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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전시

MOVE전을 통해서 본 왕 지안웨이의 영상

by lucill-oz 201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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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가는 남편을 배웅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과천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그냥 상설전시랑 야외조각 전시나 둘러보고 돌아갈 작정이었는데

뜻밖에 좋은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MOVE전은 '1960년대 이후의 미술과 무용'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입장했던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뭘 보라는거지? 뭘 어떻게 하라는거야?"

오히려 전시내용보다는 전시장의 디자인이 더 눈에 들어왔다. 직업병^^

이 전시는 단순 구경이 아니라, 안내에 따라 직접 체험을 해 보면서 느껴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각 전시 별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평일 대낮이라 관람객보다 안내인들이 더 많았다.

 

통나무 위 걸어보기, 시소의 구조로 만든 판자 위로 걸어보기, 좁은 벽 통과해보기,

영상을 보며 훌라후프 돌리기 등의 신체적 체험과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로 입힌다는 그물옷 입어보기, 밧줄에 매달려 있기,

일정한 거리에 마주보며 서서 둘 사이의 거리 느껴보기, 벽에 붙은 상자처럼 만든 구조안에 들어가 보기,

암흑의 방을 지나 투명 물방울 안에 들어가 보기 등등의 심리적 체험을 해 보는 것이다.

 

가장 안쪽으로 중국작가인 왕 지안웨이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방이 있었다.

큰 기대없이 가구작품들을 우선 돌아보고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을 때의 첫 인상은 조금 기괴하다고 할까,

영상은 몇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작품은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근현대의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을 보니

아마도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체제와 가치관의 변화 중에서

파괴되어가는 각 개인들의 삶이나 의식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런 장치도 없는 무대의 설정은 광장이다.

바람이 많이 불고있고, 하얀 비닐봉지들이 쓰레기처럼 날리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 역시 휘몰아치는 변화의 바람과 그 부산물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몸집의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자르고 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고기를 사려고 줄을 서고 있다.

모두 다 무표정이다.

그 사이에 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너무도 허름한 차림의 한 사내, 그리고 그를 쫒아내려는 공안의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그 와중에 고위급 인사로 보이는 풍체좋은 한 남자가 나타나자 공안은 얼른 그를 맨 앞줄로 데려다 세워주고,

다시 허름한 사내를 쫒으려 온다.

사내와 공안이 마주서 대치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멈추며 모두가 쓰러진다. 세 사람만 제외하고.

허름한 사내는 푸줏간 주인이 들고 있던 칼을 가져와

자신을 괴롭히던 공안의 팔을 내리치려 하였으나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다만 마음 속으로만 그의 양쪽 팔을 잘랐을 뿐이다.

그는 다시 늦게 와서 당당히 새치기로 모셔진 사내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치고 싶은 욕망을 참고 몇번의 내리치는 흉내를 내는데 그치고 만다.

억압받는 소시민의 소심한 복수, 그가 실제로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더 가슴아프다.

 

역시 광장. 머리에 대형 탈을 쓴 사내를 중심으로 세 면에 대형 거울이 있다.

사내는 광장 한 가운데서 없는 듯한 존재로 서 있다.

역시 무표정한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쳐 가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갖지 않는다.

갑자기 한 사람씩 나타나서 거울을 살펴보다가 그의 거울을 깨부셔버리고,

사내는 거의 알몸을 드러낸 채 광장 한 복판으로 내몰리지만 역시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군중, 철저한 외면, 개인의 파괴, 요즘 세상을 표현하는 듯 하다.

 

광장. 모두가 정지된 가운데 자전거에 장어(혹은 미꾸라지 같은 미끄러운 물고기)를 싣고 가던 남자는

깨어난 사람들과 부딪치며 쓰러진다.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그의 상태가 가망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

모두 장어 한마리씩을 들고 사라져 간다.

역시 비람이 불고 비닐봉지가 날려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주워 장어를 담아서 유유히 사라진다...

 

이외에도 두 편의 영상이 있었으나, 며칠 된 관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영상이 주는 메세지가 이토록 강렬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회화로 치면, 사실적인 정밀화가 아니라 구성화나 추상화 같은 느낌이랄까.

왕 지안웨이에 대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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