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섬유센터 지하에 마이아트뮤지엄이라는 전시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방문은 처음이었다.
빅아이즈전을 여기서 했었구나...
미리 예매를 해 둔 덕에 할인도 받고 포스터도 받아왔다.
포스터의 저 유명한 작품의 제목이 "이카루스"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
미술사조에서 야수파(포비즘)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앙리 마티스.
그러나 당시 야수파의 활동시기는 아주 짧았고,
대상을 거칠고 원색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의 작품은 환대보다는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표현기법에 반기를 든 젊은 화가들이
이러 저러한 방법으로 저들만의 사조(알면 재미있지만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는) 를 만들어 활동하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뛰어넘고, 또 자신이 스스로를 넘어서던 역동적인 모더니즘 화가들 중에서도
마티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인 것은, 몸이 자유롭지 못했던 인생 말년에 이르렀어도
가위질( 컷아웃)이라는 기발한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새로움을 추구했던 예술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전시는 야수적인 그림(회화)들이 아니라 종이 오리기 작업이 메인이며
그의 화려하면서도 극도로 간략화된 그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을 위주로 소개되어 있었다.
다섯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거의 다 돌 때쯤 도슨트의 전시 해설이 시작되었다.
슬그머니 뒤로 돌아 그룹의 한 구석에 따라다니면 설명을 듣는데
도슨트 설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비교적) 젊은 친구들이 자신이 설명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막힘없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친구들에게서 전해지는 열정의 기를 느끼며 나도 모를 흐믓한 미소가 새나온다.
이건 뭐, 엄마의 마음 같은, 그런건가? ㅎㅎ
처음엔 몸이 불편하여 붓을 저 긴 막대에 연결하여 멀찍이서 그리기 시작하였지만
나중엔 그것 자체가 대상을 간략하게 단순화시키는 하나의 기법이 되었다고 한다.
(폐색증, 유화물감의 지독한 냄새를 맡는 것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이었기에 물감작업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붓을 최대한 멀리 잡거나 혹은 색을 지정하여 조수들에게 대신 칠하게 하였다고 한다.)
도슨트의 얘기처럼 처음 아무 설명없이 이 첫번째 섹션을 볼 때는 정말로 속으로 그랬다.
이거, 그림을 너무 성의없이 그린 거 아니야? 이 정도라면 나도 그리겠다... 라고..ㅋㅋ
그래도 그 성의없어 보일 정도로 단순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그림은 힘이 있고 정확해 보였다.
정밀하지 않은 얼굴묘사, 예쁘지 않은 여인들, 여인이 주인지 배경이 주인지 모를 화면들,
벽지(?) 혹은 FABRIC의 문양들에 지나치게 집착한 듯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이국적 분위기에 마음이 많이 끌린듯 해 보였다.
이 정도의 작품은 꽤나 성의있는 그림들 축에 속한다. ㅋㅋㅋ
어쩌면 그는 거칠고 단순한 드로잉과 화려한 색채를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나보다.
그리고 어떤 계기로 '가위'라는 도구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상자료를 보면 가위를 저렇게나 연필처럼 쓸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종이 위에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위의 회화에서 같이 인물 주변의 화려한 패턴들을 재생한 듯 반복되는 해초 모양들.
블루 누들 시리즈는 전작을 모아놓고 보니 그 차이점이 조금 느껴졌지
따로 본다면 내가 보고 있는 그림이 저 다섯점 중 어떤 그림인지 구분할 수 있겠나 싶다.
그는 그 작은 차이점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번의 반복작업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그래, 누군가가 보고 있는 어떤 대상은 늘 그 과정이 생략된 최종 결과물이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결과물 속에 들어 있는 과정의 시간들을 보아주길 바라지 않을까...
그게 예술작품이든 아니든 말이다.
가위질의 시작이 혹시 여기서부터였나? 그랬겠구나.
삽화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파트이다.
선굵기의 차이조차 없는 시집의 펜화들은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느껴져서 좋았고
굵은 붓으로 단 몇번의 터치만으로 그려진 작품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래의 두 점은 더욱 좋다.
<머리카락>은 거꾸로 누운 여인의 눈코입보다는 얼굴의 윤곽선이 먼저 들어오고
화면의 아랫부분을 가득 채운 풍성한 웨이브가 웬지모를 신비감까지 느끼게 한다.
<느슨한 베일 쓴 베두인 여인>은 그 제목과 그림의 느낌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게 다가온다.
신기하다.
이 마지막 세션을 보며 나는 마티스가 참으로 행운아가 아닌가 싶었다.
그의 병으로 인해, 그는 CUT OUT이라는 그야말로 유닉크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어린 소녀때 간병인으로 만났던 수녀의 부탁으로 시작된
이 작은 성당을 마음껏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건축가도 아닌 화가에게 말이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오페라 무대와 의상디자인까지!!!)
인간사가 새옹지마라고들 하지만 마티스의 인생은 그가 병을 극복하기로 마음먹은 그 노년의 순간에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하여 유한한 시간을 얻은 그 순간에 말이다.
인생의 정점이 죽는 순간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하필 왜 이 순간이냐고 원통해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화려하게 기억될 수 있는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그리 억울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연극 '레드'에서 로스코가 유일하게 인정한 사람이 마티스인 이유가 이런 지점이었구나 싶다.
예술가의 마지막 순간이 정지된 무기력의 블랙이 아니라, 가장 새롭고 화려하게 빛을 낸 순간이라는 것 말이다.
마티스를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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