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눈을 뜨는 것이 괴롭다. 우울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도로 침대에 눕는다. 잠이 오든 안오든.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는 곳은 물건들이 주로 가로로 누워있고
잘 되어 있는 곳은 세워서 정리하는 세로수납이 되어 있다고,
사람도 우울하면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명랑할 땐 주로 서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고
얼마전 2급 과정을 끝낸 수납전문가 강의 교재에 나와 있던데, 아무래도 마음정리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이 모든 우울과 무기력감과 삶의 회의까지 느끼게 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ㅎㅎ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문제에 마음을 휘둘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래서 최대한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진 말자고 다짐하며 살지만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는 순간마다 오로지 희망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사는 일은...
정말이지 힘들다.
코앞에 닥친 카드결제일에 마련된 돈은 턱없이 부족하고, 누구에게든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긴 싫었지만...
하루 반나절을 극도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을 혹사한 끝에 결국은 올케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고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네준다.
내가 두 마디도 하기 전에 알았다고 선뜻 대답해 주었다.
이미 오래 전 큰 빚을 지고 아직 갚을 엄두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나의 궁핍은 어쩌면 곧 친정엄마에게 들어갈 것이고, 팔순이 훨씬 넘은,
이제 완연한 노인이 된 엄마는 또 속을 끓이실 게 뻔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나를 어리석어하고, 사위를 미워하고, 사돈댁을 원망하고...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빚만 없으면 어떻게든 산다고, 빚만 지지 말라고,
당신은 어떤 어떤 경우라도 빚은 안져서 살 수 있었다고 하시지만
엄마, 지금은 빚만 없으면 부자인 세상이라구요...
세상의 모든 딸을 둔 엄마들은, 딸을 부유한 곳에 시집보내기를 바라고 딸이 팔자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야 곧 나도 같아지겠지만...
적어도 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나이는 먹더라도 정신만은 맑게, 현명함을 잃지 않기를, 인내심을 잃지 않기를, 진정한 어른이 되기를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어쩌면 그것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고 해야 하는건가.
급한 불을 끄고 나자 비로소 뭘 먹을 생각이 든다.
속쓰림에서 오는 순간적인 식욕이 아닌 정상적인 배고픔 말이다.
정말 냉장고 속에 제대로 된 반찬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냥 한끼 대충 때웠다.
어젯밤, 필요한 것들로만 아껴서 장을 봐오긴 했지만 뭘 만들고 싶은 생각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사실은 어제도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거의 두시까지 깨어있는 건지 잠이 든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로 침대 위에서 죽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번주 들어서며 며칠째 맥빠지는 소식만 들려왔다.
말일에 나온다던 결제는 10일로 미뤄졌고 다시 15일에나 주겠단다.
몇 달을 기다리던 프로젝트는 시작을 코앞에 두고 사업방향을 틀어버렸단다.
이번달 초쯤 시작한다던 프로젝트 역시 건축주 사정으로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연락이 왔다.
심지어 지난 일요일 제주도까지 가서 실측을 해 온 일마저
건축주가 며칠 더 고민할 것이 있다고 잠시 홀드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받고 나니 온 몸과 마음의 힘이 다 빠져나가 정신을 차리고 싶지도 않았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 후면 아이가 올 시간.
아이에게 민망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 싶어 일어나 씻고 청소를 했다.
이럴 때, 아이의 존재는 얼마나 큰 의지의 원인이 되어주는지...
그리고 소소한 집안 일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
내가 심란할 때마다 집안정리정돈에 매달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속모르는 딸내미는 트위터가 날라다 준 소식에 흥분하며 재잘거린다.
엊그제 오픈한 티켓을 트친들이 잡아줬다고 해서 없는 돈에 6만원을 보내줬는데
오늘 또 한자릴 주웠다고 예매를 해 달란다.
큰 돈도 아닌데... 이럴 땐 좀 자제해 주면 좋으면만 싶다.
다행히도 눈치를 보지 않는 딸은 살짝 미안해 하면서도 당당하게 요구한다.
내가 갖지 못한 모습에 차라리 나는 다행스러워 한다.
늘 힘든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속깊은 어린 딸은
부모에게 뭘 해달라는 요구를 제대로 해 보질 못했다.
그렇게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구를 참고 그것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나이를 먹어가며 뒤늦은 원망과 서운함과 미련과 억울함 따위의 감정들이 밀려들어 나를 괴롭힐지
그 때는 정말 알지 못했었다.
그래, 내가 좀 더 줄이지.. 내가 좀 덜 보면 되지...에휴...
그래도 딸이 나중에 이 시절을 즐겁게 지낸 시간들로 기억해 주면 더 바랄게 없겠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곤란함을 나는 기꺼이 넘겨보려 한다.
왜냐면, 무엇이든 '제 때'라는 것이 있듯이 감수성에도 역시 그 때가 있고
부모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시기도 역시 그 때가 있기에
가급적이면 그 시기를 맞추어 공급해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 방법이나 내용이 혹여 다른 부모들과 다를 지라도 어쨌든 최선을 다 해보자는 심정이다.
대학로를 통째로 접수하여 소유하고 싶은, 사춘기를 그렇게 대학로를 누비며 보내는 딸은
지금도 학교가 끝나지 마자 추가 입고된 대본집을 사러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또 카드를 내줘야 하나...ㅎㅎ
단 하나의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크나큰 위로.
그애가 나중에 부모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고민이 크다.
소소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소소한 위로가, 나를 강제적으로 의무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큰 강아지가 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누구든, 어떤 일을 하든,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 하고 열심히 살기만 한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건강한 사회라고 말이다.
그런데 "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않더라..."라는 말을 전해야 하는 씁쓸함이라니.
너나없이 자식에게, 적성도 무시하고 좋아하는 것도 무시하고 그저 성적으로 줄세워서 선착순으로
고소득이 보장되고 사회적인 인정이 보장되는 계층으로 밀어넣고자 하는 이 사회가
정말 정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키워진 자식들은 정말
10대 시절을 바쳐 원하던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나는 최선을 다 해 살았다.
지나간 청춘의 시절동안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지금, 빚에 시달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억울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식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네 복이니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있는 일을 해라!
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을까?
진정코 내가 찾은 해답은 '그렇다!'이긴 하지만
안쓰럽고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내 모습을 보는 듯이, 나의 엄마가 당신 삶을 비추어 나를 들여다보듯이 말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원하던 삶을 살지도 못했었다.
물론, 내가 원하는 길을 갔다고 해서 만족스런 삶을 살았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인 만족도와 별개로
살아가는 매 순간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시간들이기를,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진정 꿈이란 말인가
혹은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자의 비겁한 변명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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