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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My Story

나 때는 말이야!

by lucill-oz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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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젊은, 아니 어린 후배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일이 점점 없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대 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인맥'과 '노하우의 전수'라는 것도 그 의미가 없어져 감을 느낀다.

더불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기회도 없어지게 되고.

점점 말 통하는 세대들끼리만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젠 서로 일하는 방법마저 달라져 감을 느낀다.

 

80년대에 일을 시작한 나는 처음 입사해 연필로 도판 위에서 선긋기 연습과

트레이싱 페이퍼를 깔고 선배들이 작업한 청사진 도면을 카피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나도 물론 선배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샤프를 쓰니까 연필 깎는 건 안 시키잖아, 

나는 말이지, 입사해서 한 달은 연필만 깎았어~' 이러면서 말이다.^^

 

'아무개씨!' 라는 이름 대신에 남자들은 '아무개야!' 라고 불리고

여자들은 대개 '미쓰' 아무개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여자들에게 처음 그렇게 Miss 라는 호칭을 부르게 된 것은 여자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말하자면 예우의 차원에서 였었다고 알고 있다.

물론 개화기 이후 들어온 서양문명의 흉내를 내서였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오랜 기간 그 Miss라는 호칭은 여자들의 지위를 낮은 곳에 묶어두는 도구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여자들에게 대부분은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가 아닌 남자들의 보조적인 업무나

허드렛일이 주어지고, 그것은 그녀들의 '고유업무' 가 되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 은행 심부름, 신발을 닦아 오라거나, 

재털이 비우기, 쓰레기통 비우기 등은 이미 업무 시작 전에 끝내 놓아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여자들이 '상냥한 목소리'로 받아야 했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더라도 (물론 결혼하지 않은 상태여야 가능했다) 진급의 기회는 없었다.

아주 예외적으로 진급을 시키더라도 겨우 한 단계?

그래서 오래 근무한 여직원에게 갓 입시한 새내기 남자들이 버릇없이 굴기도 했었다.

(나는 그 "여직원"이라는 말도 너무 싫어한다. 그 말의 뉘앙스를.)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많이 봐줘야 출산 전까지였다.

사규에만 있는 '출산휴가'를 쟁취하기 위해서 많은 상처를 감수하며 싸웠던 것도

1990년대 중반 이후였었다.

 

날이면 날마다 퇴근 후에는 포장마차나 술집을 들렀고

그곳에서나 회사 내의 크고 작은,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었기에

술도 못하는 나는 무조건 한 잔은 마셔야 한다며 권하는 그 분위기에서

온몸이 빨개지고 열이 오르는 것을 참으며 소주도 한잔, 맥주도 한잔, 양주도 한잔은 마셨다.

 

당시 인테리어 업계는 남자들이 태반인 업종이었기에 '음담패설'을 일상어로 듣는 것을 견뎌내고

드디어는 그들에게 한방을 먹일 수 있을 때 쯤 되어야 그들 남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친구 '여자'지만 쓸만한 친구야! "라고 말이다.

 

아주 드물게 여자 선배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미 남자들의 의식 세계와 동화된 그녀들은 성별만 여자일 뿐 태도는 남자였다.

그래야만 살아남는 세계에서 생존에 성공한 '기 쎈' 여성들이니까. (혹시 나도??)

아마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이 아닐까 싶다.

안그래도 치열한 남자들과의 세계에서 여성이라는 스스로의 GENDER와도 싸워서 쟁취한 자리인데

이제 나와 똑같은 또 다른 존재와 비교 경쟁의 선상에 무의식적으로 놓이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

어찌 그것이 유쾌한 일이 되겠는가 말이다.

만일 똑같은 구조의, 즉 여성들만의 세계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남성의 경우라면

역시 남자의 적은 남자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아닌 것 같아도 이건 상대적인 일이다.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동지' 또한 여자인 것이다.)

 

나는 그런 '아저씨'들도 경험했고, 그보다는 좀 깨인 '덜 아저씨'들도 경험했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전문직' 분야라고 남자들과 같이 '진급'도 했다.

내가 경험했던 80년대는 여자가 진급을 해서 명함에 직위가 박혀 있는 것이

좁은 업계 바닥에서 소문이 나던 시절이었다.

한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이라 어디가서 나쁜 짓 하고 다니면 소문이 다 돌았다.

이력서 한 장만 받아봐도 전화 한,두통이면 그 사람에 대한 파악이 되던 시절이었다.

 

졸업도 하기 전인 85년 여름부터 학교 밖으로 나왔는데

그 나이때부터 남들처럼 한 군데서 평탄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 회사 저 현장을 많이 돌아다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근무처가 하도 많이 바뀌니 내 전화번호는 연필로 적는다고

친구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지 못할 현실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한때 내 별명은 '마당발'이었다)

끌어줄 선배들도 같이 시작했을 때니까,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어디든 버텨야 하는 시절이었다.

결혼 후인 2000년부터 내 사무실을 갖추고 동료들과 함께 독립하여 일을 시작할 때부터는

그렇게 돌아다니며 만난 그 간의 많은 인연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 옛날의 '아저씨'들 말고, 그 밑에서 나의 그늘이 되어 주었던 '덜 아저씨들'이

나의 고객이 되어주기도 했고 영업선이 되어 주기도 했다.

 

이후 출산과 육아, 가족의 질병과 사망 등 크고 작은 집안의 일들을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들을 지나는 동안 집에서 혼자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역시 늘 같이 하던 사람들과만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들의 인맥이나 네트웍은 어떻게 맺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엔 구인구직은 주변 인맥을 통해 한 차례라도 검증된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방법이 당연했다면

지금은 주로 전문 싸이트를 통해 자신의 이력을 올려놓고 서로 매칭하여 찾는 방법이 보편적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기대치가 맞지 않아 단 한번의 미팅으로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중소기업도 아닌 개인기업이 태반인 디자인 업계는

서로가  만족스러운 구인도 구직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꼭 디자인 업계 뿐은 아니겠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약 10년 정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세대간의 급격한 단절이 이루어진 느낌이다. 

내가 40대 초반에도 '요즘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곤 했으니까.

또래의 동료들이나 선후배들과 '요즘 애들은 우리 어렸을 때처럼 대하면 안돼!' 라며

점차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기였다.

 

지금은 나도 그 옛날의 아저씨들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엄청난(!) 나이의 아줌마 (때로는 할머니이기도 한)이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더 윗연배인 올드 그룹이다. 

가끔 하는 얘기지만, 우리처럼 일하는 세대는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한다.

 

지나놓고 생각해 보면...

후배들은 우리처럼 고생하진 않았으면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때는 낭만이 있었지~' 싶기도 하며 때론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라도 앞 세대와 뒷 세대간의 연결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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