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는 긴 이야기이다.
시대적인 배경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격동적인 시기이다.
이 길고 장엄한 이야기가 어떻게 무대위에서 보여질 것인가...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대 디자인이었다.
여섯개의 철제 구조물은 배우들에 의해서 이리저리 움직여지며
르파르지의 와인가게로도, 루시 마네뜨의 이층 집으로도, 교수대의 계단으로도 변화한다.
간결한 무대장치와 극적인 조명의 변화는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켜 준다.
좀 더 화려할 것이라고, 아니,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허를 찔린 느낌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전 스터디가 전혀 없이 본 공연이었다.
캐스팅도 유정한, 윤형렬, 카이, 전동석과 신영숙이 나온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유명한 넘버 한 곡도 들어보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꼭 보고싶다는 생각만으로 마지막날 공연을 예매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모든 곡들이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노래가 끝나갈 무렵쯤, 아~ 좋다, 인상적이네~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서야 그곡들이 대표적인 곡들이란 걸 알게 되니
자연이 "아~ 그래서~" 혹은 "역시~!!"하는 격한 동감이...^^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음악이 좀 어려운 것 같았다.
칼튼이 크런처와 짜고 바사드에게 접근하던 술집 'goat's guts'에서 부르던 "No honest way"는
거의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경쾌한 곡이었다. 그리고 인상적이기도 하고.
찰스 다네이와 루시에 관한 언쟁을 한 후,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부르는 곡 "REFLECTION"은
칼튼의 초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고 느껴진다.
세상에 대한 삐딱한, 그러나 어쩌면 정확한 시각을 가진 남자,
그러나 여인에 대한 호감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루시에게 크리스마스 초대를 받고는 감격에 겨워(^^) 부르던 노래 "I CAN'T RECALL"
쏟아져 내리던 별빛과 함께 기억되는 곡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와 'UNTILL TOMORROW"
귀부인 전문 배우(^^) 신영숙의 솔로곡과 1막 마지막 곡인데
신영숙이라는 배우의 노래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깊이 흔드는 힘이 있는 있는 것 같다.
캐스팅에 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지.
내가 본 윤형렬의 첫 주연작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못 봤으니까...
사실 류정한의 공연도 보고는 싶었다. 어쩌면 칼튼의 이미지와는 더 잘 맞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윤형렬의 묵직한 저음을 좋아하니까~~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매우 만족했다.
늘 술에 취해 사는, 시니컬하지만 똑똑하고 능력있는 변호사 시드니 칼튼.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한 발 떨어져 지켜만 보아야 하는...
그러나 그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 안아 준 루시의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그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폭풍 감동!!
찰스 다네이 역의 카이의 무대는 처음이다.
그의 저음도 역시 매력있었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이지만 귀족들의 만행을 부당히 여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런던으로 떠나는 정의로운(?) 캐릭터다.
루시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나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하게 다치게 될 옛 하인들을 변호해주기 위해서
죽음의 길로 돌아오는 남자, 그리고 루시의 남자...
임혜영 루시 마네트.
유투브를 통해서 본 최현주 루시는 좀 더 파워풀하고 강한 느낌이었는데
임혜영 루시는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도 용서할 수 있을만큼 (^^)
정말 같은 여자가 봐도 사랑스러운 루시였다.
마담 르파르지의 신영숙.
모짜르트의 황금별을 보고나서의 감동으로 또다른 그녀의 무대를 찾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아, 정말 대단하다. 그녀...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마담 르파르지를 그녀의 풀파워로 잘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시드니 칼튼과 찰스다네이, 루시마네트 이외에도 많은 배역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다.
루시의 유모 미스 프로스, 마담 르파르지의 남편인 어니스트 드파르지,
루시의 아버지 마네트 박사, 이중 스파이 존 바사드, 찰스의 친구이자 무덤 도굴꾼 제리 크런처,
찰스의 삼촌 에버몽드 후작, 칼튼의 동업자 스트라이버,
루시와 아버지 마네트 박사를 만나게 해 주고 고비마다 도움을 주는 자비스 로리 등..
물론, 원래 긴 이야기니까 등장인물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등장 인물들의 무게감이 골고루 안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련 인터뷰들을 보면
칼튼이 오직 루시만을 위해서 찰스 대신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내 느낌은 그 부분을 표현한 것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자네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대사는
웬지 칼튼에게 압박감을 주는 듯한, 그래서 그러한 선택을 하게끔 내몰리는 듯 한 느낌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재봉사를 위로하며 그녀를 편안히 보내주고
칼튼 스스로도 의연한 모습으로 단두대로 올라가는 씬에서는
모든 문제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모습으로 커튼콜 무대로 나왔을 때는
정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듯한 반가움마저 있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칼튼의 선택에 대한 의미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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