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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 20131204

by lucill-oz 201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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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안에 막이 없었다.

다 열려진 무대 위에, 개막 시간이 가까워지자 한 명 두 명씩 배우들이 나와 이 구석, 저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이건 뭐지? 하는 중에 암전으로 서곡이 시작된다. 아름답고 웅장하고 정열적이고 긴 서곡...


무대 위쪽의 문이 열리고 세르반데스가 입장하면서 무대는 곧 감옥 안이 된다.

세르반데스는 시인이자 극작가이고 또 세금 걷는 일을 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하여.

그런 그가 수도원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건물에 압류장을 붙이고 잡혀 들어온다. 그의 하인과 함께.

그는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언제 받게될 지 모르는 종교 재판을 기다리게 된다.

감옥 안에는 이미 많은 죄수들이 가득 차 있고 그들은 신참 죄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가 쓴 대본과 소품, 의상이 든 가방을 빼앗고 대본을 찢어버리려고 하자

세르반데스는 '도지사'로 불리우는 그들의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변론하기 위해서 그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인 '공연'의 형태로 그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곳의 죄수들을 참여시켜 극을 시작한다.



세르반데스는 바로 소품가방에서 의상과 소품을 꺼내 분장하여 라만차의 늙은 사나이 '알론조'가 되고

그의 하인은 알론조의 하인 '산초'가 된다.

알론조는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신을 부패한 현실에 대적하여 싸우는 정의로운 기사 '돈키호테'라고 믿어 버리고

그의 충성스러운 하인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를 진심으로 모시는 산초.

(그가 있어 이 이야기는 더욱 먹먹해진다.)

그는 풍차를 괴수라고 생각하여 덤벼들고, 여관을 성이라고 믿고, 여관주인을 성주라고 칭한다.


여관의 하녀 알돈자는 독한 캐릭터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여관에서 억센 사내들을 상대하며 거친 세상을 살아온 여인이다.

그녀가 일하는 여관을 성이라고 착각하여 찾아 들어온 돈키호테와 산초.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그녀를 숭배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미친사람 취급할 뿐이다.

    

한편 알론조의 조카 안토니아와 그의 정혼자 까라스코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그에 대한 소문이 집 밖으로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면서도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돈키호테는 산초를 보내 자신의 '레이디 둘시네아'에게 '서한'을 보내 사랑의 증표를 원하나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지저분한 걸레조각 한 장을 건네준다.

알돈자는 멀쩡한 산초가 왜 정신이 이상한 주인과 같이 다니는지 궁금해 하지만

산초는 그냥 "주인님이 좋기 때문"이라고만 한다. 바보같이도... 

알돈자는... 비록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지만 

스스로 보잘 것 없다 여기는 자신을 '레이디'라 불러주는 그에게 점점 관심이 간다.


이발사의 면도 대야를 황금투구라고 믿는 돈키호테.

여관으로 알론조를 찾아 온 까라스코와 신부는 심각한 그의 상황을 확인하고...

까라스코는 그를 환자로만 바라보지만 신부는 그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그의 꿈을 본다.


아직 정식 작위를 받지 못한 기사 돈키호테는 영주라 믿는 여관주인에게 기사작위를 내려줄 것을 청하고

착한 여관주인은 그가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맞춰 기사책봉을 내려주기로 한다.

경건한 기도로 기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돈키호테!


하느님, 오직 나의 정신만을 소유하겠나이다.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되어질 모습을 연모하나이다.

어리석은 환락을 추구하지 아니하나이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언제나 앞을 바라보겠나이다.

사내들에게는 정정당당하고 여인들에게는 예의를 갖추겠나이다.

오직, 그 분 만을 위해 행하며, 오직 그 분 만을 품고서 살아가겠나이다... 둘시네아!


그녀는 그의 전부이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그녀와의 안타까운 대화...

왜 이런일을 하느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이라고...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바라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된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 할 때까지

나의 저 별을 향하여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기다리고 있던 노새끌이들을 보고는 

그의 레이디를 괴롭히는 악당들이라 여기고 그들과 일전을 벌인다.

돈키호테 때문에 시끄러워진 여관주인은 그의 청원대로 

'슬픈 수염의 기사'라는 이름으로 기사책봉을 내려준다. 

다친 노새끌이들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보겠다는 돈키호테를 대신해 

좋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간 알돈자는 성난 노새끌이들에게 그만...
그녀는 다만 늙은 몽상가의 꿈속에서만 레이디였던가... 
무너져내리는 그녀의 슬픈 현실...

한편, 기사작위를 수여받고 길을 떠나는 돈키호테는 기사로서의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데
그 순간, 감옥의 문이 열리면서 끌려나가는 여인...

극이 잠시 중단되고, 그들은 세르반데스에게 묻는다. 라만차는 어떤 곳인가?
그들의 대답은 텅 빈 곳, 허허벌판, 사막, 황무지, 미친놈만 생겨나는 땅...
그러나 세르반데스는 그들을 미치광이라는 이름 대신에 "꿈을 쫒는 사람들" 이라 말한다.
그는 왜 시인들은 미치광이들에게 열광하는가 묻는다.
그들은 현실에 등돌린 자들이다, 인생은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며 살아야 한다고...
세르반데스는 답한다. 사는 동안 늘 삶을 직시하고 살아왔지만 그가 바라본 세상에서
불행과 기아와 전쟁과 공포속에서 살다 죽어간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모두 고통스러웠고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서, 왜 이렇게 죽는가가 아니라
이렇게 죽기까지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을 보았노라고. 
정말로 미친 것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라고.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미친 짓이라고.

극은 계속되고 돈키호테와 산초는 다시 모험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해바라기가 만발한 들판에서 만난 무리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내주고
심지어는 입던 옷마저 벗어주고도 함께 춤추며 행복해하는 돈키호테...
결국 여관으로 되돌아온 두 사람에게 여관 주인은 
세상의 악이란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제 좀 그만두라 타이른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결과보다도 노력이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니 자신을 만류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 그의 앞에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알돈자.
그녀는 돈키호테가 원망스럽다. 
자신에게 잠시 동안이라도 레이디로서의 꿈을, 희망을 갖게 했던 그가 말이다.
 
돈키호테 앞에 '거울의 기사'라는 자가 나타나 노인을 조롱하며 결투를 신청한다.
그는 돈키호테를 둘러싸며 거울을 들이댄다.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거울 속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초라한 늙은이가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던 돈키호테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거울의 기사는 다름아닌 까라스코.

그 순간 세르반데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극은 끝난다.
그러나 좀 더 나은 결말을 원하는 배심원들과 재판장의 요구에 따라
잠시 고민하던 세르반데스는 새로운 결말로 극을 이어간다.

까라스코에 의해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지난 모험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그를 마음으로 위해주는 이는 오직 산초 뿐.
죽음이 가까와짐을 느낀 알론조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려는 순간
그의 '레이디 둘시네아' 알돈자가 그를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을 레이디로 대해주었던 '기사 돈키호테'로 인해 새로운 자신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알론조.
알돈자는 그가 그녀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로 그의 기억을 깨우고
그는 그녀와 함께 다시 기사가 되어...... 영면한다.
알론조는 죽었지만 '기사 돈키호테'의 영원한 삶을 믿는 알돈자, 아니 둘시네아... 

진짜 종교재판을 받으러 감옥을 떠나는 세르반데스.
'당신과 돈키호테는 형제'라고 말하는 '그들의 재판관'에게 세르반데스가 답한다.
"하느님, 도우소서. 우리 모두가 라만차의 기사입니다"


웃음도 많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감수성 풍부한 '그' 역시^^.
오십이라는 숫자의 나이를 앞두고 들여다보는 "꿈" 이야기.
스스로 접었다 생각했었고, 그러다가 불쑥 고개를 쳐드는 그것을 
황망히 집어넣고 단속하기 바빴을 사십대들에게 있어 
돈키호테의 대사들은 마치 심장을 찌르는 듯 하다.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한가지 대답을 돈키호테가 말해주고 있다.
살다보면,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게 현실이다.
가끔은... 기억해내고 새겨볼 일이다...

세르반데스, 그리고 돈키호테역의 조승우.
무대 위에 조승우는 없었다. 오직 완벽한, 라만차의 늙은 기사 돈키호테가 있었을 뿐.
김선영 알돈자.
아무리 연기라지만 이런 여인이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일텐데...
그녀 역시 알돈자 그 자체였다. 
정상훈 산초.
배역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천연덕스럽게 웃음을 주는 좋은 배우다. 


고전이 왜 고전인가.
쟝르를 막론하고, 작품이 만들어진 때의 정서를 오늘날에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고전이 될 수 있다.
옛날엔 그랬었지 하는 얘기가 아닌, 오늘날에도 그대로 대입되는,
그래서 그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수 있는 그런 작품들.
세르반데스의 원작은 1605년에 발표되었었다.
그런데 사백년이나 더 지난 지금에도, 
스페인 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가슴을 적셔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소리니까...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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