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람후기/뮤지컬

2013 쓰릴미 - 20130728 (임병근, 박영수)

by lucill-oz 2013. 8. 11.
728x90

 

 

 

 

 

보고 나서, 한참 동안을 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해서,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해서...

 

두 천재 소년들이 실제로 저질렀던 사건을 따라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뮤지컬이라는 쟝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구성을 보여준다.

단 두명의 배우, 그리고 오직 피아노 한 대만으로 끌어가는 강렬한 음악, 그리고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보여주는 조용한 반전,

단순한 무대, 연극적인, 그리고 간결한 대사,

사건의 전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인물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34년 전에 일어난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에 대해 99년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나(네이슨)의 가석방 심의가 열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질문자들의 음성이 나(네이슨)와 그(리챠드)가 왜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너(네이슨)는 도대체 왜, 그를 따라 그런 행위에 가담했었는가에 대한 추궁을 하고

그리고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담담한 어조로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진술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두 소년은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차드)는 매력적인 외모와 화려한 말솜씨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집에서만큼은 늘 동생에게 밀려 아버지의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태다.

그의 동생이 어떤 아이인지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아서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그의 대사를 통해서 동생과 아버지의 유대감이 매우 깊고,

그는 그 부분에 대한 열등감을 상당히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대단한 확신과 우월감을 갖고 있다.

 

역시 천재의 두뇌를 가진 또 다른 소년인 나(네이슨)은 리차드와는 달리 소극적이다.

주변에 친구도 별로 없고 혼자의 세계에 많이 빠져든다.

네이슨에겐 리차드가 우정을 나누는 친구이자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부유한 집에서 자란 네이슨은 안정적인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한 두 소년은 급속히 가까워진다.

아마도 서너살 위의 동기들과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교우관계 형성이 어려워서였을것이다.

두 소년은 모든 것을 함께 했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두 소년의 애정이 친구들 사이에 소문나자 리처드는 말없이 네이슨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는 친구들의 놀림을 감당하는 대신에 그를 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 했던 것일까.

 

스무살도 안 된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만난 두 친구.

네이슨은 여전히 그의 우정과 사랑을 원하고, 리처드는 그런 네이슨을 냉정하게 대한다.

네이슨은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원하고, 리차드는 그런 네이슨의 심리를 마음껏 이용한다.

사랑의 게임에서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약자가 되는 법...

애절하게 매달리는 네이슨, 그럴수록 모질게 대하며 "나쁜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리차드.

네이슨이 자신을 "레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는 줄을 알면서도

굳이 일부러 불러주지 않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주었을 때만 보상으로 한 번 불러주는 리차드.

 

니체의 초인론에 빠진 리처드는 자기 자신이 완전한 존재라 믿게 되고

그것을 완전범죄로 증명하고자 네이슨에게 재미삼아 창고에 불을 지르자는 제안을 하는데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그 범행에 동참하고야 마는 네이슨.

네이슨은 두려움에 떨면서 불을 지르고, 뒤에 서서 명령을 내리는 리차드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그런 리차드의 손길에 희열을 느끼는 네이슨...

 

범행을 저지른 다음 날,

불안함에 리차드를 기다리던 네이슨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나 역시 무심하게 대하는 리처드.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다시는 가담할 생각이 없는 네이슨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리차드는 네이슨에게 서로에 대한 의무를 약속하는 계약을 맺을 것을 제안한다.

네이슨은 리차드가 하는 모든 행동(범죄)에 함께 할 것을,

그리고 리차드는 그 보상으로 연인인 네이슨을 만족시킬 것을 맹세하는 계약.

계약서에 피로 맹세하는 두 사람... 계약으로 맺어진 우정과 애정...

 

그 후 소소한 범죄를 함께 저지르며 만족스러워하던 두 사람.

리차드는 범죄의 아슬아슬함에 스릴을 느끼고, 네이슨은 리차드의 손길에 스릴을 느끼는...

그러나 네이슨은 계속되는 범행에 염증을 느끼고, 리차드는 네이슨에게 의무적인 애정을 던져준다.

 

 

리차드는 니체의 초인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들을 초인이라고 믿게 되는 과대망상의 증세를 보이고

어느 순간부터 네이슨은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를 거부하지 못한다.

리차드는 자신들의 범행이 들통나지 않고 계속되자 더욱 큰 범죄를 구상하게 되고, 결국은 살인을 모의하기에 이른다.

리차드는 그 대상자로 자신의 동생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동생을 죽이려는 이유를 들어보면

"내 동생을 죽이면 내 물건에 손 못대, 짜증날 일도 없어, 난 더 큰 방을 쓰겠지, 아버지가 돌아버리겠지" 따위의 

유아기적 사고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심하고도 유치한 내용들 뿐이다.

네이슨은 네 동생을 죽이면 모두 널 의심할 것이라는 말로 리차드의 마음을 돌리려 하고

리차드는 대신에 다른 어린애를 죽이자고 한다.

자신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속이기 쉬운, 열살이나 열 한살 쯤 먹은 어린애를...

이 역시 자신들이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를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어린애의 마음이 지배함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유괴를 하자는 제안으로 범행의 수위를 낮춰보려던 네이슨에게

리차드는 '둘 다 하자'며 더욱 흥분한다.

그리고 얼굴과 신체의 특징적인 부분에 염산을 뿌려 시체를 훼손하면

신원을 밝혀내지 못해 결국은 완전범죄를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네이슨은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범행을 모의하면서 흥분하는 리차드를 보면 네이슨은 그를 만족시켜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게 되고...혼란스럽다.

 

자신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서 한 어린아이를 빌린 스포츠카로 유인하는 리차드.

차 구경을 시켜준다며, 차에 태우고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며 아이를 납치한다.  

섬뜩한 리차드의 표정연기...

(실제 사건은 아이를 유괴하여 쇠파이프로 가격해 죽인 후 염산으로 시신을 훼손하고,

시신을 교외의 하수 파이프 안에 밀어넣어 유기한  사건이다.)

범행 후 불안하고 괴로워하는 네이슨, 그러나 자신들은 천재들이니 절대 발각되지 않을 거란 확신에 찬 리차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부모에게 보내는 협박장을 만든다.

두 사람이 계약서를 작성한 그 타자기로.

(그 타자기는 리차드가 대학시절 룸메이트의 것을 슬쩍한 것으로 C자는 안 찍히고 T자가 흐리게 찍힌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네이슨은 자신의 안경이 없어졌다며 당황하는데...

 

라디오에서는 배수구에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와 함께 안경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곧이어 훼손되지 않은 특징적인 신체의 한 부분이 발견되면서 아이의 신원이 밝혀지고

안경이 네이슨의 것임이 밝혀지며 그들의 범행은 드러나게 된다.

리차드는 의연한 척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네이슨의 실수를 원망하며 두려워한다.

결국 네이슨에게 등을 돌리고 마는 리차드, 그에 분개한 네이슨은 스스로 경찰서로 향한다.

 

경찰서 안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자신만은 피해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리차드는 뜻밖에도 네이슨의 반격을 받는데...

네이슨은 리차드가 혼자만 빠져나갈 것을 염려하여 모든 증거물을 없애지 않고 가지고 있던 것이다.

피가 묻은 파이프와 범행도구 일체, 협박편지와 두 사람의 계약서까지도..

그제서야 절망하며 네이슨에게 매달리는 리차드.

죽든 살든, 다시 한 번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다짐하는 두 사람.

 

판결이 내려지기 전날 밤, 네이슨은 리차드의 혼잣말을 듣고 만다.

'이런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기는 싫어, 죽는 건 싫어, 두려워...'

막다른 곳까지 몰려 현실을 눈앞에 두고서야 정신을 차린 리차드는 죽음도 네이슨의 부재도 두려워했다.

네이슨, 리차드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의 당당함이 사라졌음에... 그의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사라졌음에...

리차드가 두려워하듯이 말이다.

 

사형을 받을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들은 99년의 종신형을 받는다.

감옥으로 돌아와, 리차드에게 모든 것이 자신이 의도한 바였음을 고백하는 네이슨.

벌을 받을 줄을 알면서도 그와의 범행에 동참했던 이유가 그와 함께 있기 위해서였듯이

그를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서 일부러 단서를 흘렸다는...

섬짓하도록 집요한 네이슨의 마지막 대사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

조종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결국은 밀고 당기는 사랑의 파워게임에서 누가 마지막 승기를 잡았는가를 표현하는 문장일터인데...

나는 "조종"이라는 저 표현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지능은 천재적이었다 해도 정서와 사회성은 상당부분이 결여되어 있던 두 소년의 어긋난 시간들을 그린 이 작품은

누가 누구를 연기하는지, 어떤 페어의 조합인지에 따라서 그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진작 만나지 못했었음이 아쉬울 정도로 쟁쟁한 훈남 애정배우들이 거쳐 갔다니...

 

임병근 "그"와 박영수 "나"를 만났다.

임병근의 "그"는 조금 딱딱하다고 해야하나... 일부러 강해보이려고 하는 부분의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나쁜 남자의 매력이 부분부분 보였다.

특히 "날 믿어, 자기" 처럼 "나'에게 '자기'라고 부르는 대목에서는 제대로 나빠 보였다^^

연인의 애정을 이용하려 상대가 꼼짝 못 할 다정한 호칭으로 부르는 대목이다.

평소 쌀쌀맞던 그가 불러주는 다정한 음색의 "자기"라는 호칭에 누군들 마음이 녹지 않겠는가...

 

 

 

 

 

 

박영수의 "나"는 어린애스럽다.

특히 그의 짧은 ㅅ 발음 때문이었을까?

스무살의, 아직은 아이같은 면이 남아있고, 또 연인에게 응석을 부리는 듯한 말투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그래도 그 부분은 배우가 극복해야 할 부분일 듯 하다.

인터뷰 영상에서는 잘 못 느끼겠던데... 무대에서는 소리가 울리면서 더 부각되어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그 부분만 빼면 나는 박영수의 "나"에 매우 만족한다.

어쨋든 이 심약해 보이고 섬세해 보이고 겁도 많아 보이는 "나"를 연기한 그가

'아르센 루팡'에서 냉정한 칼잡이 '레오나르도'를 연기했었다는 것이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한 말투로 무심한 듯 던지는 마지막 대사의 짜릿함!^^

 

 

 

 

 

그리고 피아노!

이 작품에서 피아노는 또 한 명의 배우다.

때론 섬세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가끔은 두 배우가 동시에 내뱉는 고음과 한껏 고조된 피아노가 한데 어우러져

무슨 내용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

 

사건의 전개와 두 사람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면서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이 팽팽한 무대였다.

이 작품 하는 배우들, 참 힘들겠구나 싶기도 하고

또 자꾸 곱씹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재미가 있다 없다가 아니고, 느낌이 좋았다거나 혹은 별로였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비 이성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인 커플이라던가 하는 시각이 아닌, 이 실제 인물들의 정서 안으로,

그저 그 두 사람의 심리나 그 마음을 좀 자세히 헤아려보고 싶다고나 할까...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있음을 느낀다.

 

오종혁, 정상윤 페어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