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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연극

M BUTTERFLY - 20140430 이승주, 김다현 / 20140518 이석준, 전성우

by lucill-oz 201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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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야기로만 말하자면 엽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토록 오랫동안, 무려 이십년 동안이나 사랑했던 그의 연인이 알고보니 같은 남자였다는...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영화로도 발표되었었고.




막이 열리면, 이야기의 주인공인 르네 갈리마르가 '국가기밀누설죄'로 복역하고 있는 감옥안이다.
그는 아주 자조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하려면 꼭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르네는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간다.
 
프랑스 영사관의 직원으로 북경에서 근무하던 르네 갈리마르.
그는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그 때문이었을까, 학창시절 또래의 사내아이들에 비해 그는 성에 대해서 매우 억눌려 있었다.
상상조차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마도 그만큼 여인에 대한 환상은 더 컷을 것이다.
나이가 들자, 환상을 접고 배경이 좋은 집안의 여자 헬가와 결혼하였으나 아이는 없다.


그는 어느날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나비부인)'을 보고 여주인공 초초상 역을 연기한 송 릴링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그녀의 '퇴근길'을 기다려 그녀와 몇마디 대화를 나눈다.
르네는 그녀의 '나비부인'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지만 송은 그 말을 탐탁치 않아 한다.
서양의 여인이 그런 모습이었다면 그녀를 칭송했을까, 미련하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양여인의 서양남자를 위한 절개는 아름답다고 칭송하는가...


(사실 나도 서양인 푸치니가 쓴 이 유명한 오페라의 내용은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야비하기가 짝이 없는 그 사내나, 
그저 이방인의 일탈행위에 불과했던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나 둘 다...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보고, 기다리던 그를 만날 기쁨에 들떠 꽃을 꺾어 집안을 치장하며 부르는 아리아는
아름답다기보다도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했었다. 
게다가, 그의 실체를 알았으면 뺨이라도 한대 갈기고 정신을 차릴 일이지 자결이라니? 
무엇을 위해? 스스로의 자존심? 아니 차라리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겠지.
적어도 그녀의 자결이 부디 그를 위한 것은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사실,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는 일이나 감동적일 수는 없는 얘기다. 
아 진짜 맘에 안들어... ^^) 



송의 반격에 르네는 당황하고, 송은 르네에게 차라리 중국의 오페라를 볼 것을 권한다.
결국 그녀에게 이끌려 르네는 송이 연기하는 경극을 보게 되고, 
언제나 도도해 보이는 송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는 르네.
송은 아주 잠깐씩만 시간을 내주어 르네를 감질나게 했으나 분명 그에게 호감을 보인다.
단 한번도 여인에게 남자의 매력으로 어필했던 적이 없었던 르네는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매우 고무된다.
그 도도한 동양 여자도 결국 서양남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가.
자신감에 넘친 르네는 그녀와 "밀당"을 시도한다.
르네는 오히려 한동안 송을 찾지 않음으로써 송의 마음을 얻는데도 성공하고
그녀를 찾지 않는 동안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바람에 부영사로 승진도 한다.
송의 표현대로 그녀의 '수치심'까지 쟁취(이 얼마나 고전적이고 우아한 표현인지...)하며
그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데 성공한 르네는 둘만의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당신은 나의 버터플라이..."  르네에게 송은 환상이다.
오페라의 여주인공, 도도하면서도 은근하고, 수줍어하면서도 열정적인 아름다운 동양여인...
그녀는 신비함 그 자체다.
(두 사람의 송 릴링에게 실은 나도 반했다!!!)



그러나 송의 주변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조종하는 중국의 국가권력이 있었으니
송은 그들의 지시대로 르네에게서 정보를 빼내어 보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르네에게는 철저히 자신의 사내로서의 모습과 스파이로서의 정체를 위장한 채.

한편 르네는 송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만나기 시작한다. (이 친구 보게...^^)
그러면서 다른 여인들이 보여준 모습을 송에게도 요구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나, 임신했어요"라는 말로 절묘히 피해나가는 송.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송은 몇달 후 금발의 중국 사내아이를 데리고 르네 앞에 나타난다.
르네, 더이상 그는 그녀를 떠날 수가 없는데...


그러나, 베트남전에 미군의 개입에 대한 전망을 잘못 판단한 댓가로 르네는 본국으로 소환당하고
송 역시 중국내에 불어닥친 문화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혹독한 자아비판을 거쳐 노역에 시달리다가 그녀(편의상, 그녀로 해 두자) 역시 르네의 나라인 프랑스로 보내지게 된다.

한편 르네는 중국과 송을 잊지 못하고, 아내와도 이혼한다.
적어도 중국에서 그는 가치있는 사람이었고 완벽한 사랑을 받은 남자였으니까...
그런 르네에게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송.
그들은 프랑스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듯 했으나 
어느날 그는 국가기밀 누설죄를 짓고 법정에선 신세가 되고 만다.
송의 중국인으로서의 임무는 그곳에서도 계속되었으니까.


재판과정에서 밝혀지는 엄청난 진실.
르네는 송이 남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는 완벽한 자기만의 버터플라이였는데...
그것을 깬다는 것은 그녀와 보낸 지난 이십년간의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니... 
그는 정말 몰랐을까? 모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송은 매우 당당하게 자신을 밝힌다.
그리고 르네에게, 그야말로 자신의 알몸을 들이대면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달라질 건 없어, 받아들이라고!! 그러나 끝내 부정하는 르네.
송은 이제 다시는 여장을 하지 않을 거라며 후회하게 될거라는 말을 악담처럼 남기며 사라진다.
다시는 당신의 버터플라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르네는 자신의 얼굴에 희디힌 분칠을 하고 입술을 빨갛게 그려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의 여주인공 초초상으로 분한다.
그리고 깨진 거을 조각을 목에 그어 그녀처럼 자결한다.
그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버터플라이?... 버터플라이!..." 라고 말하고 사라지는 송 릴링.
넌 여태까지 내가 너의 버터플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천만에!! 네가 나의 버터플라이였던거지.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끝까지 난 너의 버터플라이가 되어줄 용의도 있었는데 말이지...
뭐 그런 뉘앙스로 말이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문화혁명 부분은 영화 패왕별희도 생각나고, 반전으로만 놓고 보자면 쓰릴미도 생각나고...^^

처음 보았을 때는 르네에게 집중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관극때는 송의 입장에 더 집중이 되었다.

르네는 아주 빠른 말투(둘 다 !)로 과거와 현재, 프랑스와 중국을 오가며 그간의 일에 대해서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괴로운 상황을 설명한다.
르네는 송의 변신장면과 재판장면을 제외하고는 줄곧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 쉽지 않은 배역이다.

연출은 배우들에게 "르네 갈리마르의 의식의 흐름"을 강조했다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송 릴링의 의도와 상황변화에 르네가 좌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르네의 잠재의식 못지 않게 송의 의식, 아니 송은 어쩌면 오히려 드러난 환상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이미 자신의 성향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배우'라는, 그리고 '스파이'라는 장치로 위장하고
전지적 작가 싯점에서 르네를 조종(...?)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송의 변신 직전,  르네가 "변신하지 마~~"라고 애원하며 울부짖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송은 무대 위에서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남자로 돌아온다.
윗옷을 벗어 던지고 바지까지 내리며 르네에게 나의 실체를 확인하라고 강요하는 송과
피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외면하는 르네. 
그는 그동안 지켜온 자신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
송은 르네의 눈을 가리고 손끝으로 그의 환상을 느껴보라고 한다.
그러나 르네에게는 '욕망의 미세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는 송이 절대로 남자가 될 수는 없고
르네에게서 철저히 부정당하는 송의 입장 또한 처절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 다... 매우 안타깝다....

송이야말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는가.
르네에게 자신의 남성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간첩으로서의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이었겠나.
그는 그동안, 차라리 르네와의 사이는 좀 편하게 가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송은 자신에게 갖는 르네의 환상을 알고 있었고, 송 자신도 고백하듯이 그의 숭배를 받는 행복감과
그 안에서는 다른 삶을 산다는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르네는 한번도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고, (그의 성별이나 그의 정체에 대해서나...)
어쩌면 송은 그것을 암묵적인 동의로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르네 뿐만이 아니라 송 역시도 자신을 르네의 환상속에서 살게 했었다.  현실과 환상 사이의 줄타기.
송의 입장에서도, 르네 갈리마르라는 남자는 송 자신이 가진 은밀한 환상을 충족시켜줄 적임자였을 것이다.
마치 '쓰릴미'에서, 리차드에게 네이슨의 존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단지 차이는 한 사람이 눈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이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러나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오자, 르네의 환상을 깨뜨리고 자신의 실체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송. 
극 중반까지는 송이 르네를 이용하기만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대목에서는 송 역시도 그동안 르네를 사랑했었다고 느껴졌다.
이미 그 안에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송은 그와의 유희를 좀 더 유지할 용의가 있었던 듯하다.
단, 르네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준다면!

송은 재판 장면에서 그 동안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수줍고 부끄럼 많은 동양여인이 아니라, 조금은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돌하고 거만하기까지 한 태도로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르네를 사로잡았었는지 그 노하우를 공개한다.
남자의 어리석은 심리, 그리고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에 대한 오해와 환상에 대해서. 
르네 안의 환상은 산산히 부서지고 그에게 이제 송은 타인이 된다.




첫 관람은 이승주 르네와 김다현 송이었다. 일명 미남페어!
젊고 잘생긴 승주르네는 갈리마르의 불안정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었다.
극 초반에는 갈리마르, 왜 저렇게 말이 빨라? 싶은게 몰입이 잘 안 됐었는데
알고보니 시간을 준수하라는 연출의 요구가 있었다는^^
연출님, 르네들은 충분히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염해 보이는, 아주 여우같은 송^^
사실 극 초반에는 송을 연기하는 배우가 김다현이라는 사실이 새삼 극의 몰입을 방해했었다.
김다현의 느물거리는, 혹은 유들유들한 이미지의 연기가 생각나서 자꾸 웃음이 났었다.
그러나 점차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인가부터는 그가 '그녀'로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의 미모(!)와 조신함과 '라인'에 열등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김다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
특히 변신 후 남자로서의 목소리는 원래의 저음이 돋보여 그 대비가 더 매력있었다.


두번째 관람은 이석준 르네와 전성우 송. 일명 아청페어!! ㅋㅋㅋ
이석준의 작품을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었는데 다 놓치고, 여기서 처음이다. 전성우 역시.
석준 르네는 역시나 좀 더 연륜이 있어 보였다.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역시나 빠른 말투에 대사가 좀 꼬인 부분은 있었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뭐랄까... 르네에 대한 연민이 더 느껴졌다.

그리고 원래 좀 하이톤의 목소리인 전성우는 진짜 '예쁜 여자' 같았다.^^
여자의 여성성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화장(분장에 가까운), 의상, 헤어, 말투, 몸가짐 등등 연습으로 말이다.
송이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미모(!)가 좀 되는 배우들이 맡는 것이 유리하긴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변신 후의 남성성이 대비되어 매력있게 보이는 것 같다.
(하긴 요즘 보면 안 예쁜 남자 배우가 없는 듯...^^)
송과 반대로 여자이면서 철저히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중국 공산당원 친.
조신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양 여대생 르네의 모습보다도 송이 더 여자로 느껴지는 것을 보면
송의 말처럼 남자가 갖는 여성에 대한 환상은 얼마든지 계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진실이 아닐 것이라고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일들이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 낸 환상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의식이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 신뢰하지 않던가.
이 엄청난 해프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삶이란 어차피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명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은 
삶의 매 순간이 실은 스스로의 성향에 따른 선택의 결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에 가깝게 닮아가는 것이다.
좋은 꿈을 갖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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