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티켓 이벤트 당첨의 행운!
원래 17일 공연이었으나 너무 정신없이 바빴던 그날, 못가서 발을 구르며 아쉬워했는데
다음날 이벤트 담당자분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날에 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이렇게나 고마울 수가!!!
감사한 마음으로 친구와 대학로 데이트에 이어 의미있는 관극을 했다.
가사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대충 종교전쟁이 배경이라는 느낌을 주는 음악으로 시작하더니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이베트 역의 윤소희 배우가 나와서 친절하게 배역을 소개한다.
이렇게나 친절한 연극은 처음이지 싶다.
전쟁통에서 마차를 끌고 다니며 이런저런 잡화를 팔아 살아가는 억척어멈 안나 피얼링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첫째 아일립은 대담하고 총명한 아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신사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군인이다.
둘째 슈바이처카스는 성실하고 정직하다. 아버지는 헝가리 남자 혹은 스위스 남자라는데,
전쟁 통에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막내딸 카트린은 말을 하지 못한다. 착한 아이다. 반만 독일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일명 패치워크 패밀리, 조각보 가족이다.
어느날 아일립이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슈바이처카스 역시 병사가 되길 원한다고 한다.
엄마는 아이들의 운명을 점쳐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장점 때문에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다.
대담하고 총명하며, 성실하고 정직한, 그리고 착한 마음씨 때문에 말이다.
결국 아일립은 전쟁터로 떠나고 억척어멈 역시 남은 아이들과 다른 곳으로 떠난다.
"저 배우예요" 라는 말로 억척어멈 역의 이연순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배우가 되어 1984년에 연극을 시작하였지만 시모의 반대로 잠시 중단했다가
연극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해 2년 후인 86년 연우무대를 통해서 다시 돌아와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 보니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아 또다시 연극을 접고 오리털이불 외판을 시작했는데
태섭이라는 친구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구매해주어서 그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고.
비록 할부로 끊은 그 이불값은 첫 달 밖에 받지 못했었지만.
군대의 출납업무를 맡게 된 성실한 슈바이처카스.
금고를 잘 지키려고 한 일이 잘못되어 빼돌리려 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군인들의 움직임을 눈치챈 카뜨린은 말을 할 수 없으므로 다급한 사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슈바이처카스는 금고를 지키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그 성실함 때문에 오히려 곤경에 처하고 마는데
슈바이처카스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뇌물 밖에는 없다고 판단한 억척어멈.
돈이 없는 억척어멈 앞에 그녀와 비슷한 처지로 살던 이베트가 대령의 여자가 되어 마차를 사려고 찾아온다.
전 재산인 마차를 저당잡힌 돈을 다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 억척어멈은 어떻게든 적은 금액으로 흥정을 하려 하지만
이베트가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 슈바이처카스는 그만 총살을 당하고 만다.
적은 돈이나마 남겨보려했던 억척어멈, 결국 자식의 목숨을 내주고 만다.
아일립, 슈바이처카스 역의 김의환 배우가 나와서 군대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탱크에 둥지를 틀었던 귀여운 새를 보는 낙으로 살던 그에게 어느날 고참이 새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절단기로 다리를 자르고, 결국은 기름을 뿌려 태워 죽였단다.
그러더니 그에게 와서 네가 가져온 것이니 네가 죽인 것이라고 말하더란다.
그 못된 짓 하던 동갑내기 고참이 영창을 가면서 자기에게 사과했단다. 미안했다고.
(이건 쫌 거짓말 같은데? 너무 극적이잖아)
지금 뭐하나 찾아봤더니 잘 먹고 잘 살고 있더라고.
억척어멈은 평화가 오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삶의 터전은 이미 전쟁통이다.
전쟁이 끝나면 그 삶의 터전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 평화가 너무 빨리 찾아온다면 그녀의 평화는 멀어지게 되는 것.
군대목사가 그녀에게 호의를 품고있긴 하지만 그녀가 망하면 그와도 멀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까트린은 억척어멈의 심부름으로 팔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오는 길에 군인들에게 그만 당하고 만다.
엄마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딸을 위로하며 카트린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빨간 구두를 신겨주지만
카트린의 상처는 너무 깊어 보인다.
뒤돌아보니 이 전쟁통에서 딸자식은 망가지고 작은아들을 잃었으며 큰아들은 생사를 알 수 없다.
카트린이 독일어와 한국어로 "들에 핀 장미꽃"을 부른다.
서럽고 슬프고 아픈 감정이 충분히 올라오는 가창이었다.
윤소희 배우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공통적으로 배우들이 자기 얘기를 할 때는 매우 구체적인 날짜와 위치, 명칭을 사용하는데
그 극도의 정확한 표현이 어쩐지 웃음을 자아낸다.)
서른넷의 나이에 결혼을 고민하는 시기이고, 결혼해 아이낳고 재밌게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일편 부럽기도 하지만
그 결혼이 웬지 자신있진 않다.
어린 딸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해서 맘아팠을, 철없던 시절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결론은 돈이다. 그녀는 연극배우다.
갑자기 모두들 나와서 합창을 하더니 (가사는 잘 알아듣지 못함) 이어서 옛날 CM SONG이 메들리로 나온다.
금성 칼라텔레비젼, 아로나민, 홈플러스, 건대 입구역의 백제예식장, 이마트까지.
이게 연도순인지는 모르겠다.
계란 한 판 나이의 오다애 배우가 나와서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연기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수강생들보다는 나이가 많아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즐겨 신던 하이힐 덕에 허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굽낮은 신발만 신는다는.
억척어멈이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끝났단다.
대령의 여인이었던 이베트는 대령이 죽자 그의 형의 여자가 되었다.
억척어멈은 돌아오지 않는 큰 아들 아일립의 생사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는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다.
아일립, 슈바이처카스 역의 김의환 배우가 다시 나와 다른 얘기를 한다.
평소 그저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아버지의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본 후
처음으로 용기내어 분식집에서 식사를 한 후부터 아버지와 많이 가까워졌다고.
이제는 아버지와 가끔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아버지가 팝송을 즐겨부르신다며
아버지께서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를 부르시는 동연상을 보여준다.
자기도 아버지 닮아서 팝송 좋아한다며 아버지와 비슷한 느낌!으로 '어니스티'를 불러 준다.
잠자는 마을을 공격하려는 군대가 어둠속을 행군하다 젊은 농부부부와 억척어멈 없이 혼자 있는 카트린을 마주친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에 그저 침묵하며 기도하는 세 사람.
그러나 마을의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대피하지 않는다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농부 부인의 기도 내용을 들은 카트린은
깜짝 놀라 언덕에 올라 북을 쳐서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어미까지 죽여버리겠다는 군인 대장의 협박에도 카트린은 오히려 더 크고 격렬하게 북을 두드리고
격분한 군인대장은 결국 카트린에게 총격을 가한다.
그러나 카트린의 희생으로 마을은 잠에서 깨어나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아낸다.
카트린을 보내는 억척어멈의 자장가...
아일립을 보낼 때 제비뽑기로 점쳤던 예언은 모두 들어맞고 말았다.
억척어멈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토록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가.
그 자리에서 극을 마무리하는 멘트까지 해 주신다.
100년도 갈 수 있는 질긴 전쟁. 그 속에서 거칠게 살아가며 연명하는 민중들의 삶과
억척어멈의 자식들로 대변되는 그들이 자신의 장점인 좋은 성격으로 맘미암아 화를 입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
이 한편의 연극으로 당신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모두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마무리 노래가 끝난 후
JTBC 뉴스 중에서 편집한 각종 불편했던 이슈들을 들려준다.
구의역 사건이 보여주는 위험의 외주화, 박봉의 비정규직 문제.
옥시 가습제 살균제 사건이 보여주는 기업의 파렴치.
아파트 유리 청소 작업자의 밧줄을 끊어버린 날일 노동자의 불안정한 심리.
자살률 세계 1위. 특히 노인층과 청소년층의 높은 자살률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단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정말 친절한 연극이다.(^^)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스토리와 배우 개개인의 이야기, 음악과 사운드(효과음), 그리고 영상이 적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간에 배우들의 이야기가 공통주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줄은 알겠는데..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무겁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억척어멈의 이야기로의 몰입을 좀 분산시킨 느낌도 있었다.
여러가지 연극적인 시도를 하려 한 흔적이 보이기도 해서 그 점은 좋았다.
육십대까지 무대를 지키는 여배우가 없어서 그간 이 공연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는 충분히 공감한다.
한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지만(어떤 의미로든)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믿는다.)
다수의 영화작업으로 억굴이 익숙한 이현순 배우는 매우 고운 외모여서 억척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고상하고 품위있는 사모님 스타일의 엄마같다고 할까.
뮤지컬 배우인가 싶게 오다애 배우는 노래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윤소이 배우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슈바이쳐카스의 구명을 위해 억척어멈과 군인들 사이를 오가는 대목은
계속 같은 자세로 제자리 뛰기를 멈추지 않으며 대사를 해야 하는데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보였다.
3초 김수현 같은 귀여운 김의환 배우는 이 작품이 입봉작이란다.
아직 누님들에 비하면 연극배우로서의 경제적 애로를 많이 겪진 못했겠지만
그가 하고싶어 죽겠는 일을 선택한 일이라면 끝까지 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어 내가 행복하니까!!!!
그들의 영혼이 앞날에의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내 자신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친절한 연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운 연극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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