후라서가 다행이지만.

 

표범 아무르는 수력발전소의 연구원 모리타와 노구치를 만나 그곳을 제집삼아 그들과 함께 지낸다.

사냥을 좋아하고 표범의 야생성을 좋아하는 모리타는 아무르가 사람을 사냥해도 모른척 넘어가려 하고

동료이자 친구 노구치는 아무르를 발전소 밖으로 내쳐야 한다며 아무르와 대립한다. 

사냥의 희생자는 발전소의 직원. 집으로부터 먼 길을 떠나와 이 곳에서 일하던 어린 친구였는데...

 

산길을 홀로 가던 금조는 친구의 시체를 끌고 다니는 남자를 만난다.

시체를 데리고 다니는 게 더 무서울까, 아니면 혼자 다니는게 더 무서울까.

혼자 다니는 젊은 여인에게 흑심을 품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은 친구 대신 낮선 곳에서 만난 여인에게 기대고 싶었을까.

이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차분하고 담담하여 신뢰감을 주었는데...

아, 이 남자를 욕해야 할지, 연민해야 할지 모르겠더군...

<전쟁은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살육하는 사건>이라 하더라고

남자가 무심한 말투로 던지는 말이 전쟁의 본질이다.

 

시인 모윤숙. 

고등학교 시절 6. 25 기념일에 실내조회시간에 방송실에서 차분하고도 낭낭한 목소리로 방송반 친구가 낭송해주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가 내가 알고 있는 모윤숙 시의 전부다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선동적이고 듣는 이의 피를 끓게 하는 반공시였구나 싶다.

좋은 환경의 수혜를 입고 살아온 그는 일제시대엔 친일의 옷을 입고, 전쟁이 나자 반공의 옷을 입고,

다시 친미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정권의 최측근 수혜자로 훈장까지 받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잘 살다 간 사람이다.

(참 이렇게 살기도 어려운 일인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먹듯 쉬운 일인가 보다)

그런 그녀가 라이벌 박마리아의 뒷 순서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하자 불쾌해 한다.

젊은 시인은 "해방과 함께 치워졌어야 할 얼룩"인 부역자인 주제에

반성을 커녕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그녀를 점잖은 말로 나무라며 곁을 떠난다.

 

금조는 어떻게 들개를 만난걸까, 야생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들개를 말이다. 너 들개 아니지?

그러나 어쨋든 둘은 서로의 유일한 길동무다.

금조는 들개의 코를 믿고 딸의 행방을 찾고 있고 돌봐줄 이 없는 들개에게 금조는 유일한 가족이다.

 

동굴에서 여인네들이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가족을 전쟁터에 보낸 여인들, 자신들이 만든 주먹밥이 가족에게 전해지길. 

간절한 바램을 담아, 그 심란한 마음을 오로지 주먹밥을 만드는 일로 풀고 있다. 서로를 위로하며.

그곳에 찾아든 금조는 주먹밥 한 덩어리 얻어먹은 댓가로 주먹밥 만드는 일을 돕고, 그녀들은 금조를 위로한다.

 

수력발전소의 책임자 모리타와 노구치. 

자신의 일에 충실한 노구치와 반대로 모리타의 관심사는 온통 표범 아무르와의 사냥에 빠져 있다.

아직 노구치는 아무르가 발전소 직원을 사냥한 일을 모르는 눈치다.

노구치는 아무르의 야생성을 걱정하고 모리타는 아무르가 야생성을 보일수록 좋아한다.

들개떼를 사냥하고, 점점 생식을 즐기며 표범의 본성을 찾아가는 아무르.   

그리고 그 피냄새를 함께 즐기기 시작한 모리타. 그는 이미 노구치에겐 옛친구 모리타가 아닌 듯 싶다.

 

군번줄도 없는 소년병들.

곁에서 죽어간 친구의 흔적을 수습하여 꼭 나라의 포상을 받게 하겠다던 우정의 마음은

어느 새 이기적인 마음으로 바뀐다. 친구의 공을 나의 공으로 하면 좀 안될까. 우리 가족들도 포상을 좀 받을 수 있게.

누가 그 마음을 나무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런 어린 소년병 역시 아무데나 쓰러져 죽어간다. 

그 위로 애국심을 조장하며 또다시 소년들은 전장으로 보내려는 시인의 웅변이 역겹게 들린다. 

 

여주인의 일등석 기차표를 들고, 여주인의 스카프와 겉옷을 입고 기차역을 찾은 여인은

더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역무원의 말에 절망한다.

이 좋은 일등석 기차표를 내가 쓰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한다면 아까워 어쩌랴.

기차도 서지 않는데 왜 역무원은 여기 계속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애닳다.

이 좋은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지키기 위해서란다. 

두르고 있는 치장과 어울리지 않은 그녀를 보며 단박에 그녀가 훔쳐온 물건들이라는 걸 알아차린 역무원.

기차가 지나가는 소음을 틈타 밧줄로 그녀의 목을 감아 납치를 해 간다. 기차 안의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반전의 놀라움보다도 더 서늘한 삶의 포악함... 뒷목이 서늘해진다.

인간의 어느 곳에 악이 내재하고 있다가 이런 모습으로 튀어나오는 걸까.

 

총감이 수력발전소를 찾아 둘의 노고를 치하한다. 덕분에 훈장을 받았다나.

그러나 발전량을 두 배로 늘리라는 총감의 요구. 북공남농 정책이라고.

총감이 훈장이 한 개라는 이유를 들며 '일단 노구치에게 달아줄께' 라고 모리타에게는 말하지만

은근 엔지니어로서 노구치의 공이 더 컷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관심도 보여주고.

여기가 개마고원이란다. 총감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숲에 숨어있을 게릴라들을 없애기 위해 숲을 전부 불태웠단다.

그리고 그 때 숲의 그 많은 동물들이 죽어갔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분노.

사냥을 좋아하는 총감은 아무르에게 관심을 보인다. 

 

전장에선 사람만 죽고 다치는게 아니다. 군수품으로 분류되는 군마도 마찬가지다.

큰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는 군마 폴은 차라리 고통을 오래 겪느니 누군가가 와서 나를 죽여주기를 바란다.

사냥감을 찾던 들개는 쓰러진 폴을 만나지만 들개가 사냥하기엔 좀.

폴이 보기엔 개는 아닌거 같은데. 너 개 맞냐?

 

굶주림에 쓰러질 듯한 금조는 빈 집인 줄 알고 남의 집으로 들어간다.

맘좋은 안주인은 금조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나 바깥주인은 냉정하기 짝이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낮으로 땅의 주인이 바뀌는 세상에 누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믿겠는가.

낮이면 산으로 들어가 숨어있다가 밤에만 내려와 잠만 자고 내려가는 생활.

금조는 고구마를 얻은 댓가로 메밀씨를 나눠준다.

맥아더 장군의 연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뭐라는 줄은 모르겠지만 맥아더가 연설을 하는구나.

금조가 그 집에서 어린아이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딸의 것이라 착각한다.

딸을 잃고 난 후에야 그동안 못해준 일들이 생각나 가슴아파하는 금조.

세상 모든, 자식잃은 부모의 심정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알고 보니 그 신발은 역시나 전쟁통에 자식을 잃은 그 집 부부의 아들 신발이라고 한다.

동병상련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부부는 신발을 가져가라고 한다.

 

옛날 이야기. 어린애들의 신발을 몰래 훔쳐간다는 신발장수 이야기. 근데 신발장수가 도둑질을? 

신발을 빼앗기면 안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아이가 사라진단다. 말하자면 도깨비 장난 같은 거다.

어느날 신발장수가 신발 하나를 훔쳐 갔으나 신발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자

궁금해진 신발장수가 신발 주인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신발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또 다른 아이의 신발을 훔쳐보았지만 아무도 신발을 찾으러 오지 않았단다.

그랬겠지...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아이들이 없으니...

동화가 아닌, 이건 현실이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지만, 사냥하지 않아도 먹을 것 걱정은 안해도 되지만, 엄마처럼 핥아주진 않는다고 말하는 아무르.

언젠가 사냥을 하다가 엄마를 마주치진 않을까. 

 

 

 

어린 여자아이를 잡아가려는 남자들. 말을 듣지 않자 협박을 한다.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라는 소문을 내겠다고.

세상에나, 이 어린 여자애한테 스파이짓을 강요한다. 

피난민들 속에 섞여다니며 떠도는 군사정보들을 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발각되면 죽음도 비껴가기 어려운 일이다.

25사단 8240부대. 래빗. 이 일은 나도 처음 들은 얘기다. 

슬프고, 서글프고, 분개스럽고, 안타깝고, 아픈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살다 간 사람들.

금조가 개를 찾아 '수력발전소'로 들어간다. 아니, 수력발전소였던 25사단 8240부대의 토끼굴이라고 그녀들이 말한다.

 

드디어, 노구치가 아무르가 발전소 직원을 물어죽인 일을 알게 되었다.

노구치는 아무르를 발전소 밖으로 쫒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모리타는 아무르를 감싸고 둘은 격렬히 대립한다.

모리타는 총감이 아무르를 좋아한다며, 총감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감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총감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라도 아무르를 버릴 수 없다는 모리타.

 

부모형제를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두려움에 몰려다닌다.

비록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이지만 만일 위험 상황이 오면 어른이라도 공격하겠노라 다짐한다.

 

본능처럼 수력발전소로 금조를 이끈 들개. 웬지 야릇한 느낌이다.

들개가 갑자기 고백을 한다. 너한테선 늘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머릿속은 늘 너를 사냥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그러더니, 자기 이름이 <아무르>라는 것이 생각났단다. 뭐지?

 

토끼굴로 제발로 찾아온 토끼를 마다할 필요가 있겠는가?

금조는 마치 신분증과 같은 수첩을 받아들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래빗'이 되어있다.

굳이, 토끼라 하지 않고 래빗이라고 한다. 

굳이, 같은 말을, 유창한 영어 문장도 아니고 짧은 영어단어로 바꾸어 말하면 웬지 있어보이던 시절.

아,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 쩝.

 

'매리언 모'를 매몰차게 떠났던 젋은 시인이 기차가 서지 않는 기차역에 나타난다.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하루종일 기찻길만 바라보는 역무원이나

떠오르지 않는 시상을 기다리며 빈 종이만을 바라보는 시인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 않냐는 시인의 자조.

그러나 역무원은 아마도 지난번에 기차역에서 납치한 여인을 겁탈하여 가두고 포주 노릇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인에게 놀다가라고 꼬셔보지만 시인은 여인을 풀어주라고 강경히 말하며

갑자기 화를 내는 역무원의 목을 졸라 그를 죽이고 만다. 역시 기차가 지나간다...

역무원... 처음엔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새 참 많이 변했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하긴 원래 나쁜 사람이 있겠는가.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좋게도 나쁘게도 변하게 하는 거겠지.

시인은, 지식인의 변절에 절망한 사람인데, 일개 역무원마저도 포주의 옷으로 갈아입고

저보다 약한 여인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는 데서 순간적인 역겨움을 느낀 듯하다.

연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하며 어쩔 줄 모른다.

무대가 아닌, 객석에 앉아 그를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매리언 모'의 목을 조를 일이지... 싶다.

분노가, 원인 유발자에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한 약자에게 향하는 인간의 보편적 찌질함.

 

발전소에 나타난 총감은 일명 해수구제사업, 즉 야생동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맹수들을 모두 없애라는 명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냥을 하려고 해도 허가증이 있어야 한단다.

모리타는 아무르가 아무나 죽이지 않도록 신호를 주어 훈련시킨다.

총감은 모리타의 지시로 조선인만 공격하는 아무르의 '인간 사냥'을 즐긴다.

사람을, 아무르가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죽이는 건가.

 

금조 역시 '토끼'가 되어 토끼들의 임무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딸을 찾은 길이니 피난민을 따라 다닐 것이 나쁠 것 없는 금조의 입장과

혹시라도 추문에 시달릴까 두려워, 그로 인해 어미아비를 욕보이게 될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따라온 소녀 영선은 그 입장이 다르다.

 

금조가 주고 간 메밀씨를 뿌리는 부부. 은근히 금조가 기다려진다.

메밀이 잘 되면,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죽은 아이들을 메밀밭 근처로 옮겨줄 생각도 해 본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메밀 씨앗이 가져다 준 작은 희망. 부질없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남편을 밀고 들어온 군인들. 그들이 국군인지 인민군인지는 부부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게 누구였던들 부부를 살려두었을까.

 

동굴에서 주먹밥을 만들던 여인들도 그 수가 줄어있다.

그녀들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거나, 전장으로 떠난 가족의 사망소식이 들려왔거나,

이제는 가슴에서 그 자식을 잘 보내주었거나... 그랬겠거니.

생사를 모르는 자식들을 향한 남은 어미들의 가슴은 애가 닳는다. 

굶고 다니는 이들이 다 자식같다...

 

'토끼'들이 뿔뿔히 흩어져 첩보활동에 나선다. 

어린 소녀 영선이와 한 조가 되어 첩보활동에 나서게 된다.

 

표범 아무르는 처음 만난 인간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이건 나한테서 나는 냄새인데? 피의 냄새인데.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다. 가까이 오기만 해 봐라, 가만 두지 않으리라...

맹수를 단속하러 총독부에서 나온 미야키는 아무르를 사살하려고 하고, 모리타와 대립한다.

둘은 서로 기싸움을 하고, 기어이 아무르를 죽이려 뒷마당으로 나간다.

순간, 모리타는 아무르에게 신호를 주어 그를 물어 죽이게 한다.

모리타와 아무르는 이제 하나같다. 내가 너고, 네가 나인 혼연일체같다.

 

영선과 첩보활동을 나왔던 금조는 어쩌다보니 적진 깊숙히 들어와 있다. 

결국 적에게 발각되고, 영선을 보호해주려고 같이 동행했던 금조는

처음에 먹었던 마음과는 달리 영선을 모르는 아이라고 선을 긋는다. 

결국 영선은 적의 총에 쓰러지고... 금조는......

또다른 토끼는 첩보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고아 아이들이 눈에 띄고, 

그냥 모르는 척 지나쳤으면 좋았으련만, 좀비처럼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희생당한다.

어른이라도 달려들겠다던 그 아이들에 의해.

 

금조는,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가 보지만 아무도 없고, 그 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다.

영선에 대한 죄책감.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는 모자란... 전쟁중에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사정들. 

죽은 영선이 금조에게 나타나 당신의 딸이 고향 메밀밭 언덕에 있었노라 말해준다.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어린 영선의 대사는 더 마음이 아프게 한다.

정신없이 떠나온 곳을 향해서 달려가는 금조.

딸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걸까. 딸의 이름을 금조라고 말해 버린다. 금조는 내 이름인데...

 

기차가 오지 않는 기차역에 젊은 시인이 역무원을 자처한다. 그도 이젠 뻔뻔해 보인다.

역무원은 어떻게 했을까, 여인은 풀어주었을까 궁금해진다.

아무르는 여전히 금조와 함께 다닌다. 아무도 들개로 보진 않지만.

들개의 이름이 아무르라고 하자 시인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어릴 적 근처에 일본사람들이 살았는데 원래 숲이었던 곳에 수력발전소를 지었더라고.

그러다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숲에 가면 무서운 신발장수가 신발을 가져간다고. 그러니 숲에 가지 말라고.

아마도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려니 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몰래 뒤쫒아 갔는데

정말로 네발 달린 신발장수가 나타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해쳤노라고. 

놀라 도망가는 그의 뒤에선 아무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 눈빛은 살벌했었는데... 많이 닮았네요.

그 소리에 금조가 놀라 기차역을 떠난다.

 

노구치는 변해버린 모리타 때문에 괴롭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아무르라고 생각하는 노구치는 자신이 직접 아무르를 죽여야겠다고 말하며 모리타를 비난한다.

넌 이제 살인마야, 그것도 네 손이 아닌 짐승을 빌어 간접살인을 하는, 피냄새 나는 살인마.

둘의 갈등이 절정을 달하는 순간, 몸싸움을 하던 노구치는 실수로 모리타를 쏘게 되고

모리타는 아무르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젠 혼자 살아가야하는 아무르에게 이제부턴 본능을 죽이고 개처럼 살아가라고 말하는 모리타.

모리타는, 아무르를 위해 많은 훈련을 해 두었구나.

 

아무르는 모리타의 유언대로 발전소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갈 곳 없기는 어릴 때나 마찬가지.

이젠 표범 아무르가 아니라 이름도 없는 들개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개처럼 작게 살다보니 정말로 개가 된 듯 하다. 사냥도 못하고, 사냥을 해도 다 빼앗기기 일쑤고.

제집같던 숲은 두려운 곳이 되고, 어딘지도 모를 산기슭을 헤매던 어느 날

메밀씨앗을 뿌리는 인간을 만나게 되고 해가 지길 기다려 그녀가 뿌려놓은 씨앗을 손쉽게 파먹는다.

그런데 그녀는 다음날 같은 자리에 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닌가. 눈까지 마주쳤는데...

그녀는 알면서도 씨를 뿌려주었을까, 나 먹으라고?

아, 금조였구나......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산을 내려간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몰려간다. 아무르는 이제 금조를 따라 가기로 한다.

아, 그렇게 해서 금조가 들개를 데리고 다녔던 거구나.

 

아무르가 금조를 부추기며 메밀밭 근처까지 다 왔지만, 며칠을 굶은 금조는 탈진하여 쓰러진다.

딸이 죽었을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금조는 이제 체념을 한다.

정신을 잃어가는 금조에게 아무르가 자기를 죽여 잡아먹으라고 한다.

아니, 그럴 순 없어. 널 좋아하니까. 아......

둘은 서로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오열한다.

 

 

 

1막에선 전쟁중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굵직한 사건과 인물들. 그러나 그들과 별 관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2막에선 1막에서 풀어놓은 많은 에피소드를 하나씩 마무리한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구성이었다.

 

전쟁을 관통하는 여러가지 사건들 속에서 당연히 힘없는 많은 백성들은 비극을 겪고, 
그 와중에도 빠른 태세전환으로 권력을 잡은 무리도 있고, 
그 권력의 근처에라도 닿으려는 무리도 있고, 
뜻밖의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는 사람도 있고,
살아온 이력을 송두리째 갈아엎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이도 있고, 
평생 스스로 선택할 일 없는 삶을 강요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갯속을 살아온 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들은 발전의 명목으로 동물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살육했다.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가운데 아무르 표범은 동네의 들개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아무르의 모습은 그가 표범의 모습으로 살며 만나왔던 많은 인간들과 다르지 않았다.
전쟁이란 그렇게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게 그들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엎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개인의 작은 다툼도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하는데

누가 이기고 누가 지던, 전쟁이란 일방적일 수가 없는 서로의 상처로 남는 법이다.

그것도 전쟁을 해야할 아무런 명분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을 뿐이고

전쟁을 명한 자들은 그 수혜를 서로 나눌 뿐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의 배경이나 그와 연관된 배후,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수많은 서로의 계산중에 과연 국민들은 있는가.

뭘 결정할 권한도 없고 결정할 의사도 없는 사람들이 왜 그들(전쟁을 결정한 자)을 대신하여 싸워야 하는가.

어떤 명분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인생을 담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매리언 모의 토나오도록 역겨운 궤변과 다를 바 없다.

 

 

금조 역의 윤현길 배우. 

네 시간이 넘는 긴 공연시간을 한 호흡으로 이어가 준 배우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표범 아무르 역의 이은지 배우는 표범의 몸짓을 잘 표현해주었다. 어린 표범의 목소리와도 어울렸다.

금조와 모리타, 표범 아무르 역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1인 다역을 소화했다.

특히 들개 아무르는 배우가 계속 바뀌니까 탈을 써도 처음엔 좀 헷갈렸다.^^

문예주 배우는 특유의 저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인 역을 할 때는 카리스마랄까 목소리에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남, 여를 불문하고 내가 저음 배우들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ㅎ

가정부 역의 박옥출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감초 연기가 무거운 극에 웃음을 주었다.

낮익은 목소리의 박용수 배우. 

시신을 끌고 다니는 남자와 노구치 역의 윤성원 배우는 그 발성의 톤과 어조가 매우 독특하게 들렸다. 

 

수고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 커튼콜 사진 촬영도 포기하고 나오기 전에 급히 한 장 찍어본 무대.

 

 

 

넷플릭스나 디즈니같은 OTT기업들이 투자해서 드라마로 제작해도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미국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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