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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영화

왕의 남자

by lucill-oz 2014.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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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TV에서 VOD로 영화 '왕의 남자'를 보았다.

물론 전에 보긴 했지만 다시 보니 새롭다.

 

장생(감우성)은 대담하고 승부사 기질도 있으며 따뜻한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진정한 예술인이다.

공길(이준기)은 남자라고 하기엔 심히 고운 자태와 미색을 겸비한 재주꾼이다.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이 너무 좋아 두 사람은 스스로 연기를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공길의 미색에 반한 양반들이 그를 노리갯감으로 희롱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놀이패의 우두머리 역시 그를 내세워 밥벌이하기를 주저치 않으니 

장생은 그에 반발하여 놀이패의 우두머리를 해치고 더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한양에서 그들은 장생의 주도하에 대담하게도 왕을 소재로 놀이판을 벌인다.

그러나 그 일로 의금부에 끌려가 죽을 위기를 맞이하나 

장생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여 왕을 웃겨보겠노라며 상선과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살얼음 같은 놀이판에서 동료들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감으로 인하여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장생과 공길 두 사람의 안간힘으로 겨우 왕(연산)의 웃음을 쟁취(!)하여 

그들은 왕의 전담 광대가 되어 궁에 머물게 되는 호사를 입는다.

그리고 공길은 이번엔 왕의 부름을 받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놀이로 그를 위로하고 관직까지 하사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왕(정진영)을, 혹은 신하들을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일 때마다 뜻하지 않게 한바탕씩 피바람이 지나가고

위기감을 느낀 장생은 궁을 나가고자 하나, 

연산의 폭정 뒤에 숨은 내면의 아픔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 공길은 

마지막 놀이판으로 연산을 위로한 후에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놀이판은 더 큰 살육의 피바람을  불러오고 중신들은 사냥을 빙자하여 광대들을 죽이려 한다.

결국 한 명의 광대(유해진)가 공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고 장생은 연산에게 저항하다가 두 눈을 잃고 만다.

연산의 고통을, 장생의 분노를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공길의 슬픔.

그는 결국 왕 앞에서의 인형놀이 중 스스로 손목을 긋는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공길을 발견한 연산의 외침 "왜~~~~~~?" 그 역시도 슬프다.

두 눈이 멀어져 이제야 장님 연기를 실감 나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 한 번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노라 자조하는 장생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공길의 눈물...

 

거듭되는 연산의 폭정에 드디어 반정이 일어나던 날, 

두 눈이 먼 채로 마지막 줄타기를 위해 줄에 오르는 장생, 그리고 눈물로 그와의 마지막 호흡을 맞추는 공길.

궁궐의 높은 기와지붕 위로 펼쳐진, 새털구름 덮인 하늘로 힘껏 날아오른  두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 박제가 된 듯하다.

(아,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들이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예술의 소재로 만들어버리는!)

 

 

 

 

 

 

대학시절, 연극 "품바"를 보고 남사당패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의외로 남사당패에 대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았었던 기억이다. 

오래돼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사당패 연구"라는 책과 당시 공연 내용, 

그리고 연출자와의 인터뷰로 교지에 싣기 위한 글을 썼었다. 

(그래서 그 겨울 우리 집에선 두 달 내내 각설이 타령이 멈추지 않았었다.)

그들 놀이패 중 줄을 타는 '어름사니'는 유일하게 여성 연기자가 연기를 했었는데

사내들의 무리 중 유일한 여자이다 보니 대개는 우두머리의 여자가 되거나 혹은

그들 사내들과 눈이 맞아 사생아를 출산하고 버려지는 일도 많았던 듯하다.

연극 품바는 그녀 어름사니와 후에 각설이가 된 그의 아들의 이야기였다.

공길은 그 어름사니 역할인데 그 짝패와 주고받는 합이 매우 중요하여

그에 따라 공연의 쫄깃함이 달라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흔한 "캐미스트리"  

 

장생의, 공길을 향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또한 공길은?

최고의 짝패, 친구, 가족과 같이 소중한 동료, 상처를 입게 하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기 위한 자유를 지키고, 지켜주고 싶은... 그런 이름의 사랑 아니었을까.

 

 

 

마지막 엔딩 장면이 주는 느낌은 그것이었다.

처연한 아름다움. 아니, 처연할수록 아름다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인가. 이토록 잔인한 것이었던가.

누군가의 비극을 보며 눈물을 흘림으로써 동조를 표하고 

 직후에 나를 채우는 그 아련함이 주는 어떤 것...

'아, 좋았어, 감동적이야'라고  말하게 해 주는 그것, 그것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의 본질은 슬픔인가, 깊은 슬픔.

 

아름다운 슬픔, 슬픈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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