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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불가불가 - 20220408

by lucill-oz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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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불가불가>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을 찾아가는 길.

실로 오랫만에 차를 놓고 지하철로 이동,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공사중인 큰 길을 피해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문득 우동집이 시장기를 자극한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면이 땡기다니, 그것도 강렬하게. 일찍 나오길 잘했네.

표를 찾고 나서, 혼자이지만 저녁을 좀 먹어야겠다. 

 

 

세종 광장 앞 건물에 낮익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가을.

SINCE 1983이라니까 내가 알던 그 가을이 맞구나. 반가웠다.

35년전, 여기 같이 왔던 사람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저녁을 먹고 나오다 눈길을 돌려 오른쪽을 보니 카페 <봄>이 있다.

광화문엔 사계절이 다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겨울이 있었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평소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내가 이런 소소한 일이 떠오르다니.

그것보다, 그것이 물경 35년전이라니, 여러모로 당황스럽다.

 
 

 
 
불가불가.
 
그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느낌이어서 보고싶었던 작품이었다.
 
제목이 낮설지도 않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1987년 초연작이라니...
 
내가 이 거리에 자주 오가던 시절이었구나. 이것 참, 공교롭네...
 
 
 
아주 재밌는 형식의 연극이다.
 
극중극 형식인데, 그것이 연습장면을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시작도 이미 막이 다 열린 상태에서 배우도 무대에 올라와 있고 객석의 불도 끄지 않은 채로 그냥 시작한다.
 
배우들은 대사를 맞추며 각자 몸을 푼다. 아, 그래. 배우는 몸 움직임이 중요하지.
 
똑같은 대사를 몇 번씩 되풀이하는데 그냥 감정없이 주고 받는 것이 웃기기도 하다.
 
연출역의 배우가 장면지시를 하며 하우스 아웃, 작업등 아웃! 하면 그 때만 불이 꺼진다.
 
진짜 내가 공연을 보는 건지 리허설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재미는 있다.
 
 
 
크게 나눠보자면 무대 한 축에선 백제. 계백장군 역의 '배우 1'이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부인의 목을 쳐야 하는 씬.
 
단호한 부인과 망설이는 계백을 연습 중이다.
 
그리고 다른 쪽에선 조선, 난을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는 신하와 그럴 필요 없다는 또 다른 신하.
 
그리고 구한 말, 을사조약을 앞두고 서명을 강요당하는 대신들이 있다.
 
아, 병자호란 씬도 있었다.
 
만일 왕이 확고한 자기 주관이 있었다면 자신의 소신대로 밀어붙이고 그 책임을 지면 그만이련만
 
그렇지 못한 왕은 이런 의견과 저런 의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지막 신하에게 그 의견을 묻는다.
 
다수결에 따르겠다는, 너희들이 결정했잖아~ 라고 책임을 대신들과 나눠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 사이에서, 그 두려움을 안고 '배우 5'는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대답을 한다. 불가불가...
 
아니, '불가불,가'요, 아니면 '불가, 불가'란 말이요.
 
내 대답에 따라 그 책임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니 그 역시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쩔 수 없지만 해야 할 '불가불, 가'한 경우와, 어떤 상황이라도 해선 안될 '불가, 불가'한 그 첨예한 대립의 상황에서
 
'불가, 불가'하다는 측은 하나씩 그 자리에서 제거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으로는 '불가, 불가'이지만 입으로는 '불가불, 가'라고 말하고 마는,
 
그리하여 화를 피하는 사람을 보며 마지막 남은 사람은 '불, 가불가'를 모호하게 중얼거릴 수 밖에 없기도 했겠지만
 
그 말이 하필이면 '불가불가' 네 자란 말인가.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직전.
 
부인은 적에게 능욕당하느니 당신이 날 베고 가라며 결연한 모습으로 정좌하는데
 
극 중 계백장군 역을 맡은 젊은 배우1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헤메자
 
연출이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계백은 지장, 덕장, 용장을 다 합친 성장이야.
 
연출의 디렉팅을 받으며 점차 감정이 고조된 '배우1'이 올라온 감정을 주체 못하며 강변한다.
 
아니, 차라리 무능한 간신들을 죽이던가 해야지, 왜 죄 없는 부인을 베어야 하냐고.
 
순간, 웃음이 났지만 그의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자식을 베고 나가야 할 만큼 이길 승산없는 싸움에 나가는 장수라면,
 
망해가는 나라를 위해 마지막 충성을 바치기 위한 처사였다면
 
차라리 입만 산 왕과 문신들을 베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의자왕 역시도 죄없는 궁녀들을 데리고 죽을 게 아니라(궁녀가 삼천명이었던, 궁녀 이름이 삼천이었던)
 
무능한 정치쟁이들과 함께 죽자고 했어야 맞는 게 아니었냐고. 아니면 자기도 나가 싸우다 죽던지.
 
듣고 보니 나까지 잠정이입이 확 되면서 열이 받네.
 
그래, 결국 이쪽 씬의 계백이 '배우1'은 죄 없는 아내의 목을 치는 대신, 
 
'불가불 가'인지 '불가,불가'인지를 모호하게 흐리는
 
저쪽 씬의 '배우5'에게 칼을 휘두르고 오합지졸 군사들을 하나로 모은다.
 
계백이 각성! (문제는 그 칼이 진검이라는 설정이다!)
 
아니, 누구는 처자식까지 죽이고 나 역시 전장에서 죽겠다는데
 
옆에서는 지목숨 하나 구걸하자고 불가불가나 중얼거리는 꼴을 보자니 어찌 계백이 열받지 않겠는가.
 
물론 역에 몰입해 현실상황인지 극중 상황인지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긴 해도 말이다.
 
그 순간은 '배우 1'이 배우로서 계백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가를 각성한 순간이기도 하고
 
계백이라는 캐릭터를 극중극으로 보고 있던 나는 그래, 저렇게 했어야지!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속이 다 시원하다.
 
 
 
역사의 큰 사건이 때로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도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결정, 아주 사적인 이유로 내리는 결정.
 
만일 나라면, 극장에서는 편안히 앉아 재밌게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웃고 있지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최대한 내 안의 우유부단함을 발휘하여 '불, 가불가' 했을까,
 
아니면 내 안의 다혈질을 최대한 끌어내어 '불가, 불가' 했을까.
 
아니면 최대한 현명하게 현실에 순응하자고 생각하며 '불가불, 가'라고 했을까.
 
 
 
계백의 아내가 살아 남았었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명예를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것도 그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에겐 그렇게 들렸다.)
 
독립군의 아내는 무사히 독립을 맞이하여 잘 살았겠는가.
 
해방된 이후의 삶이 더 힘들지 않았겠는가를 쉽게 가늠해 본다. 슬프게도...
 
그 때,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여 외세침입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었다면 우리 역사는 바뀌었겠는가.
 
을사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그의 이름이 을사 5적이라는 불명예를 안진 않았겠지.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타이밍. 그 마지막 선.
 
그걸 넘겨 변신을 꾀하는 순간 그의 본질이 변하는 예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커튼콜 동선까지 연습하는 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처음부터 끝까지 리허설 무대로 보여준다.
 
연극을 만들때, 이런 점들을 고민하겠구나 하는 지점들을 관객들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아이고, 이래서 내일 첫공 무사히 올리겠어?하는 오지랍도 부려보고.^^
 
 
 
 
2009년 공연 자료를 인터파크에서 찾아보았다.
 
그 때는 쟁쟁한 중견배우들이 (현재는 원로급) 많이 나왔었구나.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뭐랄까, 더 스팩터클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감독 역은 (당연히) 남자였고, "여배우 역의 여배우"는 반라로 연기하는 씬이 있어서 이슈였다고.
 
당시 채윤일 연출의 인터뷰를 보니, 세계적 추세에 뒤지지 않으려면 그깟 탈의가 뭔 문제냐,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여배우가 가슴 노출을 해도 난 아무렇지 않더라고 했던데...
 
남자 가슴이랑 여자 가슴이 성적 의미가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겠는가.
 
동료 배우와 연출만 괜찮으면 다인가, 수많은 불특정 관객에게도 동일하게 그렇게 느껴질 것인가.
 
그것이 여배우들에게는 폭력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못하거나 혹은 안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 
 
남자 배우에게 상의 탈의는 별 이슈가 되지 못한다.
 
때로 그것은 그 남배우의 남성적 매력을 별로 자극적이지 않게 노출시켜준다. 쵸콜릿 복근이니, 씩스팩이니 하면서.
 
하지만 하의탈의까지 하라고 하면 주저할 배우들 있을껄? 물론 삼각팬티까지는 입은 배우들이 많다.
 
솔직히 이런 부분은 내 생각이 바뀐 건지, 아니면 그야말로 요즘 추세가 바뀐 건지 모르겠다.
 
연극 '에쿠우스'는 여배우의 전라씬이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무대에서 배우들이 심적 부담감을 느끼면서까지 연기하게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리얼리티를 위해서라지만, 그 리얼리티를 위한 장치만 남고
 
리얼리티를 추구하면서까지 보려주려고하는 그 본질이 눈에 덜 들어올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일반 관객들한테는.
 
그 장치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는 남자 배우에게 치마를 입혔다.
 
여배우 고문씬을 불편하게 보는 관객들도 있으니까 라고 하며.
 
뭐, 고문도 고문이지만 아마도 그 때처럼 했다면  이러저러한 이슈에 분명히 또 말들이 많았을 것이고
 
어쩌면 연출이 그러 지점을 의도적으로 피해가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군 아내 고문씬은 진지하지 않게 넘어갔지만 메시지가 훼손되진 않았다고 본다.
 
 
 
같은 대본이지만 해를 달리하여 올릴 때마다, 연출과 배우들이 바뀔 때마다, 해석과 설정이 바뀔 때마다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또 재공연의 매력이다.
 
초연을 충실히 재연하기도 하고, 전혀 달라지기도 하고.
 
예술에 있어서 "해석"이라는 것은 또 다른 창작의 분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 중에는 자유로운 해석을 허락하는 작가도 있고
 
절대 불허하거나 자신이 지정하는 연출과만 작업하려는 완고한 작가도 있는 거겠지.
 
연극 <닭쿠우스>를 정말 재밌게 보았었다.
 
에쿠우스의 패러디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광고하며 치킨의 계보를 외우던 그 닭쿠우스를 만든
 
이철희 연출의 작품이라는 것이 전체적으로 느껴져서 더 재미있었다.
 
무겁지 않게, 아니 어쩌면 조금 우습게 던지는 메시지는 절대 가볍게 전달되지 않았다. 
 
 
 
연극은 시대정신이라고 했던가
 
극장을 나오면서 아, 불가불가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해를 입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누구나 눈을 내리깔고
 
염불 외듯 불가불가불가.....를 중얼거려야 할 공포의 시대 말이다.
 
초연 역시 그런 시대에 공연되었으니...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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